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 <제정구 커뮤니티센타>
2021년 4월, 경남 고성 대가면 대가저수지 한켠에
암적색 단층 건물 하나가 들어섰다.
이 동네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빈민운동가 고 제정구 선생의 기념관인
<제정구 커뮤니티센타>이다.
6,000 평이 넘는 넓은 부지에
건물면적은 140평 정도의 작은 기념관 건물인데,
이 건물은 일반적인 기념관과는 결이 좀 다르다.
보통 신축 건물들이 생경하게 주변을 압도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기념관은 저수지 속의 작은 공원내지는
‘사색이 있는 작은 오두막’ 정도의 친숙한 느낌으로
방문자에게 다가온다.
설계를 맡은 승효상 건축가는 "건축물보다는 풍경을 설계하려고 했다"고
설계의도를 피력하기도 했었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타> 프로젝트는
고성군 측이 제정구 선생의 삶과 닮은 건축관을 가진
승효상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하면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승효상 건축가는 ‘건축에서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빈자(貧者)의 미학'을 평소에 강조해 온 건축가이다.
그래서 그는 "제 건축이 과장된 폼이나 현란한 색채를 쓰지 못하기 때문에,
저한테 딱 맞는 프로젝트라고 생각했다"며
흔쾌히 디자인을 맡았다고 한다.
그리고 기념관 건물 설계의 바람직한 방향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기념관은 찾아간 사람으로 하여금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관에 가면
전사자의 이름이 적힌 검은색 대리석 위에
그걸 바라보는 방문객의 얼굴이 비치면서 여러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좋은 기념관은
찾아간 사람으로 하여금 성찰하고 사유할 수 있게
인도해야 한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타>도
제 선생이 사회에 던진 화두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사항을 설계자는 남겼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타>는 대가저수지에 접해 있는
대가저수지연꽃테마공원 내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다.
고성군은 산과 바다가 만나는 지리적 특징과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품은 곳이다.
선사시대 및 소가야 문명 유적 등 역사적으로 풍부한 문화유산을
담고 있는 고장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수려한 자연경관 속 지역 쉼터로 마련된 공원 안에
센터가 자리 잡았다.
센터는 연면적 450㎡ 규모로 지상 1층짜리 아담한 건물로
전시실과 북카페, 강당, 교육실을 갖췄다.
건물은 중간이 연결된 두 채로 구성됐고
저수지 방향으로 두 건물 사이에 작은 정자가 있다.
입구에서 볼 수 있는 삼각형 형태의 우뚝 솟은 탑은 묵상을 위한 공간이다.
선생이 기원하던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관람객들이 되뇔 수 있는 곳이다.
다소 투박하고 단순하기 그지없는 이 건물은
제 선생의 삶을 투영하기 위한 설계가 기초가 됐다.
화려한 기술이나 치장보다는 정신이 깃든 건물이 될 수 있도록
그의 내면의 정신이 흐르는 건물을 추구한 결과다.
건축가는 “선생은 우리 모두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집착했다.
그런 분을 기억하는 집이라면 보다 근본적 건축이어야 한다고 여겼다”고 소개했다.
두 채의 건물을 떼어놓고 보면,
외형은 단순한 박공모양 형태로 길게 뻗은 모습이다.
인간의 내면에 집착했던 제 선생을 기리는 건물이라면
가장 단순한 형태의 근본적 건축이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선생은 언제나 연대의 의미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다.
그래서 단독 건물보다는 두 채가 나란히 선 모습으로 놓여졌다.
한 채였으면 가려졌을지 모를 대가저수지의 풍경은
두 건물 사이로 시야가 트이면서 아름다운 풍경을 내비친다.
두 채의 건물 사이 마당에는
더욱 더 단순한 형태의 박공 지붕 모양의 정자가 있다.
정자 안에는 작은 벤치 하나가 있는데,
그 가운데에는 사람들을 언제나 환대했던 제 선생이
살아생전 모습처럼 동상으로 남아 방문객들을 반긴다.
위치상 정반대편인 입구 마당 쪽에 위치한 묵상용 탑은
선생이 늘 기원하던 ‘바른 세상을 향한 염원’을 기리는 장소다.
정원 외에도 제 선생의 동상은 곳곳에 마련돼 있다.
선생의 일상을 자연스럽게 보여주고자
미술가 임옥상 선생에게 부탁해 설치했다.
건축가는 “어떤 동상은 방문객을 환대하는 모습으로,
어떤 동상은 깊은 사색의 모습으로, 혹은 기도하는 모습으로
곳곳에서 선생을 만나게 된다”고 했다.
