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전통건축 갤러리 ■/전 남

강진 무위사 - 3 (2024. 03.)

 

 

 

 

 

 

 

 

 

무위사無爲寺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大興寺)의 말사이다.

신라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여 관음사(觀音寺)라 하였고,

875(헌강왕 1)도선(道詵)이 중건하여 갈옥사(葛屋寺)라고 개칭한 뒤,

많은 승려들이 주석하였다.

 

905(효공왕 9)선각(禪覺)3창하였다.

  1407(태종 7)무위사가 천태종(天台宗) 17자복사(資福寺) 중의 하나가 되었다.

1430(세종 12) 극락전을 지었는데,

이 건물은 현재도 남아 있다.

 

1555(명종 10)태감(太甘)4창하면서 무위사라 하였다.  

이때의 당우는 본절이 23, 암자가 35개로 모두 58동에 이르는 대찰이었으나,

그 뒤 화재 등으로 규모가 크게 축소되었다.

 

당우는 최근까지만 해도 극락전·명부전과 요사채 뿐이었으나

1678(숙종 4)에 극락전 앞에 괘불대를 조성하였고,

1739(영조 15)에는 해초(海超극잠(克岑) 등이 전각을 보수하였다.  

1975년 벽화보존각(壁畵保存閣)과 해탈문(解脫門봉향각(奉香閣

천불전(千佛殿미륵전(彌勒殿) 등을 중건하였으며,

1991년에 산신각을 짓고 1995년에 동쪽 요사를 증축하여

오늘에 이른다.

 

이 중 극락보전은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벽에는 29점의 벽화가 있었으나

지금은 본존불 뒤의 가로 4m, 세로 7m 크기의 후불탱화만이 남아 있고,

28점은 보존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벽화들은 법당이 완성된 뒤 찾아온 한 노거사(老居士)

49일 동안 이 안을 들여다보지 말라고 당부한 뒤

그렸다는 전설이 있다.

49일째 되는 날, 주지가 문에 구멍을 뚫고 들여다보니 파랑새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마지막으로

후불탱화의 관음보살 눈동자를 그리고 있었는데,

새는 인기척을 느끼고 어디론가 날아가 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후불탱화의 관음보살상에는 눈동자가 없다.  

 

이 밖에도 선각대사변광탑비(先覺大師遍光塔碑)

보물 제507호로 지정되어 있고,

그 옆에는 석탑형식을 취한 보기 드문 부도가 있는데,

선각대사변광영탑(先覺大師遍光靈塔)으로 명명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76호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미륵전 안에는 고려 말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입상이 있다.

(글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보

강진 무위사 극락보전 (康津 無爲寺 極樂寶殿)

Geungnakbojeon Hall of Muwisa Temple, Gangjin

 

 

문화재 설명

 

무위사는 신라 진평왕 39(617)

원효대사가 관음사라는 이름으로 처음 지은 절로,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공사가 진행되면서 이름도 무위사로 바뀌게 되었다.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극락보전은 세종 12(1430)에 지었으며,

앞면 3·옆면 3칸 크기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으며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조각이 매우 세련된 기법을 보여주고 있다.

 

이 건물은 곡선재료를 많이 쓰던 고려 후기의 건축에 비해,

직선재료를 사용하여 간결하면서 짜임새의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조선 초기의 양식을 뛰어나게 갖추고 있는 건물로

주목 받고 있다.

 

 

 

 

 

 

 

 

 

 

 

 

 

 

 

 

 

 

 

 

 

 

 

 

 

 

 

 

 

 

 

 

 

 

 

 

 

 

 

 

 

 

 

 

 

국보

무위사극락전아미타후불벽화 (無爲寺極樂殿阿彌陀後佛壁畵)

Amitabna Buddha Wall Painting in Geungnakjeon Hall of Muwisa Temple

 

 

문화재 설명

 

2009.09.02 국보 제313호로 승격지정.

 

극락보전 후불벽 앞면에 그려져 있는 아미타삼존불벽화이다.

앉은 모습의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왼쪽에 관음보살이,

오른쪽에는 지장보살이 서 있는 구도를 하고 있다.

화면의 맨 위부분에는 구름을 배경으로

좌우에 각각 3인씩 6인의 나한상을 배치하고

그 위에는 작은 화불 2불씩이 그려져 있다.

 

아미타극락회도 장면을 그린 이 벽화는

앞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상과 매우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중앙의 본존불은 비교적 높은 연꽃대좌 위에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양어깨를 모두 감싼 옷을 입고 있으며

뒤로는 키모양의 광배가 표현되었다.

왼쪽에 서있는 관음보살은 머리칼이 어깨 위에 흘러내린 모습에

얇고 투명한 겉옷을 입고 있으며,

오른쪽의 지장보살은 오른손으로 석장을 짚고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채색은 주로 녹색과 붉은색을 사용하였다.

 

조선 성종 7(1476)

화원 대선사 해련에 의해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벽화는

온화한 색채나 신체의 표현 등 고려시대의 특징적 요소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간결한 무늬나 본존불과 같은 크기의 기타 인물 표현 등

조선 초기 불화의 새로운 특징들이 잘 나타나 있어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보물

무위사 극락전 백의관음도 (無爲寺 極樂殿 白衣觀音圖)

Buddhist Painting in Geungnakjeon Hall of Muwisa Temple (Avalokitesvara in White Robe)

 

 

문화재 설명

 

극락보전 후불벽화인 아미타후불벽화(보물)의 뒷면 그림으로,

떠가는 듯 일렁이는 파도 위에 연잎을 타고 서 있는 백의관음보살이

그려진 벽화이다.

 

하얀 옷을 입고 있는 백의관음보살은 당당한 체구에 흰 옷자락을 휘날리며,

오른쪽으로 몸을 약간 돌린 채 두손을 앞에 모아 서로 교차하여

오른손으로는 버들가지를 들고 왼손으로는 정병을 들고 서 있다.

간략화된 옷주름과 더불어 팔찌와 가슴장식 역시 간소화되어 있긴 하나,

힘있고 빠른 필치로 바람에 심하게 흩날리는 듯한 옷자락과

넘실대는 듯한 파도를 표현함으로써 강한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

 

관음보살의 뒤쪽으로는 해 모양의 붉은색 원이 그려져 있고,

앞쪽 위에는 먹으로 5언율시가 씌어져 있다.

그리고 앞쪽 아래 구석쪽으로는 둔덕이 마련되어 있고,

관음보살을 향해 무릎을 꿇은 채 두 손을 벌려 손뼉을 치고 있는 듯한 자세의

비구(比丘)가 자리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비구 어깨 위에 머리를 뒤로 돌려 관음보살을 쳐다보고 있는

새 한마리가 앉아 있는 것인데,

백의관음보살에 비하여 비교적 섬세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성종 7(1476) 경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앞면의 아미타후불벽화와 더불어 고려식 조선 초기 불화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이상 글 출처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