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3-005. 우리 매화의 맥을 잇다, 영주 매화분재원 - 2 (2023.02.11.)

 

 

 

 

 

 

 

 

 

 

일생의 매화분재 기증에 깃든 큰 울림

- 한국매화연구원 안형재 원장

 

 

경북 영주시가 한국문화테마파크 내의 매화공원 조성에 한창이다.

부지면적 54,385(15,450)에 매화나무 213(2,380)을 심는 사업이며,

그중 500평 규모의 매화분재원은 300~400명을 동시 수용이 가능한 현대식 시설로서

전국 최초의 매화 전용 온실이다.

 

이 매화공원 조성사업에 일익을 담당한 한국매화연구원 안형재 원장

매화분재 163·361점 기증으로 화제의 중심에 섰다.

더욱이 그가 기증한 매화 가운데는 국내에서 네 번째 고() 수령(450년 추정)

수양매도 포함됐다고 한다.

매화와 함께한 45년여 외길 인생의 결정체 361점을 사회에 희사했고,

크나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감히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공익적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이런 안 원장은 우리나라에서 매화분재의 최고 권위자로 손꼽힌다.

 

그러면서 매화의 역사, 유래, 생육특성 등 각종 자료들을 7년간이나

조사·발굴·수집하고 정리·기록한 단행본으로 한국의 매화2001년 출간했다.

국내 매화전문 서적이 극히 드물었던 시기에 한국의 매화가 나온 것이다.

 

이에 멈추지 않고 안 원장은

국내서 자생하는 매화 품종, 수령이 오래된 매화(고매) 등을 찾아다녔다.

8년여 동안 전국 방방곡곡을 누빈 끝에 우리나라 매화의 족보로 일컬어지는 매화보(2009)’,

100년이 넘은 85그루의 고매 기록서인 매화를 찾아서(2009)’도 집대성했다.

그밖에 한국의 분매(2017)’ 등을 편찬한 그는 매화만필이란 책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이어 그는 “45년 가까이 자식처럼 돌본 매화분재를 떠나선 살 수 없을 것 같아

지난 3월 영주로 이주했다

많은 사람들에게 매화의 진정한 매력과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도록

매화공원의 성공적 완공에도 혼신의 힘을 보탤 것이라고 밝혔다.

( 글출처 : 시사투데이)

 

 

 

 

 

 

 

 

 

 

 

 

 

 

 

 

 

 

 

 

 

 

 

 

 

 

 

 

 

 

[마이 라이프] 한평생 매화향 쫓아 梅生梅死

- 안형재 한국매화연구원장

 

 

 북한의 금강산에 갔을 때 일입니다. 온정리에서 삼일포를 향해 한참을 가다 보니 제천사과작목반에서 지원하여

재배되고 있는 사과밭이 보이더군요. 바로 건너편에 어린이들이 흙먼지를 날리면서 뛰어노는 모습으로 보아

삼일초등학교인 듯한 건물이 있고, 넓은 운동장 주변으로는 키가 큰 미루나무와 버드나무, 참나무 사이로

어느 정도 정돈된 매화나무 한 그루가 보였습니다.

나무의 높이는 5.5m 정도이고, 수관폭은 3.5m 정도로 빈약한 편이며, 근원직경은 60cm가량 되는 수령 약 150년생의

홍매화인 듯했습니다. 북한에 있는 노매(老梅)를 처음 본 것입니다.”

 

최근 경북 영주의 매화공원에서 만난 안형재(78) 한국매화연구원장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을 화제로

얘기를 나누던 중 북한의 매화에 대해 말문을 열었다. 그가 북한의 매화를 화두로 삼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2020년 정식 개장하는 경북 영주 매화공원에 40년 동안 가꿔온 매화분재 361점을 기증한 안형재 한국매화연구원장.

그가 기증한 매화 가운데는 국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수령 450년으로 추정되는 수양매가 포함돼 있다.

