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건축 거장의 파격… ‘살기 편한 집’과 ‘名作’의 경계를 묻다
- 문화일보
- 입력 2018-04-11
프랑스 파리 인근 푸아시에 있는 사보아 주택(Villa Savoye). ‘현대 건축의 거장’으로 알려진 르 코르뷔지에가 설계해 1931년 완공된 주택으로 건축학도들이 답사를 위해 많이 찾는다.
■ 김광현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 - ① 사보아 주택에는 왜 사람이 살지 않는가
주말주택 의뢰한 사보아 부부
아늑한 분위기와 벽난로 원해
르 코르뷔지에, 건축비 확 올려
완성되니 침실까지 비 새는 집
벽난로 작고 밤엔 분위기 스산
건축주 “못 살겠다…고쳐달라”
수 차례 편지에도 巨匠은 딴청
사보아 가족, 9년 살다 美이주
市가 매입해 역사적 유산 남겨
문화재 된 이후 완벽히 고쳐져
사람은 집을 왜 짓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주 간단하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건축은 인간에게 쉼과 행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했듯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서 쉼과 기쁨을 주는 데 있다. 그래서 집을 짓는 이유가 대단할 줄 알았는데 뭐 이리 간단하냐고 많은 이들이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다시 말한다.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집을 짓는다. 이 중요한 조건을 숙고하지 않고 가벼이 여겨서 그렇지, 이리도 간단한 조건에 서면 주택이든 공공건물이든 좋게 지어지게 돼 있다.
20세기의 건축을 열어준 명작으로 첫째 가는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1887∼1965)의 사보아 주택(Villa Savoye). 이 주택의 건축주는 과연 행복했는가? 건축학과 강의 시간에 가장 많이 거론되고, 모형을 크고 정교하게 만들며 마치 복기하듯이 연구하게 하는 주택이다. 옛날의 나도 그러했듯이 파리에서 가까운 푸아시(Poissy)에 있는 이 거장의 주택을 찾아간 학생들은 어느새 르 코르뷔지에교(敎) 신자가 돼 숨을 죽이고 진지한 눈초리로 살펴본다. 그러나 우리는 중요한 점을 놓치고 있다. 이 유명한 주택에는 왜 사람이 살지 않는가, 건축주 사보아는 과연 행복했는가는 전혀 묻지 않는다.
거실 벽난로. 벽 아래 방열기의 보조장치 정도로 여겨질 만큼 왜소하다.
1928년 르 코르뷔지에에게 주택 설계를 의뢰한다는 편지가 날아왔다. 건축주는 피에르 사보아와 에밀 사보아 부부였다. 남편은 파리의 로이드 해상보험회사 소유주의 친척이며 또 이 회사의 중역이었다. 이들 부부가 원한 것은 파리에 살면서 자동차로 오가며 머무는 주말주택이었다. 르 코르뷔지에는 처음부터 아주 능숙하게 건축주를 설득했다. 그러나 제일 처음 제시한 안은 건축비가 너무 많이 들어 거절당했다. 그러자 당연히 건축주의 마음에 들 리 없는 평범한 안을 몇 개 보여주었다. 그런 다음 지금의 평면이 된 다섯 번째 안을 내밀었다. 그렇지만 이것은 첫 번째 안보다 공사비가 훨씬 더 들었다.
그래도 부인이 제일 먼저 부탁한 것은 본채를 건드리지 않고 몇 년 안에 증축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이것을 보면 이들은 이 주택에 대한 기대가 아주 컸던 것 같다. 의뢰서에는 온수, 냉수, 가스, 전기, 전등, 중앙난방 등 근대건축의 최신 기술이 적혀 있다. 방바닥의 나무판이나 타일 재료도 구체적으로 부탁했고 외벽의 단열도 잘 부탁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달랐다. 시공자는 설계안이 아주 큰 창에 열 손실이 많고 춥고 습할 것이라며 이런 문제가 일어나도 자기는 책임을 지지 않겠다고 할 정도였다. 그리고 비가 오면 천창을 때리는 요란한 소리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부인은 거실에 대해 “절대로 사각형이면 안 되고 그 대신 아늑한 구석과… 커다란 벽난로가 있어야 한다”고 부탁했다. 그러나 거실 평면의 모든 부분이 직각으로 이루어져 있고, 벽에는 수평창이 길게 나 있다. 거실에서 보면 수평창은 거실을 크게 한 바퀴 돌아 바깥 테라스로 길게 이어진다. 당시로는 가히 공간이 확장되는 혁명적인 설계였다.
