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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카페>등나무 감은 거실기둥·풀이 자라는 지붕… ‘숲을 닮은 집’
- 문화일보
- 입력 2018-12-12 10:33

마이레아 주택의 거실. 특정한 어떤 한 가족을 위해 지어진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회를 위한 양산주택의 원형으로 완성됐다. @Rauno Traskelin/Mairea Foundation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⑩ 알바르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
핀란드의 자연에 어울리는
알토의 인간적 건축의 진수
햇빛 짧은 북유럽 기후 맞춰
ㄴ자 평면으로 빛 최대 확보
집을 받치는 11개의 원기둥
다양하게 표현돼 공간 구분
현관홀·거실 등 갤러리 활용
예술과 일상의 융합도 시도
자연에 바탕을 둔 양산주택
일반시민 위한 실험 ‘큰 의미’
땅에 뿌리를 내리는 건축은 그 땅의 기후에 크게 좌우된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실제로 그 땅의 물질과 바람과 빛을 합쳐 집을 짓기란 참으로 쉽지 않다. 그런데 국토의 65%가 북위 60도에서 70도에 걸쳐 있어 국토의 3분의 1이 북극권에 속해 있고, 땅의 65%가 삼림이며 10%가 호수와 하천인 땅의 건축을 정확하게 구현해 준 건축가가 있었다. 그는 20세기를 대표하는 핀란드의 거장 알바르 알토(Alvar Aalto)였다.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서 “숲은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사람에게는 숲이 필요하다”고 배운 그는 숲과 호수의 나라 핀란드의 자연환경 속에서 인간적인 건축의 진수를 끊임없이 추구했다. 그런 알토가 남긴 가장 뛰어난 건물이 41세에 완성한 마이레아 주택(Villa Mairea)이다.

집의 일부이면서도 앞에 펼쳐진 숲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엔트런스 포치. https://www.formidablemag.com/alvar-aalto/
마이레아 주택은 마이레와 하리 굴리크센(Maire and Harry Gullichsen) 부부를 위한 주택이다. 이 주택은 헬싱키에서 북서쪽으로 200㎞ 떨어진 서해안의 항구 도시 포리(Pori) 근교에 있는 노르마르쿠(Noormarkku)라는 마을에 있다. 이곳은 목재제지회사인 알스트롬(Ahlstrom)사가 세워진 곳이며 이들은 지금까지도 아주 넓은 땅을 소유하고 있다. 이 회사 경영자의 맏딸 마이레 굴리크센은 파리에서 페르낭 레제(Fernand Leger)에게 근대회화를 사사했고, 귀국하고 나서는 헬싱키에서 근대예술 갤러리를 통해 전위예술을 펼치고자 했다. 남편 하리 굴리크센은 진취적인 실업가였다. 이 부부는 오랜 관습에 얽매이지 않는 선진적인 인물로 핀란드의 근대건축과 디자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이들의 근대예술 컬렉션은 오늘날에도 핀란드에서 매우 유명하다.
마이레아 주택의 이름은 부인의 이름 마이레와 알스트롬 회사 이름을 붙여 만든 것인데, 핀란드어로 사랑스럽다는 뜻이다. 알토는 1935년에 굴리크센 부부와 만났다. 이들은 아주 친한 친구이자 예술과 사회에 대한 가치관도 같았던 알토와 그의 아내 아이노와 공동으로 가구회사 아르텍(Artek)을 세웠다. 또한 이들은 1936년 다른 제지회사와의 벤처 사업을 위해 알토에게 콧카(Kotka)에 지을 제지공장과 마을 마스터플랜 설계를 부탁하는 등 알토의 아주 소중한 후원자였다. 마이레아 주택 설계를 의뢰한 1937년에 알토는 39세, 아이노는 43세, 마이레는 30세, 하리는 35세였다.
마이레아 주택은 다른 근대주택과 달리 명료한 질서로 지어지기보다는 전형적인 전통건축에 가까워 왜 이 주택이 20세기 걸작 주택 중의 하나인지를 금방 알아차리기는 어렵다. 이 주택은 낮은 언덕 위에 적송과 자작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대지가 주변보다 20m 높아 자연을 향해 당연히 개방적으로 배치됐을 것으로 예상하겠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알토는 이 주택을 설계하면서 처음부터 중정을 에워싸며 자연과 생활이 어울리는 전통적인 농가를 생각했고, 이를 프랑크 로이드 라이트의 낙수장처럼 캔틸레버(cantilever·벽체 또는 기둥에서 튀어나온 보) 구조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렇다고 ㅁ자로 완전히 닫지 않고 북유럽의 귀족 주택에 자주 사용된 ㄴ자형 평면으로 사적인 중정을 느슨하게 에워쌌다. 중정에는 핀란드의 호수를 연상시키는 수영장이 있다. 이런 중정을 향해 남쪽에는 거실을, 동쪽에는 식당이나 주방을 두었다. 북쪽에는 사우나 오두막이 있으며 긴 테라스로 본채에 이어져 있다. 가까이서 보면 외부의 디테일도 농가를 닮았다. 흙이 쌓여서 풀이 자라고 있는 지붕, 테라스의 돌을 쌓은 난로와 담장, 거친 통나무로 만든 홈통, 전통적인 벽돌쌓기 벽이나 목재 천장, 그리고 따듯한 벽난로 등은 모두 핀란드 민가의 강한 요소들이다.
