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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밀양 영남루 (2024.11.23.)



 

 

 

 

밀양 영남루 (密陽 嶺南樓)

Yeongnamnu Pavilion, Miryang

 

 

분 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조경건축 / 누정

수량/면적 1

지정(등록) 1963.01.21

소 재 지 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시 대 조선 헌종 10(1844)

소유자(소유단체) 국유

관리자(관리단체) 밀양시

해제일 2023.12.28

 

해제사유

2023.12.28 국보 승격

 

 

()란 건물의 사방을 트고 마루를 높여 지은 집으로

일종에 휴식공간이라 할 수 있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고려 공민왕 14(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그 뒤 여러 차례 고치고 전쟁으로 불탄 것을 다시 세웠는데,

지금 건물은 조선 헌종 10(1844) 밀양부사 이인재가

새로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5·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기둥은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건물 서쪽면에서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지붕은

높이차를 조정하여 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또한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밀양 영남루

 

영남루(密陽 嶺南樓)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에 있는 누각으로

구 객사(舊客舍)의 부속건물이다.

정면 5, 측면 4칸으로, 1844년에 다시 지어진

조선시대 후기 건물의 특색을 잘 반영한다.

옛날에 귀한 손님을 맞이하여 잔치를 베풀던 곳으로,

진주 진주 촉석루, 평양 부벽루와 함께 한국의 3대 누각으로 꼽힌다.

1963 1 21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47호로 지정되었다가

2023 12 28일 국보로 재지정되었으며,

삼척 죽서루와 함께 2023 12 28일 대한민국의

국보로 지정되었다.

 

개요

 

영남루는 동서 5간 남북4간의

팔작지붕으로 된 2층 누각이다.

동서 좌우에는 다시 각각 3간의 익루인 능파각과

침류각이 달려 있다.

문헌에 따르면 영남루는 옛적에 영남사의 절터인데

고려 공민왕 14(AD 1365)에 밀양부사 김주가 개창하여 절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고 하였다고 전한다.

 

영남루는 신라 법흥왕 때 절을 지었다가

고려 현종 때 절을 없애고 종각이 없던 금벼루만 두었던 것을

고려 예종 때 영남루를 지었으며,

1366년 공민왕 14년에 김주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오고 있다.

 

그 뒤에 1460년 조선 세조 6년에 부사 강숙경이

누각의 규모를 키워 중건하였고 신숙주가 누기를 지었다.

1542년 중종 37년에 부사 박세후가 다시 중건하였다.

 

1582년 선조 15년 병화(兵火)로 대루와 부속당우가 불타버렸는데,

1637년 인조 15년에 부사 심흥이 재건한 것을

부사 이지온이 단청을 하였다.

1842년 헌종 8년에 실화로 소실한 것을 2년 뒤인 1844년에

부사 이인재가 재건한 것이 현재의 건물이다.

 

조선시대 후반기에 속하는 건물로서는

건축미와 규모면에서 대표적인 것으로 손꼽히고 있다.

부사 이인재가 중건할 때의 상량문은 추남 이장한이 지었으며,

준공한 뒤에 김홍근이 지은 상량문이 현판으로 걸려있다.

(출처 - 위키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