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공원·뮤지엄호텔, 공간이 곧 예술…정동진 '하슬라'
<아시아 경제> 기사입력 2015.04.14
하슬라아트월드 조각공원
'하슬라아트월드' 12년째 일궈 온 박신정·최옥영 조각가 부부
'하슬라'는 삼국시대 옛 '강릉' 이름
조각공원·뮤지엄호텔·미술관…자연과 예술의 섞임
[강릉 정동진=아시아경제 오진희 기자] 드넓게 펼쳐진 동해 바다. 이곳에도 봄이 왔다.
벚꽃과 개나리, 목련이 복스럽게 피어올랐다. 정동진을 향해 해안도로를 탄 이들의 마음도 절로 설렌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잘 알려진 정동진은 과거 한양의 광화문에서 정동쪽에 있는 나루터라 해 붙은 지명이다.
봄나들이 삼아 새벽녘 서서히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 이들도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에, 놓치기엔 아쉬울만한 대규모 복합문화공간이 있다.
미술과 생태가 어우러진 '하슬라아트월드'(이하 하슬라)다.
'하슬라'는 외국말처럼 들리지만, 실은 삼국시대 강릉의 옛 이름이다. '해밝음'이란 뜻이다.
지난 11일 강원도 강릉시 정동진리에 있는 하슬라를 찾았다.
하슬라는 너른 산과 바다 사이 언덕에 자리잡았다.
3만3000평 조각공원에는 숲과 들판 등 자연 곳곳과 조화를 이루는 조각작품이 즐비하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닮은 조각부터 개구리와 메뚜기, 매미와 같은 곤충을 형상화한 작품,
소똥으로 만든 추상작품까지. 산책로를 따라 걸어 오르며 작품을 발견하는 재미와 함께,
높은 곳에 탁 트인 시야로 들어오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기분이 짜릿하다.
하슬라의 조각공원이 문을 연 지는 12년이 돼 간다.
공원을 지은 지 6년이 지난 2009년엔 도로와 가장 가까운 곳에 호텔이 생겼다.
알록달록한 박스를 쌓아 올린 형태로 현대적인 디자인이다.
내부는 '뮤지엄호텔'로 불리기에 충분할 만큼 다양한 예술작품들로 꾸몄다.
객실의 침대, 욕조, 테이블부터가 작품이며, 레스토랑, 프런트 등 여러 곳에서도 회화와 사진, 조각, 설치 등
예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호텔이 문을 연 이듬해 호텔 내부에 미술관이 들어섰다.
하슬라는 공원과 호텔, 미술관 외에도 노천카페, 생태학습장, 하우스웨딩홀, 예술가들의 레지던스 작업장이 있다.
지난해부턴 산야초 농장도 가동되고 있으며, 올해 별도로 '바이오미술관'이 개관할 예정이다.
많은 공간들이 천장부터 바닥까지 전면 유리창을 벽으로 삼아 동해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짧지 않은 기간동안 하슬라가 조성되고,
정동진의 명소로 알려진 데에는 조각가 부부의 꿈과 열정이 있었다.
박신정 대표(여ㆍ54)와 최옥영 관장(56, 강릉원주대 미술학과 교수)이 그 주인공이다.
남편이 공간의 디자인과 작품을 기획했다면, 아내는 공간 경영과 운영을 맡아왔다.
박 대표는 "둘 다 미술을 전공했고, 미술이 경제력을 지니면서도 많은 이들이 공유할 수 있도록
현실화하는 방법들이 무엇인지 고민했다.
돈벌이만 생각했으면 이 같은 결과가 나오긴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바로 '공간'이다. 공간 자체가 또 하나의 미적 체험이 가능한 예술작품으로
만들고자 했다"며 "그 안에 전시된, 우리가 수집하거나 만든 작품들은 비싼 작품이 아닐수 있지만
수준급이라 자부한다"고 했다.
호텔 1층에 있는 하슬라 미술관은 현대미술과 마리오네트로 주제가 나뉜다.
현대미술 쪽에서는 모두 네 가지 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12간지 동물그림 안에 전통문양을 다채롭게 변용시켜 화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한승민 작가(40)의 '십이지 스타 시리즈'가 전시됐다.
한 작가는 "수평적인 디스플레이가 아닌 하늘로 뚫고 올라가는 수직 디스플레이가 되는 것을 보고
파격의 신선함을 경험했다"며 "하슬라는 공간에 대한 파격과 예술의 일탈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에너지 발전소"라고 했다. 한켠에선 최옥영 관장의 개인전도 열리는 중이다.
자궁을 모티브로 해 엄마가 아이를 품고 있는 모습을 동그라미 형상으로 조각해
'우주'라는 이름을 붙인 작품은 호텔 침실로도 쓰인다.
화살표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면 신진작가들의 개성 넘치는 '청춘열' 전시를 만난다.
"수다 많고, 뒤뚱뒤뚱 거리며, 고집불통에다 뚱한 도널드덕이 나와 닮은 것 같다"는
하행은 작가(여ㆍ31)는 도널드 덕의 얼굴을 불상에 접목시킨 자유분방한 작품을 내놨다.
어둠 속 네온사인이 빛나는 터널을 잠시 통과해 걸어 나오다 보면 어느새 반대편 건물로 이동해 있다.
또 다른 기획전이 시작되는 입구다. 팝아티스트들의 콘서트 형식으로 회화장르와 설치가 비치된
'팝콘'전에선 바이올린과 기타를 활용해 세련되게 만든 정혜경 작가(여ㆍ38)의 오토바이 작품,
형광색 빛의 현란한 색감과 재밌는 형태가 뒤섞인 김동현 작가(41)의 그림을 마주한다.
이곳을 지나면 피노키오ㆍ마리오네트 미술관에 닿는다.
박신정 대표와 최옥영 관장이 수십년 동안 모아온 인형들을 전시한 공간이다.
조각을 해왔던 이들이라, 조각인형이지만 생명이 부여된 피노키오에 이끌렸고,
여행지 마다 이와 관련한 작품들을 수집해 왔다.
국내외 예술가들이 이곳을 찾아 레지던스 작업을 통해 만들어 놓고 간 작품들도 눈길을 끈다.
야외에 세워진 거대 철조 코끼리, 레스토랑에 걸려 동양적 아우라를 발산하는 대형 동물 그림 등이다.
조각공원 가까운 곳에 짓는 바이오미술관은 최옥영 관장이 각별하게 신경을 쓰는 공간이다.
최 관장은 "4~5개월 동안 나무를 뽑아내지 않은 땅에 구조물을 올렸다.
투명한 플라스틱 특수재질로 감싸 햇빛이 통과한다.
이 속에 지그재그 층층 계단을 올려 관람객이 걸을 때마다
사방에서 야생초와 식물,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정동진=오진희 기자 valer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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