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건축 06 빌라 사보아 2020.7
2023. 1. 17. 09:07ㆍ아티클 | Article/연재 | Series
Immortal architecture 06 Villa Savoye
건축법에서 재축(再築)이란 ‘건축물이 천재지변이나 그 밖의 재해(災害)로 멸실된 경우 그 대지에 다시 축조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필자는 신축, 재개발, 재건축 등 새로 짓는 것이 건축의 주류인 상황에서 재축된 건축물들을 소개하고 건축의 의미를 돌아보고자 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독일, 아르헨티나, 인도 그리고 일본 이렇게 총 7개 나라에 산재해 있으니 문화적 연관성은 1%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17개의 건축물이 한꺼번에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2016년의 일이다. 등재의 취지는 “모더니즘 운동에 관한 탁월한 기여(an Outstanding Contribution to the Modern Movement)”였다. 모더니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운동이기도 하고 아직까지 영향이 남아 있다고 볼 수도 있으니 취지문을 인용하면 이 17개의 건축물은 모더니즘 건축을 대표한다고 보아도 크게 다르지 않겠다. 모더니즘이 20세기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한다면 이 17개의 건축물이 20세기를 대표한다고 확대해서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 17개의 건축물이 모두 한 사람이 계획한 건축물이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그렇다. 바로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다.
빌라 사보아 모형과 젊은 르 코르뷔지에 사진=mag.lesgrandsducs.com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이 등재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 최근의 건축물도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을까? 지금도 그렇지만, 등재 당시인 2016년에는 그가 설계한 17개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100년이 안 되었고, 어떤 건축물은 겨우 50년을 넘겼을 뿐이었다. 물론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오래된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문화유산이라면 역사책에 나옴직한 피라미드 같은 고대 건축물이나 고딕 성당 같은 중세의 건축물들이 생각나는 것이 필자에게는 더 자연스러웠다.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 중에 코르뷔지에의 건축물처럼 20세기 건축물이거나 100년이 채 넘지 않은 건축물이 있는지 찾아봤다. 예상대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축물들은 100년이 넘는 역사적 건축물들이 대부분이었다. 필자의 생각이 잘못되진 않은 것 같아서 일단 안심이 되었다. 그렇다고 20세기 건축물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부분은 필자의 잘못된 선입견이었다. 심지어 르 코르뷔지에의 17개 건축물보다 무려 18년이나 빠른 1998년도에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루어졌다. 이 건축물은 네덜란드 D.F. 보우다 증기기관 양수장으로 1920년에 만들어진 건축물이었다. 1920년부터 오늘날까지 가동된 사상 최대의 증기기관 양수장이다. 산업혁명의 시작을 열었던 증기기관을 사용한 의미와 최대 규모라는 점 그리고 네덜란드의 지리적 특징인 간척지 개발에 꼭 필요한 기능의 건축물이라는 종합적인 가치가 인정을 받아서 등재되었다. 이 외에도 100년이 안 되었더라도 인류문화에 중요한 의미를 갖는 건축물 다수가 세계문화유산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등재된 20세기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산업화나 지역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건축물이 대부분이었다.
신축 공사 중인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신축 공사 중인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전쟁으로 파손된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전쟁으로 파손된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전쟁으로 파손된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전쟁으로 파손된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전쟁으로 파손된 빌라 사보아 사진=mag.lesgrandsducs.com
20세기 건축물 중에서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물과 등재 이유를 알게 될수록 더욱 르 코르뷔지에의 17개 건축물이 갖는 의미가 크다고 생각했다. 등재 의미에도 설명되었지만, 20세기 대표 문화인 모더니즘 운동에 관한 탁월한 기여가 인정되어 등재된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 전공을 불문하고,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르 코르뷔지에의 건축물들이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과정에서 엄정한 평가기준을 통과한 건축물들이니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이라고 보면 무난할 것이다. 그러면, 이 17개 건축물 중에서 20세기 대표 건축물로 단 하나만 꼽으라면 어떤 건축물을 꼽을 수 있을까? 사람마다 다른 의견일 수 있겠지만, LEGO로도 판매되고 있는 빌라 사보아를 꼽는다면 다수 의견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르 코르뷔지에가 이야기한 ‘현대건축 5원칙’으로 1. 필로티(Pilotis) 2. 옥상 정원(Roof garden) 3. 자유로운 파사드(Free facade) 4. 자유로운 평면(Free plan) 5. 가로로 긴 창(Horizontal Window)을 가장 잘 구현했다고 평가되는 것도 그 이유라 할 수 있겠다. 이렇게 20세기를 대표한다고 손꼽아도 될 건축물이고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귀하게 관리받고 있는 빌라 사보아이지만, 한때는 심각한 파손과 용도 변경, 방치 그리고 철거 위기까지 겪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빌라 사보아의 구사일생 100년을 함께 들여다보자.
