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군도>에서 <명량>까지
- 민란의 원성, 회오리바다에서 울부짖다 -
지난 7월 26(토)에 영화 <군도>를 관람하고, 30일에는 <명량>을 보았다.
<군도>는 원래 관람계획에 없었는데, 이번 여름 극장가를 강타하고 있는
국산영화 빅4(군도, 명량, 해적, 해무) 중에서 제일 먼저 개봉한 관계로
<명량>과 서로 비교해서 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마음을 바꿨다.
물론, <범죄와의 전쟁>을 만든 윤종빈 감독에 대한 희망과
충무로의 대세남 하정우의 변신을 은근히 기대하며
극장을 찾은 것도 사실이다.
<군도>는 개봉 첫날 관객동원 50만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며
쾌조의 스타트를 보였지만 뒷심이 부족할 것으로 보인다.
극장가의 여름대목이라는 특수와 민머리로 열연한 하정우,
그리고 우리 딸이 좋아하는 강동원 등, 화려한 캐스팅을 통한
‘영화의 외부적 요인’들에 의해 초반 강세를 보였지만,
‘영화 완성도의 부족’ (내 개인적인 생각) 이라는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향후 관객몰이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많아 보인다.
( 이하 사진출처 : 공식 홈페이지)
<범죄와의 전쟁>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훌륭하게 요리하였던 윤종빈 감독이
가벼운 액션 오락영화를 표방하고 이번 여름 극장가에 선보인 작품이 <군도>이다.
그러나 그 가벼움이 지나쳐서 영화의 구성과 일관성이 흔들리고,
주제의식도 많이 퇴색된 것으로 느껴진다.
감독은 무거운 주제에서 벗어나 그저 통쾌하게 웃고 즐기는 ‘의적 홍길동’과 같은
가벼운 가족용 오락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었다.
감독의 의도처럼 <군도>는 전반적으로 오락영화의 재미와
화려한 볼거리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그러나 영화의 부제로 <민란의 시대>로 설정해 놓고,
결코 가볍게 다루어서는 안 되는 ‘민초들의 피눈물’인 민란을 건드려만 놓고
진지한 성찰 없이 어물쩍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아울러 ‘나쁜 남자’가 득세하는 요즘 세태처럼, 만인의 적인 ‘악의 화신’을 오히려
현란하고 폼 나게 지나치게 미화한 감도 적지 않다.
물론, 영화는 감독의 예술이다.
감독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가벼운 영화를 의도했다.
그러나 지나친 가벼움이 관객들에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음을
곰곰히 생각하며 극장을 나섰다.
<명량>은 국회의원 재보궐 선거가 치러지던 7월 30일 개봉했다.
2011년, <최종 병기 활>로 750만을 동원했던 김한민 감독의 작품이다.
<최종 병기 활>은 한때 표절시비로 논란이 되기도 했었는데
김한민 감독이 차기작으로 승부수를 띄운 것이 바로 <명량>이다.
나는 이순신 장군에 관한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그 감독이 무척 궁금했었다. 보통 뱃장으로는 접근조차 어려운
높은 산과 같은 경외심과 중압감 때문에 최근 3-40년 동안에는 전혀 영화화 되지 못한
‘뜨거운 감자’와 같은 소재가 이순신 장군이다.
보통 영화보다 두 세배 더 들어가는 막대한 제작비 또한 한몫을 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황금기였던 1970년대에는 장군에 대한 영화가
국가의 정책적인 지원에 힘입어 수도 없이 만들어졌었다.
학생들 단체관람의 단골메뉴가 되었고,
한때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라는 장군의 유언이
유행어가 된 적도 있지만 상식적인 수준의 진부하고
천편일률적인 내용의 영화들이 게속 쏟아지자 관객들의 외면을 받게 되었고
아주 오랫동안 제작이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2001년에 장군의 <난중일기>를 기초로 한
김훈 작가의 <칼의 노래>라는 소설이 나오면서 임진왜란에 대한 새로운 해석과
장군의 인간적인 면모와 고뇌 등이 심도 있게 재조명되어
장군의 진면목이 새롭게 정립되는 전환점을 맞았다.
나는 누군가가 <칼의 노래>를 영화로 만들어 주기를 학수고대 했지만
10년이 지나도 용기 있는 감독은 나타나지 않았었다.
마침내 2011년, <최종 병기 활>의 성공으로 날개를 단 김한민 감독이
어릴 때부터 역사의 현장에서 듣고 자란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올리는 중책을 자임하고 나섰다.
<명량>은 장군이 임진왜란 중에 거두었던 28전 28승의 눈부신 전공 중에서
가장 힘들고 가장 드라마틱했던 명량해전의 신화와 같은 전투를
스크린으로 옮긴 작품이다.
전함 12척과 330척의 게임이 될 수 없는 절대적인 전력의 열세와
전의마저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 군사들을 이끌고
장군은 원혼들의 곡소리마저 높은
명량의 거친 회오리바다로 죽음을 각오하고 나선다.
