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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⑧ 美산업디자이너 임스부부 주택

<지식카페> 공업용 자재 썼지만… 실내는 햇빛과 풍경이 共存하는 집

  • 문화일보
  • 입력 2018-10-24 10:37

미국의 유명한 산업디자이너인 임스부부가 설계한 임스 주택. 주택의 거실 공간은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 @Eames Foundation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⑧ 美산업디자이너 임스부부 주택

대량생산 H형강 등 주문·제작
평범한 재료 새롭게 구성·응용

비용 줄이고 건축 시간도 단축
단순하고 무미건조하게 보여도

집 앞 유칼립투스 나무 열 그루
거실선 풀밭·태평양이 한눈에


목조 주택은 자연을 연상시키고 노출 콘크리트 주택은 추상적인 ‘비움’의 건축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오늘날 현대 기술이 생산한 냉정한 재료인 철골 구조와 덱 플레이트로 지은 주택은 어떻게 생각될까? 더구나 프리패브 재료나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한 공업화 재료로 주택을 지었다고 하면 과연 많은 이가 이런 주택에 흥미를 가질까? 미국의 ‘아츠 앤드 아키텍처’(Arts and Architecture) 잡지의 주관으로 싼 비용에 대량생산되는 건재로 다른 사람도 따라 지을 수 있는 근대 주택을 캘리포니아에 지어 보자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미국 건축역사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설 프로젝트였다. 이때 제안된 주택을 ‘케이스 스터디 하우스’(Case Study Houses)라 한다. 36개의 주택이 제안됐고 25개가 실제로 지어졌다. 그중 여덟 번째로 지어진 주택이 임스 주택(The Eames House, 1949)이었다.

이 주택의 건축주이자 건축가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산업디자이너인 찰스와 레이 임스(Charles and Ray Eames) 부부였다. 이 주택은 주거 공간이면서 가구, 광고, 영화, 섬유디자인, 공업디자인 등을 광범위하게 작업한 현장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주택은 매우 편안하고 쓸모가 있으며 철저한 생활공간으로 크게 주목받았다. 무엇보다도 이 주택은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한 철과 유리 등으로 지어졌는데도 생활과 자연이 투영된 겸손한 집이 됐다. 그래서 이 주택은 미국의 시적인 실용주의의 지침으로 여겨지고 있다.

익명적인 공업화 재료가 생활과 사물을 드러낸다. ‘House After 5 Years of Living’ 캡처

낮은 언덕과 나무들 사이의 긴 땅에 집이 앉혀 있다. @Wikimedia Commons


이 주택은 1945년에 설계를 시작해 4년 만에 완공됐다. 그러나 실제 공사 기간은 1년도 안 된다. 처음 두 해는 찰스 임스와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 에로 사리넨(Eero Saarinen)이 같이 설계했다. 이때는 미스 반데어로에(Mies Van Der Rohe)의 영향을 받은 단층의 입체가 대지 한가운데에서 태평양을 바라보도록 동서 방향으로 길게 배치됐다. 마치 필로티 위에 높이 매달린 다리와 같은 집이었다. 그러나 이 안(案)은 아름답고 넓은 풀밭을 크게 해치고 두세 그루의 큰 나무도 베어내야 했다. 게다가 철골을 많이 사용하면서도 용적은 별로 크지 않았다.

전후에 물자가 부족해 주문한 재료가 도착하는 데 3년이 걸렸다. 임스 부부는 풀밭에서 피크닉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사이에 이 대지의 넓은 풀밭이 얼마나 큰 기쁨을 주는지 조금씩 뚜렷하게 인식하게 됐다. 그리고 줄지어 서 있던 열 그루의 유칼립투스 나무 뒤에 있는 좁고 긴 땅에 주목하게 됐다. 이 땅은 평평하기는 하지만 집을 짓기에는 작아서 바로 옆에 있는 언덕은 제법 쳐내야 했다.

1947년부터는 찰스 임스가 이 집을 설계했다. 그는 이전의 배치를 90도로 돌려서 낮은 언덕과 나무들 사이의 긴 땅에 집을 앉혔다. 그리고 긴 건물을 거실 동과 스튜디오 동으로 나누고 그사이에 중정을 뒀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한 층 높이의 옹벽을 50여m나 쳐내야 했다. 이 때문에 옹벽 시공비로 5000달러가 더 지출됐다. 그렇지만 이렇게 해서 거실에서는 저 멀리 태평양을 바라보고, 동쪽으로는 풀밭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간직할 수 있었고, 주택은 나무 옆에 가까이 있을 수 있었다. 뒤늦게 H형강이 현장에 도착했고 이미 구조재도 주문해 둔 상태였으므로 주문한 재료를 모두 사용해 최소한의 재료로 최대의 용적(232㎡, 70평)이 되도록 이층집을 계획했다.

