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스님의 마음을 맑히는 산사순례
- 운달산 김용사
김용사의 아름다움을 아직 다 발견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알만 한 사람에게만 가만히 알려주고 싶은 곳이 있다.
장독대다.
장독대가 고결(高潔)하기까지 하다.
눈 뜨고 보면 아름답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리요만,
이곳은 아껴두고 싶은 아름다움이 있다.
장독대는 상선원 바로 밑에 있다.
상선원(上禪院)이면 참선 수행하는 수좌스님들이 공부하는 곳이다.
그렇기 때문에 도량의 가장 길(吉)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장독대가 선원 밑에 있는 것은 좀 특별한 뜻이 있을 것 같다.
처음의 설은 장(醬)맛을 익히고 익혀서 어느 음식과도 잘 어울리고,
부족한 맛은 채워주고 넘치는 맛은 누그려 뜨려주고,
얼른 먹으면 그냥그냥한 맛이지만,
물러나 생각하면 가장 그리운 맛을 내라는 뜻이 아닐까.
담장은 엉성엉성한 돌과 찰흙과 기왓장으로,
바람과 햇볕이 드나들기 쉽도록 적당히 낮다.
봄이면 담장 틈에 해마다 피어나는 얼레지 제비꽃 민들레 향기,
가을이면 비색하늘을 물들이는 천연색 단풍이 장맛에 깃들여지고,
한 여름 뙤약볕에 적당한 그늘을 드리우는 담장 넘어
매화나무는 장들에게 잠시 숨을 고르게 한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들리는 수행자들의 발걸음 소리에
장들은 늘 깨어있다.
이 세상 그 무엇도 홀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
‘나’라고 이름 붙여지기 위해서는 하늘과 땅과 시간의 흐름이 있어야 한다.
서로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연기(緣起)적으로 존재한다.
장독대를 매일 닦아주는 공양주의 손길과 정진하는 수행자들이 함께 있기에
김용사 장독대가 있다.
사찰음식을 포함한 우리음식은 좋은 장(醬)을 기본으로 한다.
좋은 장은 좋은 콩과 좋은 소금을 비롯한 좋은 장독대가 있어야 한다.
좋은 장독대는 몇 가지의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데,
우선 장독대의 위치가 좋아야 한다.
물이 잘 빠져야 하고 햇볕과 통풍이 좋아야 한다.
보통 공양간 뒤쪽에 위치하기 쉬운데,
그늘지고 습한 곳이면 좋지 못하다.
바닥과 담장을 온통 시멘트로 단장하는 바람에 오히려 장맛을 버리는 일도 있다.
장들도 숨을 쉰다.
하려고 했지만 더 깊게 생각하지 못하면 거리가 생기고,
그러다 보면 맛이 생경해진다.
답은 어렵지 않다.
사람을 포함한 주변 자연과 평등하면서도 있는 듯 없는 듯
편하게 어울려야 한다.
큰 법당의 부처님께 비로소 절을 올렸다.
세분의 부처님을 모셨다.
어간 중앙에 석가모니불,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여래불….
왜 세분의 부처님을 모셨을까?
뭐니뭐니해도 지혜가 먼저 일 것 같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의 지혜를 깨쳐 번뇌 없이 잘 살고,
중생의 고통 중에서도 병고의 고통이 크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도 아프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아프지 말라고
약사여래부처님께 기도하고,
또 이 세상에서 해야 할 공부를 다 하고 난 뒤에는
아미타부처님도 만나서 열심히 정진하고,
종래에는 모든 사람들이 성불하라는 뜻으로
세분 부처님을 모셨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합장하고 부처님을 올려다본다.
부처님과 눈을 맞추고 그저 바라본다.
당당한 위엄이 있으시다.
하지만 눈길은 담담하시다.
내 마음이 담담해서 그런가?
아니 부처님의 눈길은 어쩌면 본래가 담담하실지도 몰라.
원래 큰 맛은 담담한 맛이래….
후불벽 탱화도 예사롭지 않다.
석가모니부처님의 손 모양이 특이하다.
오른 손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왼손이 가슴께로 올라가 있는 모습이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또 타방세계에서 오신 일곱 분의 화불(化佛) 부처님들이
탱화의 중앙에 등장하고 있는 것도 이채롭다.
특이하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셨던 화승(畵僧)들의 독특한 표현 방식이라고
주지스님께 설명을 들었다.
부처님 위에 있어야 하는 닫집이 없다.
덕분에 후불탱화가 높고 장엄하다.
천정에는 부처님을 호위하는 황룡 청룡의 모습들,
노래와 춤으로 부처님의 설법하심을 찬탄하는
하늘 사람들의 모습 등이 그려져 있다.
마치 이곳이 천상의 세상임을 말해주는 듯하다.
천상의 모습이니만큼 잘 그려져 있다.
우리들의 각종 소원과 염원들을 안고 천정에 매달려 있는 연등들의 틈으로
화려한 그림들이 어렵게 눈에 들어온다.
저 그림들을 그리기 위해 단청장들이 얼마나 애를 썼을까?
