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건축가 휴 스터빈스
Hugh Stubbins휴 애셔 스터빈스 주니어(Hugh Asher Stubbins Jr. 1912년 1월 11일 ~ 2006년 7월 5일)는 전 세계 여러 곳의 유명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였다.
전기
휴 스터빈스는 미국 앨라배마주 버밍엄에서 태어나 하버드대 디자인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기 전 조지아공과대학에 입학해 바우하우스 운동의 창시자인 월터 그로피우스와 함께 공부했다. 그는 1972년까지 그곳의 교수진에 남을 예정이었다.
그는 휴 스터빈스와 어소시에이츠를 결성했다. 후임 회사인 스터빈스 어소시에이츠(The Stubbins Associates)는 2007년 필라델피아에 본사를 둔 클링과 합병해 클링스튜빈스를 결성했다. 뉴욕타임스는 1977년 그의 시티코프 센터를 "어떤 기준으로도...뉴욕의 중요한 건물 중 하나라고 말했다.
Stubbins는 2006년 7월 5일, 메사추세츠 캠브리지의 Mount Auburn 병원에서 폐렴으로 사망했다.
작품
그가 설계한 건물
- 1946년 메사추세츠 주 렉싱턴에 있는 스터빈스 가족의 집
- 1957년 독일 베를린 콩레스할레
- 1952-1953 미시간 주 이스트랜싱 시의 랜턴 힐 구역
- 1959년 매사추세츠 주 월섬 브랜다이스 대학의 행정 건물: 어빙 프레지던트 컨커브, 그리즈미쉬 아카데미 센터, 번스타인-마르쿠스 행정센터
- 1960년 하버드 대학교 롭 드라마 센터
- 1960년 뉴햄프셔 캠튼의 노먼과 마리온 페리 하우스
- 1964 나중에 프린스턴 대학교 버틀러 칼리지로 알려진 뉴 쿼드
- 1964년 보우도인 대학 콜스 타워
- 프란시스 A. 1965년 하버드 의과대학의 카운트웨이 의학 도서관
- 1966년 매사추세츠 대학교 남서 주택가
- 1968년 보스턴 미술관 포사이스 위크스 추가
- 1968년 프린스턴 대학교 재드윈 물리학 빌딩
- 1968-1971년 햄프셔 대학의 존슨 도서관 센터, 콜 과학 센터, 프랭클린 패터슨 홀 및 기숙사
- 1970년 브란데이스 대학교 우산 학생회관
- 1970년 보스턴 미술관 조지 로버트 화이트윙
- 1971년 필라델피아 재향군인경기장(재향군인 2004년)
- 1972년 해밀턴 대학교 다니엘 버크 도서관
- 1976년 보스턴 연방준비은행
- 1976년 프린스턴 대학교의 실리 G. 머드 원고 도서관
- 1977년 뉴욕 씨티그룹 센터
- 1971년 칼리지 파이브, 캘리포니아 산타 크루즈 대학교 포터 칼리지로 개칭
- 1983년 클리블랜드 원 클리블랜드 센터
-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1984년 팩웨스트 센터
- 1986년 싱가포르 재무부 청사
- 1988년 펜실베이니아 피츠버그 5번가 플레이스
- 1988년 내슈빌 도심
- 1990년 세일즈포스 타워
- 1991년 미국 캘리포니아 시미밸리에 있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 1993년 일본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출처 - 요다위키
© Lever House Art Collection
바야흐로 60년대. 뉴욕에서는 돌 마천루들 사이로 유리 마천루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기 있는 유리 빌딩들은 기업들에게 있어 아주 좋은 건축 양식입니다. 일단 유리라는 재료는 예나 지금이나 건물을 가장 멋지게 만들 수 있는 치트키고요, 기본적인 기둥 건물에 유리창을 벽처럼 붙이니 콘크리트로 벽을 만드는 것보다 저렴하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뉴욕이 점차 유리 마천루로 도배되는듯싶었는데 깽판러가 나타납니다.
