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⑪]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신길중학교’
- 기자명 서정필 기자
- 입력 2022.12.05 15:55
고층 아파트단지 된 동네 가운데 따뜻한 집 같은 학교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서울시건축상 이어 한국건축문화대상까지 수상
설계자 이현우 건축사 “집(아파트)보다 더 ‘집’처럼 작고 낮은 모습으로”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열한 번째 작품은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신길중학교’(설계자 이현우 건축사)이다.
“우와 너희 반에는 보라색 분필도 있네.”
중학생이 되고 얼마 안 된 시절이었다. 하교할 때마다 오락실을 같이 가던 동네 친구가 주번이 걸린 주여서 친구네 반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보라색 분필이 눈에 들어왔다. 한참 동안 우리 반과 뭐가 다른지 찾아다니다가 겨우 발견한 게 보라색 분필이었다. 아직 환경미화도 하지 않은 때여서 안에 들어와 있으면 우리 반과 다른 반을 구별할 것이 마땅치 않았다. 교실은 당연히 똑같이 생겨야 하는 것인 줄 알았다.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신길중학교(설계자 이현우 건축사, 주.이집건축사사무소)는 보라색 분필을 애써 찾지 않아도 우리 반과 다른 반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또 저마다 높이를 자랑하는 듯한 신축 아파트들 사이에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듯한 느낌의 건축물들이 보기 좋게 배열돼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모습의 학교에 대한 고정관념을 잊게 만드는 외형이다. 똑같이 생긴 교실 중 하나에 들어가 작은 책상에 지겨운 하루를 버티던 이들에게 신길중학교의 모습은 부러움을 자아낸다. 땅이 높이를 고려해 낮고 넓게 펼쳐진 작은 집(학급)들. 어떤 집은 삼각형 지붕에 빨간 벽돌 벽이고, 또 다른 집은 평평한 지붕에 흰색 벽으로 돼 있어서 다르지만 조화를 이룬다.
학교가 위치한 영등포구 신길동은 과거 소위 ‘달동네’로 불리던 지역이다. 지어진 지 꽤 오랜 시간이 흐른 연립주택과 다세대 주택이 모여 있고 좁은 골목길을 지나야 큰길을 만날 수 있던 곳. 이곳은 지난 2005년 당시 서울시가 추진했던 서울시 제3차 뉴타운 후보지 중 하나로 결정되면서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한다. 2015년경부터 과거 낡은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던 곳은 내로라하는 대형 건설사들의 브랜드가 찍힌 새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상전벽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달동네에서 최첨단 아파트 단지로 변화했지만, 대신 과거 신길동 골목길에서 느끼던 따뜻함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신길중학교는 이 아파트에 새로 이사한 중학교 학생들을 위해 새롭게 개교할 학교였다.
설계를 맡은 이현우 건축사는 삭막한 고층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있는 학생들이 학교에서 사람 냄새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데 설계의 초점을 맞췄다. 이 건축사는 “이곳의 학생들은 획일적이고 거대한 도시스케일의 박스형태인 아파트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다닐 학교는 이와 반대로 ‘집(아파트)’보다 더 ‘집’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작고 낮은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며 설계에 들어갈 당시 생각을 전했다.
지난 8월 건축문화대상 심사 당시 학교 분위기는 활기찼으며, 마치 학교가 아니라 진짜 집에 와 있는 것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 건축문화대상을 받은 이 시점에서, 학교가 건축사의 설계 의도대로 잘 쓰이는지, 학생들의 반응은 어떤지 따로 학교 측의 답변을 요청한 결과 “2021 대한민국 공공건축상 최우수상과 2022 서울시 건축상 그리고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수상이 이어지며 취재 요청이 많아졌다”며 “학교건축 변화에 대해 공감하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다음은 설계자 이현우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설계자 이현우 건축사 일문일답
▲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여느 공공건축물과 마찬가지로 신길중학교도 설계공모를 통해서 시작하게 되었고, 설계공모안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제안하게 된 것은 주변 맥락으로부터 자연스럽게 도출된 결과입니다. 신길중학교는 신길뉴타운의 가운데에 입지해 있고, 학교 주변을 20층 이상의 고층아파트들이 에워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곳 학생들은 그와 같은 획일적이고 거대한 도시스케일의 박스형태인 아파트에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그곳에 사는 학생들을 위해서 학교는 이와 반대로 ‘집(아파트)’보다 더 ‘집’처럼 위압적이지 않고 작고 낮은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원초적으로 갖고 있는 ‘집’의 가장 보편적이고 친밀한 모습은 삼각지붕의 집이고, 또한 우리가 보통 ‘집’이라고 인식하는 공간은 기존 전형적인 학교처럼 그렇게 큰 스케일은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 집의 스케일은 교실 모듈 하나 정도의 크기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를 그 크기로 분절시키고 다시 사이좋은 이웃처럼 모아놓은 것이 지금 신길중학교의 모습이고, 이것은 초기부터 견지하고 염두에 뒀던 점입니다.