북한 개성과 원산을 잇는 지역에서는 매화의 성장이 가능한 것으로 봅니다. 옛날에는 훨씬 북쪽인 압록강 유역에도

매화가 자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동안 나름대로 북한의 매화를 찾아보고 싶은 생각에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허사였습니다. 중국외교부의 외교관으로 평양에 근무하던 안옥상씨를 알게 되어 평양의 저명한 식물학자들에게 매화에

대한 자료와 평양의 주요 도서관에 매화에 관한 문헌자료 등을 부탁했으나 여의치 않았습니다.

2004년부터 북한과 관련이 있는 북경임업대학교 진준유 교수와 장계상 박사에게 탐매(探梅)할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수차례 부탁했으나 아직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내 매화의 최고 권위자로 불리는 그는 지난 3월 영주시로 이주했다. 그동안 살던 서울과 경기지역을 떠나 귀촌 아닌

귀촌을 결정한 것은 순전히 매화분재 때문이다.

 

“2022년 정식으로 문을 열 한국문화테마파크 안에 있는 매화공원에 자식처럼 가꿔오던 163품종 361점의 매화분재를

기증했습니다. 여기에는 국내에서 네 번째로 오래된 수령 45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수양매가 있고, 일본에서 10억원을

호가하는 수령 100년 이상 된 매화분재도 다수 포함돼 있습니다. 40년이 넘도록 자식처럼 돌봐 온 매화분재를 떠나서는

살 수 없을 것 같아 아내와 이주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분재동호인들은 안 원장이 매화공원에 기증한 분재는 시가 1000억원에 육박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는 매화의 어떤 점이 좋아서 이토록 매달리게 됐을까?

 



 

 

 

 

 

 

 

 

 

 

 

 

 

 

옛 선비들은 매화를 꽃 중의 왕이라고 불렀습니다. 한겨울 세찬 눈보라와 추위를 이겨내고 꽃을 피우는 매화는

선비의 기품을 닮은 은은한 향기가 매력입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은 매한불매향(梅寒不賣香)’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영의정을 지낸 신흠 선생은 매일생한불매향(梅一生寒不賣香), 즉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는 절의(節義)를 지닌 꽃이라고 했습니다. 지금의 제 생각도 매화를 좋아하는 선조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안 원장이 본격적으로 매화분재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곧장 직장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집안에서 취미로 분재를 가꾸기 시작하면서 고양 원당에서 분재원을

하던 여대기 선생을 찾아다녔다. 그리고 1985년 안양 관양동에 죽산조경이라는 회사를 차린 데 이어 충북 음성에 

2000여평, 경북 봉화에 35000여평의 농원을 마련했다. 매화나무를 수집하고, 품종을 번식하는 일을 위해서였다.

 

지금은 작고한 천리포수목원 설립자인 민병갈 선생과 관악수목원을 창설한 이창복 서울대명예교수 등과 교류하며

나무에 대해 배운 것도 이 무렵이다.

그는 또 1986년 한국분재협회를 주도적으로 만들고 9년 동안 부회장과 회장 대행을 맡아 활동했다.

 

당시 국내 분재 전시장이나 박물관에 가보면 대부분이 일본의 분재양식을 그대로 따라 했어요. 옛 서적에는 우리만의

양식이 엄연히 있는데도 말이죠. 이를 바꾸려고 수십년 동안 노력한 결과 지금은 우리 고유의 양식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매화공원의 분재는 모두 우리 고유의 양식입니다.”

 

 

 

 

 

 

 

 

 

 

 

 

 

 

 

 

 

안 원장은 매화나무를 기르면서 문득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책과 같은 기록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화와 관련한 조사기록을 남기기로 했다.

 

그가 처음으로 출간한 것이 한국의 매화’(2001)라는 단행본 서적이다. 이는 그와 아내 김영자(75)씨가 무려 

7년간이나 국립중앙도서관 등에서 자료를 찾아내고 고서에서 발굴한 기록이다.