원 체이스 맨해튼 빌딩/JP 모건 체이스 빌딩 (현재 철거 중)
체이스 은행은 로워 맨해튼과 미드 맨해튼에 두 사옥을 만들었습니다. 전형적인 국제 양식 건물로, SOM에서 설계했죠. 이런 체이스 은행이 부러웠던 라이벌인 씨티은행은 본인들도 멋진 마천루 사옥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전/후
1903년부터 전통을 이어 오고 있던 성 베드로 교회 자리가 마음에 들었던 시티은행은 교회를 돈 주고 이전시키려 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측에서 거절했는데, 시티은행은 죽여주는 조건을 내 겁니다.
교회 건물까지 같이 지어줌. 어때?
어머낫!
당연히 땡큐지.
교회와 사옥을 같이 짓는 것 자체도 특이한 경우긴 하지만 이 건물이 진짜 명작인 이유는 건물의 아랫부분에 있습니다. 이 건물도 다른 회사의 사옥들처럼 1층에 으리으리한 로비를 놓고 앞 공간은 그냥 광장으로 활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혁신적인 돌아이다!
사진에서 보듯 이 건물의 아랫부분은 지금 봐도 감회가 새롭습니다. 가운데 엘리베이터와 계단 등이 있는 기둥을 제외한 기둥 네 개가 건물의 모서리가 아닌 변의 중앙에 자리하고 있는 기형적이면서 개방적인 모습인데요, 공중에서 보면 왜 이렇게 됐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겐슬러의 리모델링 조감도
이 건물 아래에는 지하철역이 있습니다. 건축가는 지하 광장(성큰가든)을 만들어서 단순히 건물 상주인의 출퇴근이 용이하도록 빌딩과 지하철역을 연결하는 게 아니라 만남의 장소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이 지하 광장에서 위를 향해 뻥 뚫린 느낌을 줄려면 일반적인 건물의 형태로는 불가능했던 것이죠. 건물 본체를 높게 올리니 교회 위로도 건물을 지어 올릴 수 있으니 일타 쌍피인 셈입니다.
기둥의 위치 또한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그냥 모서리에 기둥을 만들었으면 균형감 있고 건축 난이도도 줄일 수 있는데 왜 저렇게 했을까. 일단 교회 측과 약속했던 교회 면적을 확보하기 위함도 있고요, 무엇보다 모서리가 비어 있으면 개방적이게 보입니다.
근처에 시그램 빌딩 광장도 있지만 이 광장은 분수대가 차지하는 면적이 크고 텅 비어 있는 상태이기에 빌딩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 외에는 잘 모이지 않습니다. 대부분 광장 기단부 끝에 앉아서 쉬는 게 다죠. 그래서 시티그룹 센터의 지하 광장은 의미가 더 큽니다. 이런 공적인 부분에 상당히 공을 들였기 때문에 시티은행은 경쟁 은행사들의 사옥과 차원이 다른 사옥을 가질 수 있게 됐습니다.
좌: © 구글 어스 / 우: © Saint Peter's Church
같이 지은 베드로 교회도 잘 만들었습니다. 교차로에서 이 교회 건물을 보면 자연스럽게 씨티은행 센터를 올려다보도록 유도합니다. 가운데가 명확하게 나눠지고 양쪽으로 기울어진 지붕은 손을 모은 것처럼 생겼는데, 전체적인 조화가 깨지지 않고 교회 건물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끔 깔끔하게 만들었습니다.
우: 당대 유행하던 마천루 양식의 대표주자 GM 빌딩
시티그룹 센터 건물 생김새 자체도 독특합니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유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거나 수직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한 당대 건물과는 다르게 금속 패널의 비중이 더 많고 수평성을 강조했습니다. 모서리까지 유리로 마감했는데 기둥이 잘 보이지 않아서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뉴욕 스카이라인의 변화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건물은 1977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마천루였습니다. 과거 뉴욕 마천루들은 지붕이 피라미드처럼 뾰족했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로 넘어오면서 점차 평지붕의 마천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죠. 시티그룹 센터의 삼각형 지붕은 시카고 스타일의 평지붕 마천루에서 다시 뉴욕 스타일의 뾰족한 지붕으로의 회귀를 말하는 것처럼 보였을 겁니다. 이 빌딩 이후로 마천루에 있어 모더니즘의 시대가 끝난 것을 생각해보면 모더니즘에게 작별을 고한 걸까요?
