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창녕 영산 만년교
(글 = 영남일보 류혜숙 객원기자 archigoom@naver.com )
보물 제564호인 창녕 영산 만년교.
단순하지만 우아한 홍예의 형태로 ‘남천교’ ‘원다리’라고도 불린다.
홍예의 길이는 11m, 높이 5m, 홍예 석축의 교폭은 4.5m. 노면은 얇게 흙을 깔았다.
무지개는 물방울과 빛의 희롱이다.
태양의 반대쪽에 비가 오면 나타나 수많은 신화와 예언과 신탁을 흩뿌리고는 사라진다.
북유럽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의 다리로 보았고,
아메리카 인디언들과 말레이반도의 원주민은 천상의 거대한 뱀이라 여겼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신령이 지나다니는 다리로,
우리나라에서는 선녀들이 지상으로 내려오는 통로라 생각했다.
그리스신화에서는 이리스 여신으로 제우스의 사자였으며,
성서에서는 노아의 홍수 후 두 번 다시 홍수로 인한 멸망은 없을 것이라는 신의 약속이었다.
언제나 우리 앞에 환히 뜨는 무지개들이 있다.
무지개 홍(虹), 무지개 예(霓), ‘홍예(虹霓)’.
깨끗하고 순수하고 기하학적인 그것은 공예에 가깝고, 지상이 아니라 하늘과 가까운 것이어서,
바람을 머금은 돛처럼 곧 날아 오를 것만 같다. 그래서 양 끝을 지상에 고정시킨 것이 홍예다.
무엇보다 견고하고 영원하도록 만든 모든 것은 인간과 시간에 의해 파괴되어 왔다.
우리의 홍예는 그렇게 난폭한 역사 속에서 살아남은 것들이고,
그 아름다움에 의해 다시 세워진 것들이다. 2013년 가끔 무지개를 찾아 떠나고자 한다.
살아서 남아있는 것들은 언제나 미래적이고, 거기에서 현대의 신화와 예언과 신탁과 약속,
혹은 희망과 기원이 생겨난다.
어둠이 걷히고 마침내 대기와 빛 속에 놓이면,
돌 무지개는 유쾌하고 순진한 얼굴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단순한 형태들이 주는 매혹은 문장이 되기 전의 단어처럼 순수하다.
이윽고 물과 빛과 돌이 하나 되면 무지개는 통로로 열린다.
서로 다른 질료가 하나로 통합되면 무릇 만 년도 쉬이 가리.
◆창녕 영산 만년교, 무지개의 내력
창녕 영산의 남산에서부터 내려온 물줄기가 마을을 감싸고 흐른다.
개천을 가로질러 대로가 이어지니, 사람들은 나무다리를 걸쳐 놓고 오갔고
때로는 왕에게 바칠 공물이 그 길을 지나갔다.
그러나 물이 넘치면 다리가 무너져 매번 어려움이 많았다.
어느 날 고을의 백성들이 함께 도모하기를,
“다리를 오래 보존하고 물의 흐름을 제압할 방법으로는 돌을 깎아서 다리를 만드는
방법보다 좋은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백성들이 재물을 모으고 돌을 깎아 다리를 놓으니
이로써 근심이 없어지게 되었다. 1780년 정조 4년이었다.
‘어찌하여 돌로 만들었는가. 오래도록 보존할 방법으로는 돌이 알맞기 때문이다.
무엇 때문에 무지개 모양으로 깎았는가. 옮길 수 없게 하려는 것이니, 그 공을 알 것이다.’
그리하여 이 개울 위에 무지개 하나가 놓이게 되었다. 남천석교다.
100여년 후, 1892년 고종 29년에 마을의 현감 신관조가 다리를 중수한다.
그리고 ‘이 다리는 만년을 갈 것이다’라 기원하고 ‘만년교’라 이름 짓는다.
다리 앞에는 이러한 내력을 세긴 비석이 서있다. 세 동강 났으나 야물게 이어 붙인
‘남천석교서병명’비다.
신관조는 멋을 알고 선정을 베푼 현감이라 전해지는데,
그로 인해 만년교는 ‘원다리’라 불리기도 한다.
우리 원님이 우릴 위해 놓아준 다리라는 뉘앙스인데, 무릇 사랑받는 이름은 오래 불리기 마련이다.
◆백성이 오가고 산신이 거닐다
당시 이 고을에는 신통한 필력을 가진 열세살 난 신동이 살고 있었다.
다리가 완공되던 날 밤, 소년의 꿈속에 산신이라 자처하는 한 노인이 나타나 말한다.
“듣건대, 네가 신필이라고 하니 내가 거닐 다리에 네 글씨를 새겨놓고 싶다.
다리의 이름은 만년교로 정하겠다.”
꿈에서 깨어난 소년은 밤새 ‘萬年橋(만년교)’ 석 자를 새겼다.
그리고 비석의 끝에 ‘십삼세서’라 작게 새겨 놓았다.
만년교 앞에는 소년이 썼다는 만년교비가 지금도 서있다.
만년교는 산신이 거니는 다리다. 그리고 지금도 물론 사람들이 오간다.
◆돌로 쌓은 무지개
다리의 주춧돌은 개천의 자연 암반이다.
그 위에 받침돌을 놓고 잘 다듬은 화강암 32개를 맞대어 홍예를 만들었다.
홍예의 머릿돌 위에는 비교적 큰 돌들을 조르르 배열하고,
양쪽 다리 벽은 자연 잡석을 쌓아 전체적으로 완만하게 휘어진 경사를 만들었다.
돌들은 서로 긴장감을 가지고 서로를 포옹하고 있고, 다리는 꾸밈없이 아름답고 단순하게 우아하다.
무지개다리를 중심으로 양쪽 좌우로 석축이 길게 뻗어나가 있다.
다리와 마찬가지로 자연석을 쌓은 석축이다. 다리의 노면에는 얇게 흙을 깔았다.
부드러운 탄성을 느끼게 하는 흙 마감은 연결되는 땅과의 일체감을 선사한다.
현대의 다리는 모두 땅과 분리된 하나의 구조물이다.
그러나 이 다리는 분리가 아닌, 땅의 연속이자 땅의 뿌리처럼 이 땅에서 저 땅으로 자라나 있다.
지금까지 수많은 홍수에도 아무런 피해가 없었다고 한다.
몇 년 전 이 다리는 보수되었다.
최대한 원형에 가까운 복원을 위해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제120호인 석장 이의상씨가
맡아 추진했다고 한다. 다리 앞에는 복원 과정을 담은 안내판이 서 있다.
모든 오래된 것이 애정 어린 무관심과 사랑 속에서 조용히 늙어가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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