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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경주 황룡사지 ( 2016. 08.14.)




















 

   


경주 황룡사지 (慶州 皇龍寺址)

 

종 목

사적 제6


 

 

 

황룡사는 신라 진흥왕 14(553)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황룡(黃龍)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에 완성되었다.


그 후 574, 인도의 아소카왕이 철 57,000·3만분으로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 땅에 닿게 되자, 이것을 재료로 삼존불상을 만들게 되었는데,

 5m가 넘는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584)에 금당을 짓게 되었다.


선덕여왕 12(643)에는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바램의 9층 목탑을 짓게 되는데,

각 층마다 적국을 상징하도록 하였으며,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의해 645년에 완공되었다.

 

이와 같이 황룡사는 93년간에 걸친 국가사업으로 조성된 큰 절이었으며,

신라의 3가지 보물 중 천사옥대(天賜玉帶)를 제외한 2가지 보물이

황룡사 9층목탑과 장육존상이었다는 것에서도 황룡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신라의 땅이 곧 부처가 사는 땅'이라는 신라인들의 불교관이

잘 나타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황룡사는 고려 고종 25(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져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있다.

늪지를 메워서 그 위에 지은 황룡사는 중문·목탑·금당·강당이 남북으로 길게 배치된

 1탑식 배치였다.

그러나 장육존상과 목탑 등이 조성된 후 금당 좌우에 작은 금당이 배치되는

 13금당식으로 바뀌고, 탑의 좌우에 종루와 경루(經樓)가 대칭을 이루어 배치되었다.

또 사방은 복도와 같은 회랑으로 둘러싸여, 독특한 가람배치를 보이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종루에는 거대한 종이 있었는데,

몽고가 침입했을 때에 없어진 것으로 보인다.

 

1976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금동불입상·풍탁·금동귀걸이·각종 유리 등

4만여 점의 유물이 출토되었으며,

높이 182에 이르는 대형치미는 건물의 웅장한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금당에는 솔거가 그린 벽화가 있었다고 전하며,

목탑지에서 발견된 당나라 백자항아리는 당시의 문물교류를 잘 알 수 있게 한다  

(글 자료 : 문화재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