이때 주어진 땅의 형상을 어떻게 이용하는가, 햇빛을 어떻게 받는가, 주위를 어떻게 바라보는가가 설계를 결정하는 중요한 조건이었다. 그래서 초기 스케치에는 이것을 검토하는 화살표가 많이 보인다.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빛이었다. 북유럽 사람의 집은 긴 겨울 동안 햇빛을 거의 받지 않아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다양한 각도에서 빛이 비치도록 여러 장치를 고안했다. 마이레아 주택도 계속해서 변하는 빛을 즐길 수 있도록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은 ㄴ자형 평면으로 서쪽을 터서 오후가 돼도 건물의 그림자가 지지 않는 중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오후에는 중정과 북쪽의 사우나 오두막집에 빛이 강하게 비치며, 마주 보고 있는 거실은 이 빛을 간접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하루 종일 빛이 부족하므로 가장 적절한 시간에 햇빛이 잘 들어오도록 방을 배치했다. 남동쪽으로는 1층에 현관홀, 서재, 음악실을 두고 2층에는 침실을 배치해 아침 햇살을 즐길 수 있을뿐더러 오전 내내 빛이 들어오게 했다. 2층 침실은 동쪽을 향해 비스듬히 돌출한 창 네 개를 두어 조금이라도 더 많은 빛이 들어오게 했다. 반면 식당은 어슴푸레해질 때까지 석양을 즐기며 식사할 수 있게 남서쪽에 배치했다.
이 주택은 숲을 은유하고 있다. 유기적인 곡선 형태로 깊숙하게 덮고 있는 엔트런스 포치의 기둥은 숲을 닮았다. 밖을 향해 왼쪽은 가늘지만 견고한 수직 기둥을 루버처럼 늘어 세웠고, 오른쪽은 둥근 나무 봉 3개로 엮은 수직 기둥과 이런 것에 비스듬히 세운 나무 봉 2개를 더해 묶어 만든 기둥 등 두 기둥이 서 있다. 이 때문에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갈 때 엔트런스 포치 주변의 공간은 집의 일부이면서도 앞에 펼쳐진 숲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건축 안에 몸을 둘 때 비로소 그 건축이 이해된다”는 알토의 말처럼 현관홀을 들어서면 이 주택의 진수가 한눈에 나타난다. 현관홀의 약간 휘어진 벽면과 거실 한가운데 등나무를 감은 두 개의 기둥과 난로가 비스듬한 시선을 따라 넓은 거실로 이어진다. 현관홀 벽면의 왼쪽과 그 뒤에 있는 계단의 난간에는 수직의 둥근 나무 봉을 많이 세워 놓아 집 안인데도 숲의 나무 사이에 있는 듯이 느껴진다. 현관홀 근처에는 바닥과 천장에 가까운 부분을 남기고 등나무를 감은 검은 기둥 하나가 서 있으며, 거실의 한가운데에는 아랫부분을 등나무로 감은 두 개의 검은 기둥이 있다. 이런 기둥들과 나무 봉 난간 사이로 중정이 보이는 이 집은 전체가 숲을 닮았다.