임스는 이 주택을 통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군수용으로 개발된 재료와 대량생산을 통한 알맞은 비용으로 전후의 주택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택 모델을 제시하고 싶었다. 그래서 옹벽을 제외하고 이 주택을 모두 건식 공법으로 지었고, 철재 조립 업체의 카탈로그에서 주문할 수 있는 표준 부품으로 설계했다. 당시 상업 건물에 대량으로 사용됐던 경량 H형강이 처음으로 이 주택에 쓰인 것은 이 때문이다. H형강과 노출된 골강판 천장은 주문 제작했다. 벽은 조립식 패널을, 창문은 보통 공장에서 사용하는 것을, 계단은 배에서 사용하는 용품 카탈로그를 보고 주문했다. 철골은 운반비 등을 감안할 때 목재보다 비싸지만 노무비는 목조의 33%밖에 안 돼 공사비를 줄이는 데 적합했다. 이때 사용된 철골은 11t이었다. 그러나 5명의 노동자가 불과 16시간 만에 모두 조립했으며, 지붕 덱도 한 사람이 3일 만에 완성했다. 천장에 노출된 높이 12인치인 트러스 보도 공장 생산품이며, 나머지 조립과 페인트칠은 임스 사무소의 직원들이 해주었다. 당시 공사비가 ㎡당 1달러(지금 돈으로는 약 10달러)밖에 안 들었다. 이것은 당시 일반 주택 공사비가 ㎡당 11.5달러였던 것과 비교하면 아주 쌌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첨단 기술만을 강조하는 관점이 아니었다. 그들은 시대를 앞서 일찌감치 재료의 재생을 실천한 이들이었다. 임스 부부는 가지고 있던 차 중에서 포드 차 한 대는 18년이나 사용했다. 또 이 주택에서 40년이나 살면서 바꾼 것은 단 하나, 냉장고 한 대뿐이었다. 이처럼 이 주택은 거의 아무것도 버리지 않는다는 그들의 사고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임스 주택이 대량생산된 자재만을 사용했다고 유명한 것은 아니다. 대량생산되는 재료를 구성하는 방식이 새로웠고 늘 옆에 있는 평범한 재료를 새롭게 응용할 줄 아는 재생의 사고로 지어졌기 때문이다. 20세기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 주택은 이런 관점에서 오늘날 다시 살펴봐야 할 주택이다.

실제로 이 집을 잘 살펴보면 카탈로그에서 구입한 표준화된 공업화 자재인데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차갑게 느껴지는 H형강의 가벼운 구조체 사이로 방마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부드러운 빛이 하루 종일 들어온다. 이런 방 안에는 이들이 디자인한 가구, 산업디자인, 책, 직물, 민예품, 조개, 바위, 빨대 바구니 등 수많은 사물이 함께하고 있다. 주택의 벽면에는 한 층 높이를 6개로 나눈 창이 많이 사용됐다. 이 창에는 투명 유리, 반투명 유리, 철망이 삽입된 유리 등을 섞어서 사용했는데, 제조 회사가 모두 달랐는데도 두께가 규격화돼 있어서 카탈로그로 주문한 창틀에 모두 정확하게 끼워졌다. 또 크기가 다른 여러 패널도 모두 일정한 모듈에 잘 맞춰졌다. 이는 저렴한 비용의 성형 합판으로 디자인한 가구인데도 품질이 높은 제품을 만든 임스 부부의 높은 안목에서 나온 것이다.

철골로 단순하게 지어진 네모난 상자처럼 생긴 이 집이 무미건조한 집으로 보이고, 빨간색, 파란색을 칠한 벽은 몬드리안의 예술에 직접 영향을 받은 주택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이 주택 안과 밖에는 거주자의 개성과 삶이 그대로 투영돼 있다. 넓은 대지에서 보면 이 주택이 있는 언덕은 꽤 닫혀 있다. 이 주택은 바로 인접한 언덕과 줄지어 선 열 그루의 유칼립투스 나무들 사이에 있다. 그 덕분에 남쪽을 향한 2층 높이의 거실은 동쪽으로는 풀밭을 향하고 대각선으로는 바다를 향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거실 한쪽 한 층 높이의 구석에는 소파와 테이블이 아늑하게 들어가 있다. 대지에서 언덕으로, 그리고 언덕에서 집으로, 집에서 거실로, 거실에서 다시 이들이 앉아 지내는 자리로 적당히 닫힌 아늑한 장소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철과 유리로 지어진 집인데도 같은 시대에 지어진 다른 근대 주택과 달리 “이 집은 우리 집”이라는 주거의 본질을 깊이 느끼게 해준다.