완공된 지 40년 후인 지금 봐도 시티그룹 센터는 흥미롭습니다. 새로운 건축 형태에 도전한 건축가. 그걸 흔쾌히 수락한 건축주. 이들이 만들어낸 결과물은 지금에 와서도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습니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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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1 렉싱턴 애비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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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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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F/B3, 279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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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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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스터빈스
윌리엄 르메슈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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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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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6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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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공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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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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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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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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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한 이야기가 담긴 영문서.
[출처] [개수작] 601 렉싱턴 애비뉴 (시티그룹 센터)|작성자 며눙
3. 하늘에 쓴 시.. 마천루들의 메시지[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왼쪽 그림부터 구름 위로 솟은 울워스 빌딩(고딕 양식), 에퀴터블 빌딩(고전 양식), 크라이슬러 빌딩(아르데코 양식), 시그램 빌딩(모던 양식), 시티 코프 빌딩(포스트모던 양식)이다. 아르데코 양식 마천루는 웨딩케이크형이고, 모던 양식 마천루는 유리박스형이다. 그림 이중원 교수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1913년 뉴욕시청 광장 앞에 하얀 울워스(Woolworth) 빌딩이 하늘을 향해 솟았다. 작은 소품을 팔아 세계적인 거부가 된 사업가 프랭크 울워스는 상품 진열과 전시에 귀재였는데, 이제 그는 마천루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자 했다. 뉴욕은 엘리베이터 발명으로 5층 높이에서 20층 높이 도시로 변모하고 있었다. 그런데 울워스는 57층의 마천루를 꿈꿨고, 이를 현실화했다. 당시 뉴욕에서 마천루의 높이는 곧 브랜드였다. TV나 인터넷이 없었던 시절이어서 ‘세상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라는 타이틀은 그 자체가 광고였다.
울워스 빌딩 첨탑(꼭대기)은 구름을 뚫고 솟았다. 새로운 세계였다. 시(詩)가 지면 위에서 문자로 보여줬던 세계를 건축이 물리적으로 눈앞에 펼쳐주니 이는 높이의 미학이었고, 다른 말로는 수직의 예술이었다. 울워스 빌딩은 뉴욕 초고층 마천루 경쟁에 방아쇠를 당겼다.
1915년 월스트리트 초입에 에퀴터블 빌딩이 섰다. 에퀴터블은 대지 경계선까지 건물을 꽉 채워 41층(162.2m)까지 솟았다. 그림자만 가득한 인공협곡이 생겨났다. 옆 건물에는 여름 낮 12시가 돼도 해가 안 들었다. 여론은 술렁였다. 마천루를 지을 때, 최소한의 형태 기준은 두자고 외쳤다. 이로 말미암아 1916년 마천루 일조권 사선 제한이라는 뉴욕 조닝법이 탄생했다. 법의 골자는 간단했다. 앞으로 짓는 모든 마천루는 위로 갈수록 부피를 감소할 것. 그래서 1920∼1960년대 뉴욕에 지어진 마천루들을 ‘웨딩케이크 마천루’라 부른다.
웨딩케이크 마천루의 백미는 크라이슬러 빌딩이었다. 1930년 자동차로 거부가 된 월터 크라이슬러 회장은 뉴욕에 초고층 마천루로 새 시대를 천명하고자 했다. 당시 뉴욕이 설정해 놓은 새로운 미지의 높이는 1000피트(약 300m)였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맨해튼 은행 마천루와 높이 문제로 옥신각신하다 이겼다. 크라이슬러 빌딩은 314m나 치솟았다. 스웨덴 화강석의 저층부, 조지아주 백색 대리석의 몸통부, 니켈 크롬 아치의 머리부가 위로 갈수록 부피가 감소했다. 특히, 은빛 나는 아치는 위로 갈수록 7번 포개지며 솟았고, 그 위로 38m 높이의 철침이 치솟았다. 이는 육적인 상태에 놓인 건축이 영적인 상태가 되고자 보이는 수직적 몸부림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승전으로 끝나자 뉴욕은 호황이었다. 1958년 시그램의 새뮤얼 브론프먼 회장은 근대 건축의 거장 미스 반데어로에를 위촉했다. 웨딩케이크 모양의 마천루가 반데어로에는 부담스러웠다. 미니멀하지 않았고, 순수해 보이지 않았다. 반데어로에는 시와 협의했다. 시는 대지 일부를 공공 플라자로 기부하면 마천루가 꺾임 없이 똑바로 서는 것을 허용해 주겠다고 했다. 시그램은 뉴욕 마천루 조닝법 개정을 유발했다. 반데어로에 이후 뉴욕에 너도나도 유리 박스형 마천루를 지었다. 반데어로에식 마천루를 사람들은 모더니즘 마천루라 불렀다. 미학적으로는 돌의 그림자가 아닌 유리의 투명을 붙들었다. 또 마천루의 꼭대기는 평평해졌다.