방문객들은 센터를 둘러보는 동안
실제로 제 선생을 만나 교감을 나눈 듯한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이렇게 소박하게 마련된 추모의 공간들은
작지만 몇 채가 어우러진 작은 마을처럼 기능한다.
그리고 그 옆에 조성된 외부 공간들과 함께 공간에 대한
다양함을 연출하게 된다.
......
건물이 천천히 녹이 슬며 세월을 기록하는 동안,
주변의 테마공원도 점차 울창한 숲으로 변해갈 예정이다.
공원 내에서 센터보다 먼저 조성된 테마공원은 나무가 부족한 상황이어서
센터 조성과 함께 숲을 조성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래서 지역 수목이면서 비교적 빨리 자라는
백합나무를 급히 구해 100그루를 심었다.
지금은 나무의 줄기도 비교적 가늘고 간격도 넓은 편이어서
조금은 허전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무가 자랄수록 숲도 점차 울창해지고 시간에 따라 변해갈 것이다.
건축가의 표현을 빌자면
“제 선생의 집 뿐 아니라 제 선생의 숲을 설계한 것”이라는 의미다.
건물 곳곳에 풍성한 추모의 의미가 담겼지만
기능적으로는 주민들과 방문객이 마음 편히 오갈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건물 내부는 전시실과 북카페, 강당, 회의실 등이 마련돼 있다.
단순하고 검소한 느낌의 외벽과 마찬가지로 내부 또한
콘크리트 재료 본연의 모습으로 꾸며져 있는 등 검박한 모습이다.
건물은 대가저수지를 바라보며 주변으로 아름다운 산세를 품은
생태공원과도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결국 건축물은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들이
소통하고 경험하는 공간으로서의 가교 역할을 맡는다.
건축가는 이 건물이 비록 작지만,
내면의 존엄성을 느낄 수 있도록
‘가짐없는 큰 자유’처럼 기능하길 바랐다.
건축가는 “물신에 사로잡혀 현대를 사는 우리들이
우리의 내면에 흐르는 존엄성을 다시 듣도록 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도록 권유하는 시설이 되길 원한다”고 말했다.
(글출처 : 서울경제, 진동영 기자)
<제정구 커뮤니티센타>는 대가연꽃테마공원 내에 있으며,
인근에는 제정구 선생의 생가와 묘소가 있다.
제정구 선생은 고성군 대가면 척정리(척곡마을)에서 태어나
고성에서 대흥초등학교, 고성중학교를 거쳐, 1962년 진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66년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 입학했다.
1972년부터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했으며,
1984년 빈민운동의 대표자격으로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중앙위원으로
민주화투쟁에 참여했다.
1985년 3월 천주교도시빈민회를 창립해 초대 회장으로,
그해 11월에는 천주교사회운동협의회 의장으로 활동했다.
1987년에는 판자촌 강제철거 반대투쟁을 전개하면서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 공동대표를 맡아 6·10 민주화운동을 주도했고,
1988년에는 태국 방콕에서 발족한 '민중주거쟁취 아시아연합'에
정일우 신부와 함께 한국대표로 참가하기도 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의 공천(경기도 시흥·군포 선거구)으로 출마해 당선됐고,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통합민주당)에서 재선,
1997년 대통령 선거 때 통합민주당과 신한국당의 합당으로
한나라당에 합류해 활동했다.
1999년 고인이 된 그는
민주화와 도시빈민을 위해 투쟁해 온 공적을 인정받아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 받았다.
(글출처 : 뉴스1코리아(news1.kr))
‘가짐 없는 큰 자유’.
도시빈민을 위해 일생을 투신한 인권운동가 고(故) 제정구 선생의
철학을 축약한 말이다.
1972년 서울 청계천 판자촌에서 도시빈민운동을 시작한 이래
그는 평생을 판자촌 주민들의 삶과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다.
선생은 1999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삶을 주변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던 제 선생의 공동체적 삶의 철학이
<제정구 커뮤니티센타>에 잘 스며있다고 말 할 수 있겠다.
[인터뷰] 승효상 “건축은 공공재, 개인은 사용권만 가질 뿐”
신동아 2021년 10월호
그와 마주 앉아 대화를 나눈 곳은
서울 동숭동 나지막한 언덕 위에 있는 ‘이로재’다.
승 대표의 자택 겸 건축사무소인 이 건물은
2002년 완공 당시 우리나라 최초로 내후성 강판(코르텐 스틸)을
외장재로 사용해 화제가 됐다.
