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⑧] 2018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본상 ‘멋진 할아버지집’
- 기자명 서정필 기자
- 입력 2022.10.11 12:11
앞만 보며 달리다 지친 베이비부머 세대 부부의 휴식처
설계자 이기철 건축사 “단순히 기능적인 집이 아니라 편리하면서도 삶의 여유 담아내는 디자인 하는 데 주력”
건축주 안수경 여사 “만족도 상당히 높아…집 짓기 고민하는 분들, 주저하지 말고 집 지었으면”
“더 나이 들기 전에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싶어.”
국내 건축 문화를 이끌 다채로운 건축물들을 선정했던 한국건축문화대상, 해마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그 여덟 번째 작품은 2018년 일반주거부문 본상 수상작 ‘멋진 할아버지집’(설계자 이기철 건축사)이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마당 있는 시골집에서 살고 싶어.”
1960년대 초반 태어나 인생 대부분을 산업화 시기와 함께 앞만 보고 달렸던 이경호 씨는 마흔을 넘기면서 아내 안수경 씨에게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해양대학교를 졸업한 뒤 잠시 배를 타다가 보험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한 그는 복잡한 도시를 벗어난 곳에 집을 짓고 노후를 보내고 싶었다. 부산에서 교육공무원으로 일하던 아내는 처음엔 “그게 무슨 이야기냐”하고 펄쩍 뛰었지만 남편의 간절한 태도에 결국 집을 짓는 데 합의했다. 이후 부부는 집을 지을 땅 그리고 마음에 드는 집을 설계해 줄 건축사를 찾느라 꽤 오랜 세월을 보냈다.
남편 이경호 씨는 한 인터뷰에서 “은퇴 후의 삶이 다채로워질 수 있도록 많은 준비를 해왔어요. 그중 큰 숙제가 어떻게 하면 어린 시절 살았던 촌집처럼 정겨운 집에서 살 것인가였어요. 아파트에서의 삶은 일과 가족에게 필요한 조건 같은 것이었다”라고 그 당시를 회고했다.
집을 짓기까지 과정은 결코 쉽지만은 않았다. 무작정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마음에 드는 집이 있으면 무턱대고 벨을 누르고 설계한 건축사가 누구인지 묻기도 했다.
이렇게 5년여 노력 끝에 인연이 된 게 이기철 건축사(주.아키텍케이건축사사무소)이고 이 건축사와 소통 끝에 탄생한 집이 바로 지난 2018년 한국건축문화대상 일반주거부문 본상을 수상한 ‘멋진 할아버지집’(경남 김해시 상동면 여차리 607외 2필지)이다. 이 건축물은 2022 아카시아 건축상 카테고리 A1(단독주택부문) 골드메달 수상의 영광도 안았다.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지켜지는 주택 생활을 누리고 자연의 모습을 조망하기 위해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에 자리한 지금의 집터를 보고 부부는 “정말 우리가 원했던 땅”이라는 생각이 들어 일주일 만에 망설임 없이 매입했다. 이름 ‘멋진 할아버지집’은 건축주가 은퇴하면서 손자들에게 낭만과 예술을 좋아하고 품위 있는 할아버지로 기억되면 좋겠다고 한 데서 따 만들었다.
질곡의 한국 현대사에서 베이비부머(1953∼1962년생) 세대는 양극단의 상황을 경험한 세대들이다. 한국전쟁 직후 빈곤의 시기를 거쳐 1970년부터 이어진 경제개발과 호황의 시기를 모두 겪었다.
군부의 독재정치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시대를 연 주역이기도 했다. 유년 시절은 토속적 한국문화와 기존 가치관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지만, 30∼40대부터는 개인의 개성을 중시하고 민주적으로 사회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민주주의 분위기에도 익숙한 세대다. 건축주 부부도 대표적인 베이비부머 세대다. ‘멋진 할아버지집’에는 건축주 부부의 이러한 특성이 잘 녹아들어 있다.
