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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 갤러리 ■/자 연

경주 문무대왕 수중릉 일출 – 5 (2024.11.03.)



 

 

 

 

문무대왕 수중릉

 

 

  신라 제 29대 왕, 태종무열왕은

백제, 고구려를 물리치고 삼국 통일을 이루는 밑거름을 이루었다.

삼국통일 과정에 무열왕이 돌아가자 문무왕이 뒤를 이었다.

 문무왕의 이름은 김법민(金法敏)으로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의 큰아들일 뿐만 아니라

김유신 장군의 둘째 여동생의 아들이다.

 

그는 아버지와 외삼촌을 따라 백제정벌에 참여하였고

 태종무열왕이 죽자 661년 신라 제 30대 왕으로 즉위하여 

21년간 통치하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위에 올라 668년 당나라와 연합하여 고구려를 평정하고

 이후 한반도에서 당을 물리치기 위해 8년간 수십 차례의 전투에서 

반드시 필승으로 이끌어 비로소 676년에는

대동강과 원산만을 잇는 남쪽의 영토를 장악하여

삼국을 통일을 이루었다.

 

 한반도 남쪽 조그만한 지방에서 시작한 신라를

한반도의 최초 통일 국가로 이룬 문무대왕이었다.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15년 이상 무수히 많은 전쟁을 치런 후 

서쪽의 호국사찰 사천왕사(四天王寺)와 동쪽의 호국사찰 진국사(鎭國寺)도 지었다

이 진국사를 짓는 와중에 681 7 1일 숨을 거둔다 

 

 문무대왕은 스스로

죽어서 바다의 용이 되기를 지의법사에게 전하였다

문무대왕의 시신은 불태워 동해의 큰 바위(大王岩)에 안치되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죽어서 바다에 묻히고자 했던 왕은 없었다

바다의 용으로 변신 한 것이다.  

 

위엄과 문무를 겸비하였던 왕.

죽어서도 바다의 용이되어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그의 호국 전설이 대왕암에 서려있다

 

 

 

 

 

 

 

 

 

 

 

 

 

 

 

 

 

 

 


경주 문무대왕릉
(慶州 文武大王陵)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문무대왕면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30대 문무왕의 능.

 

문무왕이 재위 21년만인 681년에 승하하자, 유언에 따라 동해에 장례를 지냈다. 그의 유언은 불교 법식에 따라 화장한 뒤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동해로 침입하는 왜구를 막겠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화장한 유골을 동해의 입구에 있는

큰 바위 위에 장사 지냈으므로 이 바위를 대왕암’, ‘대왕바위라고 불렀다.

 

현황

 

문무대왕릉은 해변에서 가까운 바다 가운데 있는 그다지 크지 않은 자연 바위이다. 남쪽으로 보다 작은 바위가 이어져

있으며, 둘레에는 썰물일 때만 보이는 작은 바위들이 간격을 두고 배치되어 있어 마치 호석처럼 보인다. 대왕암에 올라보면 마치 동서남북 사방으로 바닷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수로(水路)를 마련한 것처럼 되어 있다.

 

특히, 동쪽으로 나 있는 수로는 파도를 따라 들어오는 바닷물이 외부에 부딪쳐 수로를 따라 들어오고 나감으로써 큰 파도가 쳐도 안쪽의 공간에는 바다 수면이 항상 잔잔하게 유지되게 되어 있다. 이 안쪽의 공간은 비교적 넓은 수면이 차지하고

있고, 그 가운데는 남북으로 길게 놓인 넓적하고도 큰 돌이 놓여 있다. 수면은 이 돌을 약간 덮을 정도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문무왕의 유골을 이 돌 밑에 어떤 장치를 해서 보관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수중 발굴 조사가 실시되지

않아 이 널돌처럼 생긴 돌 밑에 어떠한 시설이 마련되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사방으로 마련된 수로와 아울러 안쪽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바위를 인위적으로 파낸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기록에 나타난 것처럼 문무왕의 수중릉일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더구나 바위의 안쪽에 마련된 공간에 사방으로 수로가 마련되어 있는 것은 부처의 사리(舍利)를 보관한 탑의 형식에 비유되고 있다. , 내부로 들어갈 수 있도록 사방에 문이 마련되어 있는 인도의 산치탑의 경우나 백제 무왕 때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진 익산 미륵사지 석탑 하부의 사방에 통로를 마련한 것과 같은 불탑의 형식이 적용되어 사방에 수로를 마련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왕릉이 내려다보이는 서북쪽 산 능선 아래에는 아들 신문왕이 창건한 감은사 터가 자리하고 있다.

 

의의 및 평가

 

문무대왕릉은 바닷속 바위에 왕릉을 둔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유적이다.

(글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