 

매화에 얽힌 일화, 전설, 매화를 주제로 한 문학 등 매화와 관련한 모든 것을 담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의

매화에 대한 격조 높은 사랑과 애정의 모습도 살펴봤습니다. 정매와 분매, 묵매의 역사와 유래, 생육 상황에 대해서도

정리했습니다.”

그가 이를 출간하기 이전까지 국내에는 매화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조선 초기의 학자이자 화가인 강희안(1418~1465)이 펴낸 국내 최초의 원예서라고 할 수 있는 청천양화소록

매화에 관한 구절이 있는데, 이것이 매화나무에 관한 첫 기록입니다. ‘한국의 매화는 국내 유일의 매화전문 서적인

셈입니다.”

 

그는 이를 계기로 국내에서 자라는 매화의 품종 등도 모두 정리하기로 했다.

 

조선시대 문헌을 보면 우리나라에는 10종의 매화가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지금은 몇 종이나 자라는지 알고 싶어 

8년여에 걸쳐 전국의 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194개 품종이 생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는 발이 부르트도록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조사한 매화에 관한 기록을 매화보’(2009)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는

이른바 우리나라 매화나무의 족보인 셈이다.

 

국내에 자라고 있는 매화의 품종들을 조사해 정리한 것만으로도 뜻있고 값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또 여기서 멈추지 않고 100년 이상 생육한 국내 노매를 찾아다녔다. 나아가 왜 이 자리에 노매가 자리를 잡고

꽃을 피우게 됐는지를 설명해 주는 매화를 찾아서’(2009)를 출간했다.

 

행정안전부와 문화부에서 자료를 구해 오래된 매화나무가 있을 만한 정자와 서원, 고택 등을 찾아다녔지요. 강릉 오죽헌에 있는 율곡매는 1400년경에 식재되었으며, 신사임당과 율곡 이이가 나무를 직접 가꾸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오래된 매화마다 사연과 역사가 깃들여 있습니다. 천연기념물이 된 매화 5그루를 비롯해 호남5(湖南5), 

산청3(山淸3),경북2(慶北3)를 포함한 총 85그루의 100년 이상 된 매화나무를 찾아내서 정리했습니다.”

 

 

 

 

 

 

 

 

 

 

 

 

 

 

 

 

 

 

 

그는 우리나라 건국 후 처음으로 매화나무를 문화재(천연기념물)로 지정되도록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어느 날 지인의 안내로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이 분재원에 만개한 매화를 보겠다면서 찾아왔더군요. 그 자리에서

수백년 된 매화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면 좋겠다고 건의했지요.”

 

실제로 유 전 청장은 그의 저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방상진 교수와 이은복 박사, 그리고 안형재 원장 등 전문가

세 분께 전국에 있는 노매를 조사해 천연기념물로 정리, 지정하는 용역을 의뢰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수령 620년 된 순천 선암사의 선암매, 수령 450년 된 구례 화엄사의 화엄매, 수령 350년 된

장성 백양사의 고불매, 그리고 수령 600년된 강릉 오죽헌의 율곡매 등 매화 4그루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그는 국내 유일의 매화마을로 유명한 전남 광양의 관광자원화 사업단 자문위원으로 5년간 일하기도 했다.

 

매화에 푹 빠져 살아오면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창경궁에 있던 와룡매(臥龍梅)의 생육을 확인하고 그의 후손을 가져와 보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 원장이 말하는 창덕궁 와룡매는 임진왜란(1592~1597)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령에 따라 조선으로 출병한

미야기현 센다이 맹주였던 다테 마사무네에 의해 1593년 일본으로 반출됐다. 지금은 일본 마쓰시마(松島)

즈이간지(瑞巖寺) 경내에 있다.

 

그는 매화와 함께한 인생에 대한 소감을 묻자 일생일사(一生一死)’라는 좌우명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인생은 일생일사라고 하지 않습니까. 옳다고 생각하는 것은 일생을 바쳐서 앞만 보고 끝까지 매진하자는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고매를 찾고 돌보는 것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이상 글 출처 : 세계일보 류영현 선임기자 yhryu@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