그 누구도 우리의 승리를 예상하지 아니했던,
아니 어쩌면 장군마저도 명예롭게 죽을 곳을 명량으로 선택했을지도 모를 전투에서
장군은 초인적인 용기와 신념으로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승리를 이끌어낸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보다 더 불리했던 중과부적의 전투에서 승리를 일궈낸 기적은
세계 전쟁사에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몇 년 전에 개봉되었던 외화 <300>에서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테르모필레 협곡 전투에서 페르시아의 대군을 맞이하여 항복 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선택하고 300명 모두 장렬히 전사하여 스파르타 전사들의 용맹을
전세계에 떨쳤지만 전투를 승리로 이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장군은 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불굴의 용기와 탁월한 전술로
바람 앞의 등불 같았던 조국을 위기에서 구해내어 전설이 되었다.
영화 <명량>은 시작부터 아주 긴박하고 박진감 있게
관객들을 전운이 감도는 명량의 회오리바다로 끌고 들어가서 마지막에는 아주 처절하고도
장엄한 해상 전투 장면을 1시간정도 보여준다.
영화의 몰입도와 완성도가 뛰어나고 구성 또한 탄탄하다.
우리나라 영화 관객동원 신기록을 가지고 있는 <도둑들>보다 더 몰입해서 스크린을 지켜봤고
결과를 뻔히 알고 있는 전투이지만 감동적이었다. 물론 약간의 과장과
애교 같은 ‘옥의 티’도 보이지만 충분히 눈 감아 줄만했다.
그런데 인터넷으로 관객들의 반응을 체크해 보았더니
“영화의 전반부는 좀 시시하지만 후반부의 해상전투는 재미있고 훌륭했다!”라는
댓글들이 의외로 많이 나왔다.
그러나 나의 견해는 정반대이다.
오히려 1시간이나 넘게 반복되는 해상전투 장면을 조금 줄이고
전투와 생사를 눈앞에 둔, 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본성탐구와
명량해전의 전략을 설명하고 체계화 시키는 과정에
좀 더 시간을 배려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개인적으로는 남았었다.
아무리 전투가 뛰어나고 완벽했다 하더라도 그 전쟁의 원인과 목적
그리고 장수와 병사들의 이야기를 생략하고 전투의 규모와 결과만 이야기하는 것은
전쟁의 본질을 간과할 우려가 높다.
이미 두려움과 패배감에 젖은 병사와 백성들은 모두가 명량해전을 반대했고
심지어 궁궐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간 선조임금마저도 바다를 포기하고 육군을 도와주라고
얘기할 정도로 장군의 외로움과 상실감이 극에 달한 참담한 현실과 심정을
우리가 조금이라도 이해해드리는 것이 최소한의 예의가 될 것이다.
뛰어난 용기로 <명량>을 영화화하기로 결심한 감독이
첫 번째로 고민한 것은 장군역을 어느 배우에게 맡길 지하는 결정이었을 것이다.
최민식은 자타가 공인하는 최고의 성격배우이다.
평소에 너무 개성이 강한 배역을 많이 맡다보니 약간의 우려가 없진 않았으나
역시 최고의 배우답게 깊이 있고 절제된
내면의 연기를 보여주었다.
그러나 해적 출신 구루지마는 인물연구가 좀 미흡했고
따라서 배역을 맡은 주연급 배우 유승룡도 존재감이나 진정한 카리스마가 부족했고
그리고 현실감 없는 장군과의 맞짱은
영화의 ‘옥의 티’가 될 수도 있었다.
영화 <명량>은 전세계 역사가 기록한
가장 위대한 전쟁으로 손꼽히는 명량대첩을 소재로 한 최초의 작품으로,
전라도 광양에 초대형 해전 세트를 제작하고
실제 바다 위에서의 촬영을 감행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통해
기존 한국 영화에서 볼 수 없었던 깊이 있는 시나리오와
헐리우드와 맞먹는 차별화된 전쟁 액션으로 무더위에 지친 관객들에게
소나기와 같은 청량감을 선사하였다.
이는 용기 있고 진지한 감독과 제작사와 투자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그들로 인해서 한국영화가 한 단계 성숙을 이루었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한국영화도 세계수준으로 성장을 꾸준히 해 왔으나 유독 사극영화,
그중에서도 위인 전기영화는 아직도 구태를 못 벗어난 감이 있었는데,
<명량>을 계기로 우리나라 위인들의 진면목이 세계에 소개되어
‘한류화 바람’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정리하면, 예상관객수 1,000만은 당연한 일이고,
최종적으로 1,400만을 돌파하여 신기록까지 갱신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감히 예측해본다.
“나는 세상의 모멸과 치욕을 살아있는 몸으로 감당해 내면서
이 알 수 없는 무의미와 끝까지 싸우는 한 사내의 운명에 관하여 말하고 싶었다.
희망을 말하지 않고 희망을 세우지 않고 희망에 기대지 않고
희망 없는 세계를 희망 없이 돌파하는 그 사내의 슬픔과 고난 속에서
경험되지 않은 새로운 희망의 싹이 돋아나기를 나는 바랐다“
소설 <칼의 노래> 책표지에 실린 작가의 글이다.
2001년 <칼의 노래>로 김훈 작가는 동인문학상을 수상하며
“한국문단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나도 김한민 감독께 “한국영화계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는
축하를 보내드리고 싶다.
다음 주부터 휴가이다.
<칼의 노래>를 10년 만에 다시 꺼내 읽어 볼 참이다.
2014. 08.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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