그렇지만 낮에 밝은 빛이 만들어주던 건축물의 조형도 밤이 돼 등불이 켜지면 내부가 중요해진다. 아무리 높이 올라간 건물일지라도 밤이 되면 사정이 달라진다. 사보아 주택의 수평창도 밤이 되면 거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이 주택은 아주 넓은 대지의 한가운데 놓여 있다. 창에 커튼을 치지 않는 이상, 밤에는 거실의 세 방향이 모두 어두운 창으로 노출돼 있다. 나뭇잎이 무성한 날 낮에는 시원하게 느껴지지만, 매서운 바람이 부는 겨울에 이 기다란 수평창으로 둘러싸인 거실에 앉아 있다고 생각하기만 해도 서늘하게 느껴진다. 근대건축의 이정표인 이 명작 주택의 거실에는 사보아 부인이 원하던 ‘아늑한 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유럽이나 미국 주택에서 벽난로는 정말 중요하다. 그들에게 벽난로란 난방의 수단을 넘어 함께 살아가고 있는 가족이 집에서 가장 근본적으로 투영되는 곳이다. 그래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낙수장’(카우프만 주택, 1939)의 벽난로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 ‘월든’에서 보는 듯한 미국인의 원초적인 거주 감각을 가장 잘 보여주지 않는가? 그럼에도 사보아의 벽난로는 건축주가 요구한 ‘커다란 벽난로’도 아닐뿐더러 벽 아래에 설치된 방열기의 보조 장치 정도로 왜소하기만 하다. 난로에서는 한창 장작을 태우며 열을 올리려고 하는데, 벽에 있는 긴 수평창으로는 바람이 들어올 것만 같다. 불이 타오르는 난로의 상판은 연속하는 선반의 일부이며, 굴뚝은 차라리 정제된 각기둥이다. 장작도 몇 개 못 들어가고 재를 어떻게 처리할지도 모호하며, 심지어는 타고 있는 장작이 바닥으로 넘쳐 나올 것만 같다. 한마디로 존재감이 전혀 없는 벽난로다.
사보아 주택의 거실 풍경. 거실 평면의 모든 부분이 직각으로 돼 있고, 벽에는 수평창이 길게 나 있다.
이 주택은 1929년에 착공해 1931년 봄에 완공됐다. 르 코르뷔지에는 1931년 6월 28일 자로 부인에게 이렇게 편지를 보냈다. “1층 홀에 있는 테이블에 책 한 권을 놓으세요. (그리고 이 책에 ‘황금의 책’이라고 호화롭게 라벨을 붙이세요.) 그러면 방문하는 분마다 자기 이름과 주소를 적을 겁니다. … 부인, 당신의 주택에서 완벽하게 사시는 것을 보게 되면 제게는 큰 행복이고 참기쁨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건축의 기쁨은 방명록에 있지 않다.
이 주택의 1층을 들어 올린 것은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할 수 있게 건물을 땅에서 해방하려는 의도를 앞서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하지만, 실제로 이곳은 비가 많고 습기가 많은 땅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준공된 해 12월에는 폭풍에 비가 심하게 와서 지하실이 침수됐다. 그 이후 부인은 이런 일로 건축가에게 몇 차례 편지를 보냈다. 완공된 지 3년째 되는 1934년 봄에도 지하실은 침수됐고 난방이 고장났으며, 습기가 빠지지 않아 곰팡이가 피게 되자 건축주는 크게 항의했다. 부인이 1936년 9월 7일에 보낸 편지는 절절하다. “홀에는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경사로도 흠뻑 젖었고요. 주차장의 벽은 다 젖었어요. 어쩌면 좋지요? 비가 올 때마다 천장에서 물이 흘러 제 침실에도 비가 새요. 원예사가 사는 집의 벽도 온통 젖었고요.” 부인은 설비공사를 다시 해 달라고 몇 번이고 부탁했다.
그러나 우리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는 한 번도 부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부인은 1937년 가을에 이런 편지를 보냈다. “이달 7일에 보내신 당신 편지를 보고 황당했습니다. 그렇게 수없이 요구했는데도 1929년에 지어진 이 주택이 살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만 받아들이시는군요. 문제가 생기면 10년을 보증한다고 했으니, 그렇다면 제가 비용을 부담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그러니 이 집에서 살 수 있게 해 주세요. 저는 이 일로 법적 조치를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이런 호소에도 르 코르뷔지에는 그저 우정과 신뢰에 호소하는 답장만 보냈다.
