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CUS - 현대건축 유산 ‘힐튼호텔’, 건축문화적 가치 맥 이을 방안은?
- 기자명 장영호 기자
- 입력 2023.07.25 15:27
한국 현대건축 상징물이자 40년 서울 숨결 깃든 건축유산 허물어서야…
힐튼호텔, 한국 현대건축 품격 한 단계 올려놓은 본보기
현대건축 기념비적 건축문화 유산 가능하면 보존하여
미래세대에 전할 ‘스토링 텔링’ 만들어가야
프랑스 파리처럼 기존 시설 새로운 가능성 찾고
건축물 보존 위한 사회적 합의 필요
서울시 ‘도시·건축 창의·혁신디자인 가이드라인’
힐튼호텔 건축문화적 가치 보전 권장함에 따라
개발 수익, 문화유산 보존 윈윈 전략 찾아야
‘서울 힐튼호텔’
우리나라 현대 건축을 대표하면서 한국 건축사 측면에서 기념비적인 명품건축물이다. 건물 터가 한양 도성 성곽 바로 옆, 남산 앞인 까닭에 장소성·역사성 논란이 있으나, 1980년대 건축미학과 건축사조 측면에서 당대 어느 건축물보다 진일보한 성취를 이뤘다는 점에선 이론이 없다.
1983년 준공돼 지난 40년간 서울의 자랑거리였던 이 호텔이 현재 부동산 재개발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철거돼 사라질 운명에 놓인 것을 두고 건축계 내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다. 코로나19를 겪으며 국내 한 자산운용사에 매각된 뒤, 신규 인수자가 호텔·오피스·상업시설을 갖춘 복합시설을 짓겠다고 해서다. 지난 5월에는 호텔 소유주가 38층 복합 건물을 짓겠다는 재개발 정비 계획안을 서울시에 제출한 바 있다. 호텔 상징이었던 1층 메인 로비는 역사·문화적 가치를 살려 보전하되, 쇼핑몰(지하 2층∼지상 1층)·오피스(지상 2층∼29층)·호텔(지상 30층∼38층)로 복합개발하는 안이다.
건축계는 ‘서울 힐튼호텔’은 건물이 갖는 수익성, 기능이 떨어진다는 이유만으로 철거해버리기엔 건축의 가치와 역사 면에서 너무나도 아까운 건축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호텔이 건축사적 측면에서 수많은 국가에서 근대화 현대의 상징물로 인식되는 점을 감안할 때, 힐튼호텔은 수준 높은 완성도와 디테일로 한국 건축의 품격을 한 단계 올려놓은 이정표로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서울 시민의 숨결이 곳곳에 깃들어 문화적 가치와 역사성을 가진 건축유산을 미래 세대에 계승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보전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게 건축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힐튼호텔은 특히 당시 설계를 맡은 김종성 선생(AIA)이 ‘근대건축의 거장’ 미스 반 데어 로에로부터 가르침을 받고 그의 건축을 계승해 국제적 건축수준을 현대 한국건축에 소개한 본보기로서 그 가치와 의미가 적지 않다.
㈜서울건축종합건축사사무소 박흥균 대표는 “내부 공간구성에서 18미터의 창조적인 아트리움공간 디자인은 당시 다른 대규모 호텔이 제공하지 못한 공공영역의 품격을 고양했다”며 “호텔 외벽 디자인은 당시 프리케스트 콘크리트 패널 일변도의 1960년대, 1970년대 건축외관에서 탈피해 알루미늄커튼월로 건축됐으며, 미국 Flour City의 자문을 받아 국내의 일진알루미늄사가 제작·설치한 한국 최초의 완벽한 국제수준의 알루미늄커튼월”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힐튼호텔이 사적 소유물(2021년 국내 자산운용사에 1조1000억 원에 매각)이라는 점 역시 부인할 순 없기 때문에 김종성 선생도 여러 매체를 통해 “수익성도 창출하고 건축문화 유산을 보존하는 윈윈 전략을 찾기 바란다”고 당부한 바 있다. 다른 방식으로 기존 건축물을 기억하거나 부분적으로 남기는 방법도 있겠지만, 그는 “▲현존 힐튼 호텔의 커튼월 외벽으로 구성된 매스 ▲브론즈 구조재 마감, 트래버틴 바닥, 녹색 대리석, 오크 패널링으로 마감된 18미터 높이로 구성된 아트리움 공간에 대한 보존”을 제안하며 “현 640실 호텔 용도의 건물에 새로운 내부기능을 넣고, 이번 힐튼호텔 재개발이 서울역 지역의 도시적 면모를 새롭게 하는 기회로 삼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서울건축 박흥균 대표도 “서울시의 ‘도시·건축 창의·혁신디자인 가이드라인’을 살펴보면, 힐튼호텔의 건축문화적 가치의 보전을 권장하고 있다. 힐튼호텔의 커튼월 외벽과 아트리움을 보존하면서 개발회사가 목표한 이윤을 창출하는 데에, 개발회사와 선발된 디자인팀, 서울시의 협력적 사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처럼 서울 남산 힐튼호텔과 같이 현대 건축의 중요한 기록이 하나씩 사라져가는 것을 두고 전문가들은 한국 전통건축과 근대건축을 보수·보강·보존하는 것에 대해선 이미 국민적 공감대가 서 있지만, 현대 건축은 그렇지 못해 전통·근대건축 논의만큼 어떻게 이를 흡수시킬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전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집들이 현대에 맞게 안을 바꾸어 살아남는 것처럼, 기존 시설을 재해석해 생활문화공간으로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건축물을 보존하고 남기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공교롭게도 최근 현대건축 보존과 그 방법론에 대한 이슈와 논의도 활발하다. 올해 3월에는 한국 현대건축사를 대표하는 김중업 건축사의 작품 ‘프랑스대사관 업무동’이 한국 전통건축 미학을 살려 원형을 되찾아 복원된 바 있으며, 지난 7월 7일 김중업 건축사가 남긴 제주건축 유산이지만 1995년 철거된 ‘제주대학교 옛 본관’ 복원·재현을 위한 공개토론회가 열려 현대건축 유산 되살리기에 대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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