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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택 (2019.05.12.)














 


 

  산청 남사마을 이씨고가 

 


남사마을의 트레이드 마크인 회화나무를 통과해

 나지막한 돌담 끝에 있는 대문을 지나면

 건축된 지 약 200여 년 된 안채와 사랑채, 익랑채, 곳간채가

안채를 중심으로 자형으로 배치된 가운데

왼편으로 사당이 있다.


사랑 마당의 북쪽으로

정면 4, 측면 2칸 반의 팔작지붕 사랑채가

동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계자 난간 모양의 사랑채는 안채와 앞뒤로 나란한 병렬 배치이고,

 사당은 곳간채 뒤쪽이지만 안채 왼쪽 전면에 있으며

시각적으로 막혀 있는 특이한 배치를 보인다.

 

안채는 전형적인 남부 일자형 구조로

정면 6, 측면 3칸 규모의 집이다.

앞뒤로 툇마루가 있고,

건넌방 툇마루를 대청보다 20센티미터가량 올리고

밑에 아궁이를 설치했다.

일반적인 사대부 주택에서는 부엌이 사당 방향과 반대편에 있지만

이 집에서는 부엌이 사당과 같은 동쪽에 자리하고 있다.

 안채는 전형적인 한옥인 반면

사랑채는 과장된 규모와 장식이 눈에 띄는데

20세기 초반에 건설되어 다소 위세감을 보이려고 의도했기 때문이다.

사랑채와 안채가 건설된 연대가 거의 200여 년가량 차이 나므로

세월에 따른 한옥의 구조적, 조형적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다.





























































































 

익랑채는 초가 지붕으로

정면 4, 측면 1칸 반 크기에 동향이며 남쪽에 부엌과 방,

대청 등을 배치하고

앞면에는 개방된 툇마루를 만들었다.

곳간채 뒤에 사당이 있는데 맞배지붕이며

붉은 옻칠을 한 4개의 위패(아버지, 조부, 증조부, 고조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나란히 모셨다.

같은 자형 집인데도 중부 지방과는 달리

남부 지역은 덥고 습하므로 공기의 흐름을 원활히 하기 위해

건물 사이에 공간을 두어 독채로 지은 것이 특징이다.

명당 중의 명당에 위치한 탓인지

 6·25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마을이 불바다가 되었을 때도

이씨고가는 멀쩡했다고 한다.

 

남사마을에서 일가를 이루었던 성주 이씨 가문에는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물 제1294호이자 가보가 있다.

조선 개국 때 태조가 공을 세운 정무공 이제에게 내린

 이제개국공신교서.

이제는 이성계의 셋째 딸 경순공주의 남편이자

정몽주 격살에 참여한 개국 일등공신으로 책록, 흥안군에 봉해졌으며

 의흥친군위절제사가 되었다.

이제의 아버지 이조년(1269~1343)

한국인이라면 거의 외우고 있을 다정가의 작가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 양 잠 못 들어 하노라."


(글출처 : 과학문화유산답사기2 | 이종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