임스 부부는 각각 42세, 37세가 되던 1949년 크리스마스이브에 이사해 왔다. 그리고 그 이후 평생 이 주택에서 살았다. 임스 부부는 살면서 크고 작은 사물과 함께했고, 아주 작은 공예품일지라도 커다란 부분과 똑같이 중요한 존재감이 나타나게 배려했다. 그래서 이 주택은 거주자의 생활을 받아들이며 같이 변했고, 모든 스케일에서 집과 사물, 컬렉션은 그들의 살아온 방식을 그대로 남길 수 있었다. 문자 그대로 이 집은 부부의 생활과 소유물을 담는 그릇이었고, 집 자체가 하나의 종합적 환경이었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임스 부부는 완공된 지 5년 후인 1955년에 이 집을 사물을 접사하듯이 찍은 수백 장의 스냅사진을 빠르게 보여주며 지어진 과정 등을 소개한 ‘House After 5 Years of Living’(살기 시작한 지 5년 된 주택)이라는 11분짜리 단편영화를 만들었다. 이 영상은 공업화 재료로 지어진 임스 주택 안에서 생활과 자연이 얼마나 아름답게 펼쳐지는지 거주자가 스스로 기록한 것이다. 이 영상은 인터넷에서 금방 찾을 수 있으니 편한 마음으로 천천히 보기 바란다.

이 영상에서 묘사돼 있듯이, 이 주택에는 나뭇잎도, 꽃도, 집의 구조물과 디테일도 모두 빛과 그림자 속에서 하나로 묶여 있다. 공업화 재료로 된 이 집은 우리의 선입견처럼 거실 안 풍경과 바깥 풀밭이 따로 있지 않고, 나무와 나란히 있는 철골 기둥과 커튼은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가느다란 철재 새시에 끼워진 유리창이기에 바깥 풍경이 창에 반사되고 투과돼 안팎에 있는 사물들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장면을 도처에서 발견할 수 있다. 창을 통해 들어온 나무 그림자가 거실의 흰 벽에 드리우는가 하면, 창에 끼워진 서로 다른 유리가 제각기 다른 빛을 비춰주기도 하고 시선을 막아주기도 한다. 반투명한 주름 커튼은 처진 상태에 따라 밖의 풍경을 비추기도 하고 음영을 드리우며 흐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가구에는 사물이 놓여 있고 바닥은 아예 사물로 덮여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주변의 모든 것, 꽃이나 나무, 방 안에 놓인 의자와 탁자, 카펫, 책, 찻잔, 그리고 건축물의 세부가 모두 동등한 스케일로 나타난다.

예술적으로 지어져 사물이 언제나 제자리에 그대로 있어야 하는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노출 콘크리트 주택에서는 물건이 이렇게 잡다하게 놓여 있는 것이 용납되지 않는다. ‘비움’이 더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스 주택에서는 카탈로그에서 주문해 들여온 재료로 지어졌기에 거주자의 일과 놀이, 자유로운 삶과 자연이 공존하며 삶의 표정을 맘껏 드러낼 수 있었다. 역설적인 현상이다.

찰스 임스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주인은 손님의 요구를 예측하려고 한다.” 건축은 계속 살아가는 사람의 요구가 펼쳐지도록 해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목표는 단순하다.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최선의 것을 주는 것이다.” 건축의 목표는 한두 사람에게 유익한 예술이 아니라 많은 사람에게 어떤 일을 할 수 있는 데 가장 큰 가치가 있다는 뜻이다. 또 하나, 오늘날 건축을 소개할 때는 대체로 공간을 광각 렌즈로 찍는다. 그러나 임스 주택의 기록 영화에는 그런 장면이 하나도 없다. 디테일과 어떤 사물을 대하는 순간이 중시돼 있다. 사람이 사는 주택이란 살아가면서 얻는 체험이 병치되고 누적되는 곳이다. 평범하고 익명적인 재료 속에서. 이것이 임스 주택에서 배워야 할 영감의 원천이다. (문화일보 9월12일자 24면 7회 참조)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출처 - <지식카페>공업용 자재 썼지만… 실내는 햇빛과 풍경이 共存하는 집 :: 문화일보 munhw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