르 코르뷔지에는 1937년 10월 30일 부인이 아닌 남편에게 답장을 보냈다. 그는 관리인 건물만 언급했으며 주택 본채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안 했다. 그리고 이런 추신을 달았다. “이 편지에 서명을 할 수 없어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할 급한 일이 생겨서요.” 이게 무슨 실례인가? 그리고 그는 그 다음 날 건축주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를 썼다. “브뤼셀에서 돌아와 어제 적은 편지에서 못한 말을 적고자 합니다. … 우리는 당신을 만족시키려고 최선을 다했음을 알아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당신 주택의 친구들이라고 생각해 주셔야 함을 확인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저는 당신의 사적인 친구로 남고 싶습니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신뢰 위에 있었으니까요. 저는 나의 건축주의 친구이며 언제나 친구로 남을 것입니다.” 과연 이것이 건축주를 대하는 거장 건축가의 태도란 말인가?
제2차 세계대전 중인 1940년 6월 독일 게슈타포가 침입해 사보아 부부는 이 주택을 떠났다. 전쟁 중에 이 주택은 탄약고나 사료 창고로 사용됐다. 이어서 미군이 접수한 다음에는 푸아시 청소년 센터로 썼다. 사보아 가족은 완공되고 나서 살던 9년 중 6년은 분쟁과 소송으로 애를 태우다가 세계대전으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이 집을 버리고 뉴욕으로 떠났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집주인은 사라진 채 주택은 쇠락해 버렸다.
1958년에는 시가 고등학교를 지으려고 7ha나 되는 사보아 주택의 대지를 매입하고 황폐해진 이 주택을 부수고자 했다. 이에 남편과 사별한 부인과 아들은 자기 집이 학교 용지로 수용당하는 것을 억울하게 여겼고, 이 일을 막는 데 도움을 얻고자 1959년 초에는 르 코르뷔지에에게 알렸다.
사보아 부인의 편지를 받은 르 코르뷔지에는 당시의 저명한 건축역사가였던 기디온에게 도움을 청했다. 당시 문화부 장관이었던 앙드레 말로와 다른 건축가들의 노력 덕분에 오랫동안 사람이 살지 않았던 사보아 주택은 역사적인 건조물로 지정됐다. 대지 7ha 중 6ha는 ‘르 코르뷔지에 고등학교’를 짓는 데 쓰였고, 나머지 1ha 대지 안에 사보아 주택이 남겨져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이로써 르 코르뷔지에는 자기 작품이 역사적 유산이 되는 영예를 얻은 최초의 건축가가 되었다. 그러나 사보아 부인은 이런 결정에 만족했을까? 어쩌면 건축가에게 두 번째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는 사보아 주택이 역사유산으로 공식 등록 결정이 되기 직전에 세상을 떠났다.
이 다음 건축주에 관한 기록은 전혀 없다. 건축주 사보아 부부. 이들은 자신의 주택에서 오래 살지도 못한 채 명작의 이름 안에서만 남게 되었다. 소송의 원인이었던 하자는 문화재로 보존되고 나서야 비로소 완벽하게 고쳐졌고, 지금은 준공한 지 얼마 안 된 듯이 늘 새하얗게 서 있다. 살아야 할 건축주는 이 주택을 두고 어디에 살았으며, 이제는 아무도 살지도 않는 빈 주택이 한 건축가의 위대한 작품으로만 남아 있다. 명작이란 무엇인가? 사람은 왜 집을 짓는 것일까? 우리는 아직도 이 단순한 의문에 답을 제대로 못 내리고 있는 것 같다.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
‘건축으로 읽는 일상 풍경’을 새롭게 연재하는 김광현(65)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는 ‘건축학도의 큰 스승’으로 통한다. 서울시립대와 서울대에서 41년 8개월 24일간 수많은 학생을 가르쳤고 200명의 석·박사를 배출했으며, 건축의장과 건축이론 연구의 권위자로 지난 2월 정년을 맞이했다. 김 교수는 건축을 ‘일상’과 ‘장소’와 ‘사회’의 관점에서 만들고 생각하고 가르치며 ‘공동성’을 토대로 건축의 영역을 사회 안에서 넓혀가는 일에 늘 앞장섰다. 그는 대한건축사협회 친환경설계아카데미 원장과 한국건축가협회 교육원장 등으로 젊은 건축가들을 가르치고 있으며, 공동건축학교 교장으로 사회 전반에 걸친 건축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대통령 소속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 대한건축학회 부회장, 한국건축학교육협의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건축 이전의 건축, 공동성’(2014), ‘건축 강의’(전 10권, 2018), ‘건축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것들’(2018) 등 여러 권의 책을 냈다. 2008년 한 시사 주간지 조사에서 건축 부문의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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