이기철 건축사는 “그분들이 어린 시절 살았던 근대 초기의 농가주택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다”면서 “한국적 정서를 가지면서 농업의 기능을 마당과 같은 외부공간으로 충족하는 이런 전통주택은 가치가 큰 건축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가주택의 전형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보금자리로 만들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멋진 할아버지집’은 자연에 순응하는 전통건축의 배치와 그 의미를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기능과 미감을 더하는 방식으로 공간들을 정리했다. 전통건축의 형식인 처마와 툇마루를 금속 소재인 골강판과 김해에서 자생하는 대나무를 활용하여 현대적이면서도 자연적인 공간으로 풀어냈다.
건축주 안수경 여사는 “설계를 하시던 건축사께서 우리나라 어디나 볼 수 있는 집을 짓고 싶은지 아니면 김해에서만 볼 수 있는 집을 짓기 원하시는지 물으시더라고요. 저는 다른 곳에서도 볼 수 있는 집이라면 지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김해에서만 볼 수 있는 집을 지어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고 말했다.
멋진할아버지집을 지을 때도 이 대표는 건축주와 충분한 논의를 거치며 끊임없이 소통했다. 그는 “건축주가 결과보다 과정에 의미를 두겠다는 뜻을 내비쳐 설계를 맡게 됐다”며 “어떤 집을 지을 것인지 수시로 논의하면서 오랜 준비 끝에 건물을 짓게 됐다”고 말했다. 특히 은퇴 후의 삶을 고려해 단순히 기능적인 집이 아니라 편리하면서도 삶의 여유를 담아내는 디자인을 하는 데 주력했다.
그래서 멋진할아버지집은 어디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여러 특징들을 담고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대나무와 금속소재를 결합해 서까래와 기둥 등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다른 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재료다.
이기철 건축사는 “김해에 자생하는 대나무 600본을 직접 골라 여기에 금속소재의 골강판을 결합해 마감재로서 강도를 높였다”며 “이런 과정을 통해 친환경, 자연미가 그대로 드러나는 외관을 갖출 수 있게 됐다. 앞으로 건축에서 대나무가 많이 사용되면 지역 경제와 독특한 지역 건축색 형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집의 장점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안수경 여사는 “찾아오시는 분마다 집 안으로 들어오니 사진을 통해 겉모습을 본 것보다 더 좋다고들 하신다”라면서 “실제 우리집에 오면 주변 자연 풍광을 끌어들이는 넓은 창에 감탄하는 분들이 많다”고 대답했다.
다음은 설계자 이기철 건축사와 건축주 안수경 여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이기철 건축사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이기철 건축사(이하 이) : 전통건축과 현대 건축의 그 사이에 대한 고민은 한국에서 건축하는 사람으로서 계속 염두해 두고 있는 바입니다. 은퇴 후 집을 지으려고 찾아온 베이비부머 세대인 건축주분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분들이 어린 시절 살았던 근대 초기의 농가주택에서 많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한국적 정서를 가지면서 농업의 기능을 마당과 같은 외부공간으로 충족하는 이런 전통주택은 가치가 큰 건축 자산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농가주택의 전형에 현대적 감각을 더해 은퇴한 베이비부머들의 감성을 대변하는 보금자리로 만들어보고자 했습니다.
Q. 이러한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이 : 자연에 순응하는 채나눔과 그 사이에 마당을 형성하는 전통적인 배치로 은퇴 후 다양한 외부활동이 가능하도록 했고, 전통적인 건축적 요소인 기와와 서까래를 현대적 재료인 골강판과 탄화대나무로 치환하면서 한국적 미감을 가지면서도 내구성을 가질 수 있도록 했습니다. 탄화시킨 대나무가 조명에 비쳐져 은은한 황갈색의 색감을 드러내는 이른 저녁의 시간은 건축이 내뿜는 감성적 자극에 취할 수 있는 순간입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이 : 공간의 이용자가 경험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이를 건축으로 귀결시키는 작업을 꾸준히 하고자 합니다. 결국 모든 공간은 개인이 경험하는 방식과 시간에 따라 인식됩니다. 내가 공간에 섰을 때 느껴지는 공간의 크기, 질감, 빛, 풍경, 냄새, 소리 등을 어떻게 느끼느냐에 따라 공간의 질과 가치가 결정됩니다. 저는 이를 '공간의 순간’이라고 표현합니다. 다양한 공간의 순간들을 만들어 내고 이를 통해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건축을 하고 싶습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이 : 멋진할아버지집은 동선을 따라 주변의 자연을 연속된 장면으로 경험토록 하고 특정한 공간에 다다랐을 때 풍경의 경험치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구성했습니다. 안방에 부속된 발코니에 섰을 때 앞산인 금동산의 산세가 발코니의 가로로 긴 개구부를 통해 눈앞에 펼쳐지게 한 것 같은 것입니다. 이 개구부는 공사 중에도 여러 번 그 크기와 높이를 검토해서 시공했습니다.