고개를 젖히고 그려야 하고, 바닥에서 바라 볼 때도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니
더욱 신경을 많이 썼을 것이다.
법당을 나와 추녀 끝에 달려있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추녀 밑 공포가 온통 꽃으로 장엄되어 있는 것을 본다.
그 꽃밭에 개성이 강한 용(龍)이 있다.
코가 구부러져 있다.
아마도 그 꽃들의 향기에 취하셨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의주는 입에 꼭 물고 있다.
다른 곳에서는 보기 어려운 김용사 만의 생각거리이다.
목수가 비틀어 놓은 용의 코가 지금은 누구의 코를 세우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재미있다.
주지스님은 이곳에 오신지 일주일이 채 되지 않으셨다 한다.
하지만 새벽예불 행선축원 때 풍겨 나오는 법다움과 덕스러움은
오래전부터 이곳의 주인이셨던듯 하였다.
함께 차를 나누고 사진을 한 장 찍자고 했더니 한사코 마다하신다.
이 도량에 어른 스님들이 계시는데 자신의 얼굴을 내밀기가 쑥스럽다 했다.
김용사가 그곳에 그대로 존재하는 것으로도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과 닮으셨다.
하지만, 새봄 포교경험 많으신 주지스님이 그냥 계시지는 않을 것 같고
어떤 법회를 하실지 궁금하다.
김용사는 세상을 잠시 벗어나고 싶을 때 추천하는
1순위 사찰이다.
취업이나 삶의 문제를 고민하는 젊은이들이 힘들어 할 때,
그런 문제를 상담해주고 길을 열어주는 법회가 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또 이렇게 멋진 장독대가 있으니 사찰음식으로도 손꼽히는 절,
김용사에 와야만 맛볼 수 있는 김용사만의 사찰음식이 있었으면 좋겠다.
김용사는 많은 고승들과 시인 묵객들의 발자취를 간직하고 있다.
그 중에는 아픔이 있는 역사도 있다.
일제 강점기 승려의 신분이면서도 동양 전체의 번영과 질서를 세우기 위하여
모든 사람이 최후의 일각까지 전쟁에 참여해야 한다고 외쳤던 부끄러운 인물,
안토 소오로(安東相老)가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왜색 불교의 그늘에서 벗어나고자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고 결사의 깃발을 들었던 성철스님이 살았던 곳이기도 하다.
성철스님은 오랜 수행을 마치고 드디어,
대중을 상대로 법문을 하기 시작한다.
그 첫 번째 장소가 김용사이다.
이 법회를 시작으로 해인총림의 백일법문이 이뤄지게 되었다.
성철스님이 법문했던 강당에는 아직도 옛날 방식 그대로
아궁이에 불을 때는 구들이 남아있다.
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가장 큰 구들방이라 한다.
큰 방에 들어가 앉아 본다.
귓가에 성철스님 특유의 산청 사투리가 쩌렁쩌렁하게 들리는 듯하다.
이 시대, 또 다른 성철이 이 강당에서 새로운 백일법문을 이어나가길 발원한다.
대웅전 뒤편 언덕 위에는 아미타 부처님을 모시는 극락전과 금륜전이 있다.
금륜전은 북두칠성 부처님인 치성광 여래와 산신,
그리고 독성을 모시고 있다.
산세의 흐름을 따라 적당한 위치와 규모를 차지하였다.
그곳에서는 딱 한 사람만으로도 꽉찬 풍요로움을 느끼게 한다.
누가 복 있는 사람이 있어 아침 해 뜨는 시각에
세상을 향한 발원문을 읽을 사람이 있을까?
김용사에 가면 보장문 옆 측간을 꼭 가 볼 일이다.
요즘 절에서도 보기 힘든 옛날 방식의 전통 화장실이다.
대개는 수세식으로 다 바꿔버렸기 때문에 전통방식이 어렵게 남아있다.
수세식에 익숙한 현대인을 위한 배려라는 것은 알지만
절집에 옛날식 전통 측간이 하나 쯤 있는 것은 괜찮은 일이다.
남녀로 칸이 구분은 되어 있으나 앞문이 없는 구조를 현대인은 불편해 할 것이다.
하지만 어험~! 하는 기침 소리 하나로 의사표현을 다 하였던
우리네 심성을 이런 곳이 아니면 어디 가서 경험해 보겠는가.
표백제가 들어있는 화장지는 따로 처리하고,
일을 보고 난 후에 한 웅쿰의 왕겨나 낙엽을 뿌려 준다.
이것이 다시 몇년 정도 잘 삭으면 밭의 채소를 가꾸는 훌륭한 자양분이 된다.
이렇게 해서 채소는 내가 되고, 나는 또 다른 채소가 되어,
돌고 도는 윤회 속에 하나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새 봄, 번뇌를 다 내려놓은,
일 없는 사람이, 일을 보는 사이, 귓가에 들리는 뻐꾸기 소리는,
김용사에서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복이다.
[글출처: 불교신문 2890호/2013년 2월 23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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