이 주택의 기둥은 여러 가지다. 거실, 서재, 음악실은 모두 가로와 세로를 셋으로 나눠 9개의 격자를 만들어 총 16개 기둥이 있다. 이 중 두 개는 벽난로 옆 벽면 속에 숨어 있고 다른 두 개는 그 뒤에 있는 겨울 정원 측벽에 있다. 한 개는 서재의 측벽으로 대체된다. 공간은 하나로 연속해 있으므로 방 안에서 보이는 원기둥은 총 11개다. 그런데 이 기둥은 모두 다르다. 광택이 나도록 검게 또는 하얗게 칠한 철제 파이프, 검은색 철제 파이프에 좁게 자른 소나무 판을 붙인 원기둥, 등나무를 위아래 조금 남기고 모두 감은 기둥, 아래 3분의 1 지점을 감은 기둥, 또 이런 두 개 또는 세 개를 다시 등나무로 감은 기둥이 있다. 철제 파이프 기둥에는 콘크리트가 충전돼 있으며, 서재에는 노출 콘크리트 원기둥이 독립해 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왜 그렇게 했을까? 하나로 연속된 이 공간에 11개의 기둥을 모두 노출 콘크리트 기둥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하면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다. 이런 기둥은 강한 표정으로 독립해 있고 공간이 거의 비슷한 분위기로 나뉜다. 그러나 노출 콘크리트 기둥은 서재 안에만 하나 쓰였고, 나머지는 등나무를 감거나 좁은 소나무 판재를 붙였으며 철제 파이프는 검거나 하얗게 칠했다. 그 결과 시선을 분산해 기둥이 서 있는 각각의 공간을 달리 지각한다. 그런가 하면 거실 한가운데 있는 기둥은 대각선으로 시선을 이끈다. 현관홀에 들어선 사람의 시선은 이 기둥을 지나 주택 전체의 중심인 난로로, 그리고 다시 하얀 치장 벽토 줄눈이 뚜렷한 벽돌 벽으로, 또다시 벽에 걸린 후안 그리스(Juan Gris)의 기타 그림으로 이어진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 기둥은 식당, 계단, 거실, 음악실을 바라보는 시선을 대각선으로 이어준다.
매끄러운 바닥의 타일과 소나무를 좁게 잘라 조밀하게 붙인 1층 천장은 북유럽의 약한 빛을 마지막까지 은은하게 반사하며 방 안을 비춰 준다. 그런데 이 천장 면에는 잘 보이지 않지만 지름 15㎜의 작은 통기구멍이 5만2000개나 뚫려 있다. 핀란드의 추운 겨울을 생각하면 250㎡나 되는 공간을 한 개의 난로로 감당하기 어렵다. 그래서 난로 옆의 하얗게 칠한 두꺼운 벽 속과, 서재와 현관홀 사이의 벽 속에 숨겨둔 공기조화와 환기용 닥트를 두고 지하 보일러실에서 따뜻해진 공기와 깨끗해진 공기를 이 구멍을 통해 실내로 유입시켰다.
또한 미술품 수집가이기도 했던 건축주 부부는 예술과 생활을 융합하는 새로운 주거 공간을 구상하고자 했다. 처음에는 갤러리를 별동으로 만들거나 집 안에 두려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넓은 1층 전체를 한 공간으로 하고, 현관홀에서 거실, 서재, 음악실 전체를 느슨하게 칸막이해 갤러리로도 사용했다. 칸막이벽 속에 수납 선반을 두어 미술관 수장고처럼 사용하고, 벽에는 계절이나 손님에 맞게 그림을 바꿔 걸어서 자신의 컬렉션을 즐길 수 있게 했다. 이것만 생각하면 다소 사치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것은 예술과 일상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새로운 주택을 구상하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그러나 마이레아 주택의 더 큰 의미는 건축가나 건축주가 이 주택을 양산주택을 위한 실험 장소로 여겼다는 데 있다. 양산주택은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있던 시기에 많은 건축가의 중요한 주제였는데, 알스트롬사도 이미 1930년대 당시 잘 짜인 평면에 건축비가 저렴한 양산주택에 큰 관심을 보였다. 이를 위해 알토는 획일적이고 개성적인 감각이 없는 양산주택이 아니라, 과학 기술이 아닌 변화하는 자연에 바탕을 둔 양산주택을 구상하고 있었다. 그는 1940년을 전후해 모두 62종의 단독주택을 양산할 수 있는 ‘A·A 시스템’을 제안했는데, ‘A·A’란 알스트롬사의 A와 알바르 알토의 A를 합친 것이었다. 그만큼 이들은 절대적인 신뢰와 협력 관계로 양산주택을 기획하고 있었다.
근대주택의 명작들은 모두 특정한 어떤 한 가족을 위해 지어졌다. 그러나 알토의 마이레아 주택을 명작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이와는 전혀 다른 이유가 있다. 당시 근대건축가들의 양산주택과 달리, 이 주택은 전통과 지역에 바탕을 둔 가치, 숲과 호수의 상징적 풍경과 빛, 그리고 예술과 일상이 결합된 삶이 있는 주택을 새로운 사회에 더 많은 사람이 갖게 하자는 건축가와 건축주의 이상으로 완성된 집이었다. 건축주 부부는 이런 말로 알토에게 이 주택 설계를 의뢰했다. “이제까지 없던 양산주택을 위해 실험하는 주택이라고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주십시오. 만약 잘되지 않더라도 저희는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건축을 정성 들여 짓는 또 다른 이유를 이 마이레아 주택에서 배운다. (문화일보 11월21일자 26면 9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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