1968년 운동이 촉발한 탈근대 시대정신은 뉴욕 마천루 모습에도 영향을 끼쳤다. 역사주의 캠프와 혁신주의 캠프가 겨뤘는데, 결국은 후자가 득세했다. 후자를 대표하는 마천루가 휴 스터빈스의 시티코프(1976년) 마천루였다. 저층부에 기둥을 모서리에 두지 않고 입면 중앙에 두었다. 그 덕분에 길이 사방으로 트였다. 시티코프는 인도(人道) 레벨을 살리는 초고층 마천루로 남달랐다. 마천루의 머리 부분도 평평했던 모더니즘에 반기를 들고 대각선 처리를 해서 첨탑을 다시 뾰족하게 만들었다.
지난 100년간 뉴욕 마천루 역사는 우리에게 3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첫째, 마천루는 울워스와 크라이슬러처럼 도시의 하늘을 시적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둘째, 마천루는 시그램과 시티코프처럼 땅의 흐름을 시로 승화시켜야 한다. 셋째, 마천루는 뉴욕 조닝법의 진화처럼 하늘을 앙망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경천애인’의 정신이 있어야 한다.
이중원 성균관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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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하늘에 쓴 시.. 마천루들의 메시지[이중원의 '건축 오디세이'] (daum.net)
4.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정보위치 일본 요코하마 | |
지리 좌표계 북위 35° 27′ 17″ 동경 139° 37′ 54″ | |
상태 완공 | |
기공식 1990년 3월 20일 | |
건축 1990년~1993년 | |
착공 1990년 | |
완공 1993년 | |
개장 1993년 7월 16일 | |
용도 오피스, 호텔, 레지던스 | |
높이 296.1m | |
안테나/첨탑지붕 295.8m | |
273m | |
296m | |
층수 지상 70층 지하 3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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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적 392,000 m2 | |
엘리베이터 대수 79대 | |
건축가/건축회사 Stubbins Associates | |
Shimizu Corporation, Mitsubishi Estate | |
미쓰비시 지소 | |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일본어: 横浜ランドマークタワー 요코하마 란도마쿠 타와[*], 영어: Yokohama Landmark Tower)는 높이 295.8m(970피트)의 일본 요코하마의 초고층 빌딩이다. 1993년 완공과 동시에 도쿄 도청사를 제치고 일본 내 최고층 빌딩이 되었고, 2014년 3월 7일 오사카에 300m의 아베노바시 터미널 빌딩이 개장하기 전까지 약 21년 간 이 지위를 유지했다. 미나토 미라이 21 지구에 있으며[1], 요코하마 미술관이 옆에 있다.
건물의 49~70층에는 5성급 호텔이 입주해 있고, 48층 이하는 상가, 식당, 병원 사무실이 입주해 있다. 건물의 71층은 숨겨져 있는데, 이 층에는 두 개의 Tuned mass damper가 양 모퉁이에 있어 있어, 풍진동을 제어하여 건물에 안정성을 더한다.
69층에는 전망대가 있으며, 360도 전 방향으로 도시를 조망할 수 있는데, 맑은날에는 멀리 후지산까지도 볼 수 있다.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에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빠른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데, 속도가 초당 12.5m(41피트),(45.0 km/h, 28.0 mi/h).에 달하며,이는 69층까지 약 40초만에 올라갈 수 있게 해준다. 참고로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엘리베이터는 타이베이 101 빌딩에 있다.
이 건물은 KlingStubbins(옛 휴 스티번스 Hugh Stubbins and Associates)에서 디자인하였다.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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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중에서 본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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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가네 다리에서 본 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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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랜드마크 타워에서 내려다 본 요코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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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베이 브릿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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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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