복원 된 빌라 사보아 사진=ko.wikipedia.org
복원 된 빌라 사보아 사진=ko.wikipedia.org
르 코르뷔지에가 사보아 씨의 주택설계를 시작한 것은 1928년이었다. 어떻게 해서 그의 사촌이 시공하게 되었는지 이유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시공 책임은 그의 사촌에게 있었다고 한다. 설계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1931년 빌라 사보아가 완성된다. 사보아 가족이 빌라 사보아를 주택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첫해인 1931년부터 9년간 지속적으로 누수가 발생하고, 곰팡이가 극심했다고 한다. 겨울에는 너무 추워서 거주가 어려웠기 때문에 겨울에는 사용하지 못했다고 한다. 하자보수의 개념으로 몇 해는 어찌어찌 넘겼던 것 같은데, 사보아 씨의 자녀가 폐결핵으로 사망하면서 상황은 심각해졌다. 자녀의 건강악화 원인이 누수와 곰팡이가 심각하고 단열이 안 되어 추운 빌라 사보아에 있다고 생각한 사보아 씨는 설계자인 르 코르뷔지에를 고소한다. client와 architect의 법정 다툼이 시작된 것이다. 지금의 관점으로 그 당시 상황을 상상해보면 르 코르뷔지에가 여러 가지로 불리해 보인다. 그런데 재판이 진행되던 1939년, 나치 독일이 프랑스를 침공하며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 물론 재판도 멈췄다. 재판이 멈추고 판결도 없었다. 판결이 없으니 피의자로 재판에 임했던 르 코르뷔지에는 무죄였다.
전쟁 기간에는 이곳을 독일군과 미군이 번갈아 가며 사용하였는데, 전쟁 통에 깨끗이 사용되었을 리 없다. 6년이 지나고 전쟁이 끝난 1945년. 돌아온 사보아 가족을 맞이하는 빌라 사보아는 거의 쓰러지기 직전의 폐허였다. 사보아 씨는 보수하지 않고 떠났고 빌라 사보아는 그렇게 버려진다. 10년 넘게 방치되던 빌라 사보아는 토지와 함께 1958년 푸아시 마을에 수용된다. 공식적인 소유권이 공공으로 이전된 것이다. 푸아시 마을은 빌라 사보아를 보수해서 마을 청소년 센터로 한동안 사용한다. 본래 주택이었으니 근린생활시설 정도로 용도변경했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몇 년 지나지 않아 학교가 부족했던 푸아시 마을은 청소년 센터로 사용하고 있던 빌라 사보아를 철거하고 학교 단지를 짓기로 결정한다. 푸아시 마을의 입장에서는 적절하고 당연한 판단이었을 것이다.
빌라 사보아(2003) 김세진(skimA 빌라 사보아(2003) 김세진(skimA
이 시점에 프랑스 건축계의 일부 사람들이 철거 반대를 주장한다. 그리고 푸아시 마을에 철거 계획을 취소하도록 압력을 행사한다. 철거 반대운동에 나선 사람들 중에 르 코르뷔지에는 없었다고 하지만 르 코르뷔지에의 치밀하고 계획적인 성격을 생각한다면 그가 철거 반대운동의 배후에 있지 않았을까? 확인된 내용은 아니니 알 수는 없다. 결과만 본다면 이 철거 반대 운동은 효과를 거두었고, 철거 계획은 백지화되었다.
1963년 공공의 의뢰를 받은 장 드뷔손이 빌라 사보아 복원 계획을 하고, 복구가 진행된다. 이때는 르 코르뷔지에가 직접 나서서 반대했다고 한다. 어쨌든 장 드뷔손에 의해 복구를 마친 빌라 사보아는 1965년 프랑스 역사유적에 등록된다. 등록 이유는 ‘프랑스 최초의 근대건축물’이었다. 근대건축에서 빌라 사보아의 영향을 생각하면 당연한 것 같기도 하지만, 1965년이면 빌라 사보아는 지어진 지 겨우 35년밖에 안 된 시점이라 조금 의외이긴 하다. 르 코르뷔지에는 같은 해인 1965년에 사망했다.
1965년 이전에는 건축주와의 소송과 재판, 전쟁, 방치, 용도변경, 철거 위기 등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프랑스 역사유적으로 등재된 이후 유지관리는 꾸준히 받을 수 있었다. 1985년 장 두이 베레트에 의해 두 번째 대대적인 복구가 시작된다. 그리고 12년 후인 1997년 복구가 완료되었다. 2016년에는 르 코르뷔지에의 다른 16개 건축물과 함께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이루어진다.
노년의 르 코르뷔지에 사진=mag.lesgrandsducs.com
빌라 사보아는 이제 90년을 지나서 100년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까지도 수많은 사람의 동경과 사랑을 받고 있고,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로 손꼽히고 있으니 이보다 더한 영광이 있을까?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20세기를 대표하는 건축물이 본래의 용도인 주택으로 사용된 기간이 채 10년이 안 된다는 것은 아이러니하다. 그 10년 남짓의 기간에도 누수와 각종 하자 문제로 소송을 치렀다는 점은 안타깝다. 어쩌면 모더니즘 건축의 5대 원칙과 더불어 모더니즘 이후에 언급되는 모더니즘 건축의 문제점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어서 모더니즘 건축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모더니즘 건축의 영광과 모순을 모두 갖춘 빌라 사보아는 방치되어 철거 위기까지 갔다가 재축으로 부활했다. 지금은 본래의 모습을 되찾고 세계문화유산 등재라는 명예까지 갖게 되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빌라 사보아가 지금의 모습 그대로 불멸하기를 바란다.
글. 신민재 Shin, Minjae AnLstudio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신민재 에이앤엘스튜디오 건축사사무소
한양대학교 건축공학부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Artech과 JINA에서 실무를 했다. 2011년부터 AnLstudio 건축사사 무소를 공동으로 운영하며 전시기획에서 인테리어·건축·도 시계획까지 다양한 스케일의 작업을 하고 있다. 2016년 젊 은건축가(문화체육관광부) 수상자이며, ‘얇디얇은집’으로 서 울시건축상(2019)을 수상했다. 현재 한양대학교 겸임교수 이자 서울시 공공건축가 겸 골목건축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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