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㊱] 2016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대상 ‘유리트리트’
- 기자명 서정필 기자
- 입력 2024.03.11 17:38
‘당신의 온전한 휴식 공간’이라는 뜻
40미터 거리 수직 절벽 등 자연환경과 어울리는 새로운 개념 건축물
곽희수 건축사 “건축이란 자연을 대하는 태도”
해마다 전국 각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서른여섯 번째 작품은 2016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대상 수상작 ‘유리트리트’(곽희수 건축사, 주.이뎀건축사사무소)다.
‘Retreat’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여러 의미를 함께 볼 수 있다. 대체로 ‘아래’ 혹은 ‘뒤’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후퇴’, ‘물러서다’, ‘하락’이라는 항목은 모두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런데 여러 항목 중 하나가 특별히 눈에 띈다. 바로 ‘휴양지’라는 의미다.
“‘휴양지’라면 쉬는 곳인데 왜 여기서 나오는 거지?”라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그리고 잠시 고민한 후 “아, 쉬려면 일단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후퇴해야 하는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임전무퇴(臨戰無退)라는 말처럼, 세상은 전장(戰場)이며 후퇴는 되도록 없어야 한다는 생각 속에서 살아온 나에게, 한 단어에 ‘후퇴’와 ‘휴양지’라는 뜻이 함께 있는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2016년 한국건축문화대상 대상을 수상한 ‘유리트리트(URetreat, 곽희수 건축사·이뎀건축사사무소)는 일상에서 잠시 후퇴하며 휴양을 경험하는 건축물이다.
넓은 하천과 높은 둔덕(垈谷)을 뜻하는 “홍천(洪川)군 대곡(垈谷)리”는 오랜 시간 동안 대지가 처한 상황을 상상케 하는 지명이다. 소리산 줄기, 사리골 계곡이라 불리는 해발 100미터의 수직 절벽은 불과 40미터 거리에서 대지를 내려다보고 있다. 거석으로 결박된 절벽의 규모와 그 안에서 무심히 자라난 식생들의 생명력은 주변을 압도한다.
‘유리트리트’는 사리골 계곡이라 불리는 해발 100미터의 수직 절벽이 불과 40미터 거리에서 건축물을 내려다보는 환경이다. 도시에서 후퇴하지 않고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식물과 생물들이 나름의 생명력을 뽐내며 말 그대로 ’리트리트‘에 집중하게 만드는 환경이다.
설계자 곽희수 건축사는 “일상으로부터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일단 후퇴한다는 개념이다. 지금 우리 사회를 이끄는 베이비붐 세대부터 X세대까지 죽도록 일하고, 놀 때도 경쟁적으로 노는 공통점이 있다”며 “그래서 이제 여행을 떠난다는 의미는 단순히 논다는 것이 아니라 쉰다는 개념으로 변화해야 한다”고 설계 작업에 나선 생각을 밝혔다.
나무들의 자유로운 군집이 만들어 낸 절벽 형상처럼, ‘유리트리트’는 각 단위 건축물의 자유로운 집합체다. 각 유닛은 ‘따로 또 같이’라는 개념으로 개개의 특징을 통해 커다란 일체감을 만든다. 마치 나무가 지면에 최소한의 부분만 닿는 것처럼, 각 유닛은 비규칙적 지면에 대응하기 위해 지면과의 접촉을 극도로 제한한다. 이로 인해 건축물은 다양한 경사로부터 자유를 얻게 됐다.
내부 공간 역시 다양한 높낮이를 이용해 여러 목적으로 공간을 배치하며, 일상에서 후퇴해 온 이들에게 연속된 공간 경험을 제공한다. 수상 후 어느새 8년이 지난 ‘유리트리트’는 강원도 홍천군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자리 잡았다. 바로 옆의 수직 절벽과 협곡을 닮은 건축물에서는, 온전히 자연을 느낄 수 있다고, 이곳을 찾아 ‘리트리트’한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다음은 ‘유리트리트’를 설계한 곽희수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곽희수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건축물의 이름을 왜 ‘유리트리트’로 짓게 됐는지요?
처음에는 객실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는 숙박시설 개념이었어요. 그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하고 허가 절차 준비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던 중, 문득 이 장소는 이렇게 지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객실을 원래 계획보다 반 이상 줄이고 좀 더 규모를 키우고, 또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념을 도입하고자 ‘Retreat’라는 단어를 선택하게 됐습니다.
Q. 설계하시면서 추구한 ‘리트리트’의 개념을 좀 더 쉽게 설명해 주신다면?
가톨릭에서 자주 쓰는 ‘피정(避靜)’이라는 개념 아시지요? 그것을 생각하시면 이해가 쉬우실 겁니다. 일단 ‘후퇴’한다는 개념입니다. 베이비붐 세대부터 X세대까지 모두 죽어라 하고 일하고 죽어라 하고 노는 세대거든요. 휴가를 받아도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경쟁적으로 놉니다. 그래서 여기서만큼은 촘촘한 계획에서 벗어나 그냥 쉬기를 바랐습니다. 잘 쉬기 위해서는 일단 일상 공간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돼야 한다는 생각도 했는데, 이곳의 대지 조건이 그러한 생각을 실현하는 데 딱 맞았습니다. 방문해 보시면 아시겠지만, 도로에서 1킬로미터 정도 더 들어가야 ‘유리트리트’에 도착할 수 있거든요.
Q. 건축물을 설계할 때 특히 더 많이 고민하신 부분이 있다면?
이곳은 건축물이 먼저 생기고 주위 환경이 조성된 곳이라기보다는, 해발 100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병풍과 같은 환경에 건축물이 어떻게 말을 걸고 소통할 것인가를 먼저 고민했습니다. 건축은 자연을 대하는 태도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수직 정원이 있고 낮은 둔덕에 위치돼 있고. 그렇다면 건축은 전망대나 정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나라는 자연환경이 대단히 아름답습니다. 명상과 요가가 익숙한 우리에게, 동양적이거나 우리가 즐기는 형태의 리트리트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리트리트를 현재 환경에 맞게 조금 바꿀 필요다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Q. 한쪽만 지면에 닿아 있는 지면의 모양이 특징적인데? ‘학’이 떠오른다는 이야기도 있고….
하늘을 나는 학의 형상을 생각한 것은 아닌데요. 그렇게 보이기도 하는데 그것보다는, 자연이라는 크고 무거운 질량감에 가볍게 학처럼 접근할 수 있는 어떤 유닛이나 조형 건축적인 방향성 이런 것이 없겠나 하는 생각 끝에 만들어 본 겁니다.
Q. 수직 절벽을 건축물 내부에서 온전히 바라볼 수 있도록 설계 면에서 고려한 점이 있다면?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건축물과 수직 절벽은 40미터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그 정도의 거리는 떨어져 보려는 태도에서 높이들이 정해지고, 높이에 따라서 수직 무대의 변화를 목격하는 방식이 달라집니다. 자연의 변화를 가장 목격하기 좋은, 관찰하기 좋은 위치에 있고 침실은 다 위쪽에 있어요. 숙박이라는 개념이 어차피 ‘눕다’와 연관된 의미이기 때문에 침실에서 누워서 수직 무대를 관찰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 [수상 그 후㊱] 2016 한국건축문화대상 준공건축물부문 대상 ‘유리트리트’ < 인터뷰 < 피플 < 기사본문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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