내후성 강판은 승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도 쓴 재료다.
시간이 흐를수록 표면이 부식되며 색이 달라지는 게 특징이다.
검은색으로 출발한 ‘이로재’ 외벽은 차츰 붉은색으로 변해가다 이제는 암적색이 됐다.
승 대표는 “기억을 담기에 이만한 소재가 없다”고 했다.
문득 그가 2012년 펴낸 책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모든 도시와 건축은 사라지게 마련이다.
세운 자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아무리 튼튼하게 지었다고 해도
중력의 힘에 의해 건축과 도시는 반드시 무너지고 만다.
때로는 경제적 이유로 붕괴되고, 더러는 자연재해로 혹은 테러나 사고로 모두 무너져
결국은 땅의 표면 위에 가라앉아 사라지고 만다.
영원한 것은 우리가 같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며
그 기억만이 진실한 것이다.”
수많은 건물이 저마다 웅장함, 화려함, 독특함을 뽐내려 하는 현대 도시에서
승 대표는 이렇게 “그 이후의 기억”에 주목해 온 건축가다.
“진짜 좋은 건축물은 잘 보이지 않는다”라는 건축관을 지키며
도심에서 조금 비켜난 골목길 속, 빛바랜 건물에 ‘이로재’ 둥지를 틀었다.
그 안에서 승 대표가 지난 20년간 지어온 건축물을 관통하는 철학을 꼽자면
‘빈자(貧者)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그가 1996년 펴낸 동명의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여기에선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
승 대표는 ‘제정구 커뮤니티 센터’ 역시 이런 철학의 바탕 위에서
설계했다고 말했다.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건축
- 오랫동안 ‘가난’에 대해 이야기해 온 건축가가 ‘빈민 운동의 대부’ 제정구 선생 기념관을 설계하게 됐다. 남다른 인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나로서도 참 뜻깊은 일이다. 생전에 선생님을 뵌 적은 없지만 ‘가짐 없는 큰 자유’를 실천하셨다는 점에서 늘 마음으로 존경했다. 다만 내가 선생님처럼 가난한 사람을 위해 싸우지는 않았다. 건축은 기본적으로 돈 있는 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이다. 나는 그분들에게 ‘빈자의 삶’을 기억하며 절제할 것을 권했다. ‘빈자’를 위한 건축이 아니라 ‘가난할 줄 아는 사람’을 위한 건축을 해왔다고 할 수 있다.”
- ‘제정구 커뮤니티 센터’를 지으며 특히 주안점을 둔 부분이 있나.
“선생님 삶을 반영해 소박하고 절제되며 가장 본질적 형태의 건축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순한 박공집 하나를 설계했다. 그 뒤 하나만 있으면 외로우니까, 항상 연대를 주장하신 선생님을 생각해 비슷한 건물을 하나 더 두었다. 두 건물 사이로 보이는 풍경이 굉장히 아름답다. 그 외에 선생님을 기리는 작은 기념탑을 세우고, 정자도 만들어 전체가 하나의 마을을 형성하도록 했다.”
- 주위에 나무도 심었다고 들었다.
“기념관 근처에 아름다운 저수지가 있는데 나무가 없었다. 그 지방에서 잘 자라는 백합나무 100그루를 심어 숲을 조성하고 그 안에 이 단순한 건물을 두기로 했다. 어떻게 보면 건물을 설계한 게 아니라 풍경을 설계했다고 하는 게 더 맞을 것이다. 그 공간이 모든 사람을 환대하는 작은 숲이 되기를 바랐다.”
<제정구 커뮤니티센타>가 들어선 곳은
대가면저수지 가장자리의 지방국도와 접한 곳이다
고성군은 이 지역의 자연환경을 보전하기 위하여
대가저수지 상류지역인 유흥리 271-11번지 일원 45만8763㎡ 를
개발행위허가 제한지역으로 지정,
축사 등 무분별한 개발행위를 사전에 차단했다.
현재 이곳에는 연꽃테마공원과 생태탐방로가 개설되어 있고
1만9940㎡규모인 연꽃테마파크에는 수련, 홍련, 황련, 백련 등이 식재돼 있고
게이트볼장, 잔디동산, 휴게쉼터, 연꽃탐방로, 전망대, 체력단련장 등
주민편의시설도 갖춰져 있다.
수변데크와 경관조명을 갖추고 있는
대가저수지 생태탐방로의 960m구간에는 벚꽃나무가 식재돼 있어
봄이 되면 새로운 벚꽃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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