Q. 최근 ‘멋진할아버지집’에 들르신 적이 있는지? 있다면 그 때 어떤 느낌이 드셨는지?
이: 종종 뵐일이 있어 찾아보고 있는데 그때마다 다양한 재미있는 활동을 하고 계신 건축주분과 그에 따라 조금씩 변화하고 있는 멋진할아버지집을 보면서 집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되는 것 같습니다.
Q. 2018년 건축문화대상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 많은 분들이 공감할 수 있구나 하는 확신과 용기를 많이 얻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기회가 닿으면 한국적 건축의 가치를 보여줄 작업을 지속해 나가고 싶습니다.
Q. 최근 2022 아카시아건축상 A1부문 골드메달을 수상하셨는데 그 소감도 듣고 싶습니다.
이 : 아시아의 건축들이 공유하는 지역적 특성들이 얼마나 큰 힘을 가질 수 있는지 눈으로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올해 수상작 중 그 지역의 특성들을 건축으로 녹아낸 작업들이 많았는데 가슴에 큰 울림으로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서구의 건축이 지배하던 시기를 지나 아시아 건축이 그 자신의 가치를 오롯이 드러내는 장면을 직접 확인하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멋진할아버지집이 한국 건축을 나름 설명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하면서도 그 다음의 작업을 제 스스로 재촉하게 되었습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 :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전통 담장들은 지역에 따라 질감이나 색상이 서로 다르게 드러나는 것이 저에게는 무척이나 특별해 보입니다. 천편일률적인 재료를 벗어나 개성을 드러내고 새로운 미감을 보여주는 것 같아 스터디를 통해 언젠가 다음 작업에 활용해 보고 싶습니다.
건축주 안수경 여사와의 일문일답
Q. 가장 궁금한 것이, 처음에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안수경 여사(이하 안) : 저도 시골 출신이고 남편도 시골 출신인데 저는 시골에서 대학 초반까지 있었기 때문에 시골 생활을 너무 많이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시골로 가는 게 싫었는데 남편(이경호 선생)은 초등학교까지만 시골에서 보내다 보니 시골에서의 유년시절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남편이 조금 퇴직을 일찍 결정했고 너무 힘들게 40∼50대를 보내다 보니까 “너무 힘들다고 집을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4∼5년 정도를 계속 이렇게 부산 인근으로 땅을 보러 다녔었습니다.
Q. 준공 후 5년이 흐른 지금 살아보니 더욱더 참 좋다고 생각되는 점은요? 그리고 집을 지으려고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한 말씀 주신다면?
안 : 찾아오시는 분마다 “집 안으로 들어오니 사진을 통해 겉모습을 본 것보다 더 좋다”고 하십니다. 실제 저희 집에 오면 주변 자연 풍광을 끌어들이는 넓은 창에 감탄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도시를 떠나고 시골에 집을 지으면 아무리 잘 지어도 생활도 많이 불편해지고 또 좋아야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실제 여기서는 배달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해도 주위에 배달이 가능한 곳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보다 더 값진 것이 많이 있기 때문에 (웃음) 말로는 설명이 힘들고요. 직접 경험해야 압니다. 집 짓기를 고민하시는 분들은 고민을 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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