▲ 그러한 점을 실제 설계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신길중학교 건축의 가장 큰 의의는 ‘학교공간 구조유형으로서의 새로움’입니다. 바로 학교건물이 테라스하우스처럼 구성되고 그 사이사이에 교실과 가까운 중정들이 켜켜이 중첩된 공간구조유형을 말합니다. 그와 같은 공간구조가 적용될 수 있었던 것은 학교부지와 접한 주변 지형레벨이나 향 등의 여건이 전제가 되었습니다. 학교건물이 앞에서부터 2,3,4층의 테라스하우스처럼 배치되어, 등하교 시 마주하는 학교의 모습은 마치 2층 높이의 야트막한 이웃집들과 가로수들이 늘어선 편안한 동네길 모습이 됩니다. ‘낮고 넓게 펼쳐진 학교’와 더불어 중요한 콘셉트는 ‘가까운 마당’과 개별적인 집들의 집합체로서의 ‘마을 같은 다양성’입니다. 아이들이 교실에서 좀 더 쉽게 접근해서 자연과 하늘을 볼 수 있는 많은 중정들을 학교공간 군데군데 배치했고, 중학생들에게 특히 ‘개별성’과 ‘다양성’이 중요한 가치를 지니듯 집합체로서의 학교도 다채로운 모습을 갖도록 했습니다.
▲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학교건축’의 범주에서 생각하는 건축적 지향점은 ‘생활공간으로서의 학교’입니다. 학창시설이란 단순히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유예되는 시간이 아니라 누려야 할 삶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은 너무나 당연하지만, 대부분 우리 기억 속의 그 시절은 오로지 미래로 내달리기 위해 빨리 지나가고 싶은 준비기간일 뿐이었습니다. 미래를 위하여 청소년기에 누릴 수 있는 행복과 즐거움을 유예토록 과도하게 강요하거나 억누르는 것은 건강한 사회를 위해서도 유익하지 않을뿐더러, 근본적으로 시지프스의 형벌처럼 삶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학교공간을 기능중심적인 교습공간이 아니라 ‘집’과 같이 정서적인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생활공간으로 만드는 것, 그리고 그러한 관점으로 학교 건축 프로젝트에 접근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소박한 역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모든 건축물이 그렇지만 특히 공공건축물의 경우, 단지 몇 명 설계자나 관련인의 노력만으로 원하는 지향점을 구현하기에는 너무나 많은 변수가 있다는 것을 매번 프로젝트마다 느끼게 됩니다. 사실 애당초 공공건축물의 구현과 작동까지의 긴 여정에서 건축사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길중학교가 구현된 데는, 여러 복합적인 행운이 뒤따랐다고 볼 수 있거나 아니면 의도하거나 의도하지 않은 어떤 시스템적인 흐름에 편승되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먼저, 기존과 다른 색다른 학교공간 구조유형 제안을 선뜻 받아들인 전향적인 성향의 설계공모 심사위원들이 있었고, 설계 중에는 당초 계획안을 구현시키기 위해서 설계자를 독려하고 같이 노력한 교육청 담당관이 있었고, 준공 후에는 경험하지 못한 공간을 잘 작동시키기 위해서 지금도 노력하고 있는 열정과 애정을 가진 학교 교직원들이 있습니다. 이와 같은 여러 요인으로 당초 의도한 지향점은 비교적 잘 구현되었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한 과정 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Q. 최근 ‘신길중학교’에 들르신 적이 있는지? 있다면 그 때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건축공간의 전체 생애주기를 생각하면, 신길중학교는 개교한지 아직 1년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거의 신생아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연히 안착에 긴 호흡이 필요하지만, 짧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학교공간은 열정과 애정을 가진 교직원과 학생들의 고민과 노력으로 많이 진화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댄스연습실도 생겼고, 공용공간은 학생들이 직접 만든 소품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안전을 위한 시설보강과 흡음마감재도 추가로 설치되었습니다. 각 층의 옥상마당도 주제가 있는 테마마당으로 재조성해 나가고 있고, 공공건축물이 가지는 공사의 한계도 극복하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어떤 건축물이든 준공된 직후의 무색무취한 건축공간은 실제 사용자들의 자취로 비로소 생활공간으로 다채롭게 변모된다고 생각합니다. 신길중학교 건축물의 가장 큰 의의인 ‘새로운 학교공간구조 유형’이 그와 같은 노력과 변화를 통하여 잘 작동되고 진화하기를 기대합니다. 학교 교직원과 학생들의 힘겹기도 하고 즐겁기도 한 그 여정에 많은 관심과 응원을 부탁드립니다.
Q. 지난해와 올해 연속된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물론 연속된 수상이 개인적으로도 매우 영광이고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학교건축물에 대한 건축상 수상이 가지는 사회적 메시지가 남다른 의미를 가질 것 같습니다. 사실 과거를 생각하면 근래 학교건축물이 하나의 건축작품으로서 여러 건축상으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변화입니다. 몇 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점점 고조되는 학교건축에 대한 관심, 변화를 위한 각계각층 많은 분들의 노력과 관련 기관들의 여러 정책들, 그리고 서서히 나타나는 다양한 결과물들, 특히 학교건축물에 대한 인식의 변화들에 대해 격려하고 응원하는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구현될 또 다른 다양한 학교공간을 촉진하는 사례로서 작용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항상 관심을 두는 것은 현재 진행하는 프로젝트고,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은 이번 프로젝트에서 미처 못 한 수많은 시도들과 아쉬운 결과들입니다.
출처 - [수상 그 후⑪] 2022 한국건축문화대상 사회공공부문 대상 ‘신길중학교’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nc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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