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안 은하재銀河齋 > 공사일기 - 1 ( 터보기 )
함안군의 행정 중심지 가야읍의 관문이라고 할 수 있는 검암마을은
약 100여호가 넘는 역사 깊은 전통마을로
위로부터 다시 상검, 중검, 하검마을로 나뉘어진다
마을 앞으로는 여항산에서 발원한 여항천(검암천)의 맑은 물이 흘러내려서
남강과 낙동강으로 합류된다
은하재銀河齋는 검암산의 끝자락 하검마을에 새로이 둥지를 틀게 된다.
대지 주변의 기존 마을 풍경은,
슬레이트 지붕으로 대표되는 6~70년대 산업화시대의 잔재와
칼라강판으로 다시 덧칠한 현대의 경제적 이기주의가 부조화스럽게 엉켜 있는 가운데
드문드문 신축한 주택들이 마을의 분위를 바꾸기 위해 애를 쓰고 있는 모습들이다
내가 현장을 처음 방문한 것은 겨울이 끝나가는 3월 초순경이었다
대지는 약 180 평의 비교적 긴 장방형으로
동서방향이 짧고 남북방향이 긴 축을 가지고 있고
북측에 3.5m 정도의 경사진 언덕이 있었다
그런데 그 북측 언덕에는 원래 조그만 대나무숲이 있었는데
그 대나무들이 깡그리 베어져서 마당에 널려 있었다
생때같은 대나무들을 베어버리고,
사람이 아무리 돈을 많이 들여서 잘 꾸며 놓은들
햇빛과 바람이 만들고 키우고, 땅의 흔적과 역사가 깃든 옛날의 그 대나무숲을
따라가지는 못 하리라는 것이 확고한 나의 지론이다
이미 엎어진 물을 잘 수습해야 하는 숙제를 안고
영역나누기에 관한 기본 구상에 들어간다
뒤로 아담한 검암산이 받쳐주고
앞으로는 '은하수銀河水'라고 불리는 검암천이 흐른다
다리를 건너면 바로 현장이 나온다
01. 현장 사진 ( 2015.03.08.)
본 대지는 약 10여년 전쯤에 건축주가 매입해 두었으나
진입 도로가 없는 맹지라서 건축에 어려움을 겪다가
최근에야 옆집의 땅을 폭 3m 쯤, 시세보다 높게 진입로로 매입하여
건축행위가 가능하게 된 땅이다
그러나 문제는 또 있었다
대지 경계측량을 해본 결과,
옆집의 창고가 우리 부지내로 3m 정도를 침범하고 있었다
궁리를 해 보았으나 그 창고를 정리하지 않고는 주택배치가 어려웠다
그래서 나는 건축주에게 제안을 했다
'우리의 부담으로 침범한만큼 창고를 잘라내고
잘라낸 부분은 우리가 벽을 쌓아 마무리 해 주겠다고
옆집과 협상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비용이 좀 들어가는 방법이지만 시기를 놓치면
더 큰 손실을 겪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옆집과 능동적으로 협상한 결과 순조롭게 동의를 받아내게 되었다
전체 일정에도 차질이 생기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서로 자기 주장만 하다가는
시작부터 이웃을 원수로 만들수도 있음을 이해하고 양보의 미덕을 베풀어
흔쾌히 수용해 준 건축주분께 감사드릴 일이다
우리 땅을 침범한 문제의 옆집 슬레이트 창고로
지금은 아래와 같이 정리되었고 주변의 미관향상에도 기여하게 되었다
창원에 사시는 건축주는
두산중공업에서 30년 이상 근무하시고 퇴직을 눈앞에 둔 분이고,
부인은 시장에서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는 성실하고 좋으신 분 들이다.
창원에서의 오랜 아파트생활을 청산하고
고향마을에 주택을 신축하는 건축주의 요구사항은 간단했다
첫째, 튼튼하고 경제적인 주택으로 설계할 것.
둘째, 외벽은 적벽돌로 하고 지붕은 경사지붕에 기와로 설계할 것.
셋째, 다락을 설치하고 LED전등을 채택할 것.
간략하게 기본적인 요구사항만 제시하고,
나머지와 디테일은 설계자에게 많이 위임해 주었다.
이후, 주택의 기본설계를 위한 건축주와의 협의는
매주 주말마다 만나 한달동안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3월말에 부지 레이아웃( lay-out )과 계획설계가 완료되었고
동시에 주택 신축을 위한 건축 인허가도 진행되었다
대지 인근에 문화재('조순 장군 비')가 있어서
문화재 심의('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의 문화재 보존 영향 검토')를 3월말에 받았고,
4월17일에는 함안군청으로부터 건축신고 수리 완료통보도 받았다
4월20일, 착공신고를 행정관청에 완료한 후
마침내 <은하재銀河齋 집짓기>의 첫 삽을 뜨게 되었다
기공식은 생략하기로 건축주와 합의를 보았고
집터 고르기의 시작은 북측 언덕에서 부터 시작되었다
북측의 사라진 옛날 대밭은 2단의 석축으로 조성하여
장독대와 텃밭으로 활용하도록 설계되었다
북측 언덕의 절개지는 콘크리트 옹벽보다는
미관상 훌륭한 돌로 석축을 쌓기로 하였으나 돌로 쌓는 방법에는
수직에 가까운 일자형 쌓기와
점점 뒤로 들여쌓고 돌 틈사이에 꽃을 식재하는 방법이 있다
건축주는 우리 주위에 흔한 들여쌓기 방법을 선호했지만
내가 강력하게 반대하여 수직 일자형 쌓기로 최종 결정하였다
내가 아는한 들여쌓기 방식은 일본의 조경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궁궐과 전통 한옥에서 들여쌓기 방식으로 석단을 쌓은 예는
전국 어디에서도 사례를 찾아볼 수 없고,
일본의 고궁과 연못에서는 지금도 흔하게 볼 수 있다
과거 36년 동안 일제 통치시설의 돌쌓기 방식이
우리의 양식인양 착각을 하고 지금도 주위에서 선호되고 있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우선 보기에는 일본의 방식이 꽃 때문에 이뻐 보이기도 하지만
영주 부석사의 석단처럼 예술의 경지에 까지 이른 우리의 전통방식과는
결코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고 나는 확신한다!
02. 석축 쌓기 -1 ( 2015.04.23.)
03. 석축 쌓기 -2 ( 2015.04.26.)
영주 부석사의 석축(20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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