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천 초간정
소백산에서 흘러내리는 금곡천이,
용문면의 원류마을 앞에서 소나무가 우거진 숲을 만나 못과 계곡을 만들었고,
그 기암괴석 바위 끝에 초간정이 자리를 잡았다.
선조임금 때, 초간草澗 권문해(1534~1591년) 선생이
초가삼간의 규모로 처음 지었는데,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 두 차례나 피해를 입어 불에 탔고,
지금의 건물은 초간 선생의 저서 등을 보관하기 위해서 고종7년(1870년)경에
후손들이 기와를 올려 다시 지은 건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이고,
4칸의 대청마루와 마루 한쪽에 2칸짜리 온돌방이 있다.
울창한 소나무 숲과 풍광이 수려한 냇가에 자리 잡은 초간정은
정자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살림집과 안마당, 사랑채의 역할을 하는 정자,
그리고 바깥의 사랑마당이 함께 어우러진 분명한 주거공간으로,
학문을 탐구하던 서재와 서당으로서의 역할을
더 강조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초간정의 원래 이름은 초간정사草澗精舍였는데,
후대에 잘못 전해져서 초간정草澗亭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정사精舍’란 ‘학문에 힘쓰는 집’이란 깊은 뜻을 담고 있는데,
이곳에서 <대동운부군옥>의 집필에 매진했던 초간선생의 자취뿐만 아니라,
부친의 뒤를 이어 이곳에서
최초의 인명사전으로 알려진 <해동잡록海東雜錄>을 완성한
권별 선생의 뜻을 살려서,
이제라도 초간정사로 이름을 바로 잡는 노력이
앞으로 필요하리라 본다.
한편, 초간정사의 성격과 위상을 말해주는
이런 유명한 일화도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에는 초간정사 주위를 100바퀴 돌면
과거에 합격한다는 소문이 인근에 자자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비가 한밤중에 99바퀴를 돌고난 뒤에,
현기증을 일으켜서 계곡으로 떨어져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러자, 그 선비의 장모가 초간정사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도끼를 들고 와서 기둥을 찍었다고 한다.
지금도 낭떠러지 쪽의 모서리 기둥에는 도끼로 찍힌 흔적이 남아 있는데,
그만큼 ‘학문의 요람’으로서의 초간정사의 위상은
높고 각별했었다는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학문의 전당’ 초간정사에서
선생이 평생 동안 심혈을 기울인 <대동운부군옥>은,
마침내 1589년(선조 22)에 20권 20책으로 탈고하여,
세 벌을 정서해 백승각에 보관하였다.
그 중 한 벌은 1591년 부제학 김성일 선생이 선조임금께 보인 후,
목판을 간행하려 하였으나 임진왜란이 일어나 전쟁통에 잃어버렸고,
또 한 벌은 한강 정구 선생이 빌려갔다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우여곡절을 겪은 후,
선생의 아들 권별 선생이 또 한 벌을 정서하여
정산서원에 영구히 보관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세월이 한참 흘러 1812년(순조 12)에
후손들이 목판으로 간행을 시작하여,
1836년(헌종 2)에 완간을 보게 되었다.
그 뒤, 일제시절에는
일본 순사가 총칼로 위협하며 탈취해 가려 하였으나,
종가에서 죽음을 무릅쓰고 항거하여 오늘날까지 지켜낼 수 있었던
소중한 유산이 바로 <대동운부군옥>이다.
그런데 현재,
<대동운부군옥>의 목판을 보관하고 있는
초간종택의 백승각百承閣이 원래는 초간정사 옆에 있었다고 한다.
병자호란으로 불탄 후에 복구한 초간정사 주위에는,
연못과 석조헌夕釣軒, 화수헌花樹軒, 그리고 백승각이 있었는데,
세월이 흘러 석조헌과 화수헌은 쇠락하여 사라지고 현판만 남았고,
백승각은 수 십 년 전에 초간종택 안으로 옮겨졌다 한다.
건물의 관리와 유물의 도난방지를 위한 고육책이었겠지만,
이제라도 고증을 통해서 원래의 주변 환경을 복원하고
건물들을 재건하는 연구와 노력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사라진 위대한 역사의 복원은
그 무엇보다도 후손들에게 민족 정기의 고양과
훌륭한 교육적 자산이 된다.
백승각의 '제자리 찾기'와 초간종택의 ‘제 모습 찾기’도
함께 진행된다면 금상첨화이다.
아울러 유물의 보전과 관리는 후손들 개인의 몫이 아니라,
국가의 책무라고 봄이 마땅할 것이다.
......
출처 - 15. 예천 권씨 초간종택과 초간정사 - 천년대계의 초석을 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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