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하 사진 출처 : <DAUM 영화>)
김훈의 역사소설 <남한산성>이
황동혁 감독에 의해 스크린 상의 수묵화로 옮겨졌다
몇 해 전에 김훈의 <남한산성>을 무덤덤하게 읽은 적이 있는데
올해 초에 딸에게 책을 넘겨주면서
“조금 지루하고 큰 재미는 없지만 스타작가의 책이니 역사공부는 될 거야......”라는
말을 덧 붙였다
그렇게 느꼈었다. 100쇄를 찍어낸 베스트셀러이지만
대중적인 흥미를 추구하는 드라마틱한 스토리나 구성은 없고
완독하기에는 인내심이 좀 필요한 딱딱하고 무거운 역사소설처럼 느껴졌었기 때문에
강추하지는 못했었다
그래서 그 <남한산성>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은 상당히 의외였었고
그 모험심 강한 감독은 누군지?
그리고 <남한산성>이 어떤 모습으로 스크린에서 재탄생할지?
상당한 호기심으로 나는 지난 여름동안 기다렸다
소설 <남한산성>은 청나라와 명나라 사이에서 중립적인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이 폐위된 후 일어난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다.
반정으로 왕으로 추대된 인조가 청나라 군대에게 쫓겨 남한산성에 고립되어서
척화파와 주화파의 대립 속에서 번민하던 암담하고도 치욕적인
47일간의 적나라한 기록이다.
“1636년 인조 14년 병자호란.
청의 대군이 공격해오자 임금과 조정은 적을 피해 남한산성으로 숨어든다.
추위와 굶주림, 절대적인 군사적 열세 속 청군에 완전히 포위된 상황,
대신들의 의견 또한 첨예하게 맞선다.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조판서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치욕스런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예조판서 ‘김상헌’(김윤석).
그 사이에서 ‘인조’(박해일)의 번민은 깊어지고,
청의 무리한 요구와 압박은 더욱 거세지는데...
나아갈 곳도 물러설 곳도 없는 고립무원의 남한산성
나라의 운명이 그곳에 갇혔다!“
(글자료 : 다음영화)
병자호란은 철저히 패배한 전쟁이고 ‘삼전도의 굴욕’을 안겨준
치욕적인 우리의 역사이다.
그래서 모두가 그냥 묻어두고 잊혀지기만 바랬던 우리의 아픈 상처를
김훈 작가가 아무런 미화 없이 들추어내었고, 황동혁 감독이 생생하게 스크린으로 옮긴
동명의 작품이 영화 <남한산성>이다
일반적으로 소설은 예술성으로 승부할 수도 있지만
막대한 제작비(115억)가 들어가는 영화는 재미와 오락이라는 흥행성과 대중성이 없으면
극장에까지 올라가기가 쉽지 않다
3년 전에 김훈의 또 다른 역사소설 <칼의 노래>가
김한민 감독에 의해 <명량>으로 영화화 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은 어려움 속에서도 결국 승리한 전쟁이었고
이순신 장군이라는 걸출한 영웅이 있었기에 극적이고 드라마틱한 요소와
높은 인지도로 인해서 수차례 영화화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영화 <남한산성>은 경우가 좀 다르다.
무겁고도 답답한 주제와 카타르시스적인 결말도 없는 오락성이 결여된
다큐멘터리 같은 무채색의 소설이다
그런 불리한 여건 속에도 황동혁 감독은
정통사극으로 용기 있게 정면돌파하여 영화 <남한산성>을
극장가의 최대 대목인 추석에 올렸다.
고립무원의 칙칙한 눈 덮인 산성.
살을 에는 무서운 추위와 매섭고 처량한 바람소리.
척화파와 주화파의 불꽃 튀기는 끝없는 논쟁.
그 와중에서도 당리당략과 자신의 안위만 챙기는 탐관오리들.
그리고 언제나 희생당하는 피폐한 민초들의 삶.
그래도 빼앗긴 들에 얼음이 녹기 시작하고 다시 피는 민들레......
영화 <남한산성>은 정통사극이다
근래에 유행하는 국적이 모호하고 상상력이 지나친 퓨전사극과는 궤를 달리 한다.
요즘 극장가의 대세인 신비한 환타지적 소재와 화려한 3D 영상에 익숙한 우리들에게
<남한산성>은 꾸밈없는 정통사극으로 정면승부를 걸어온다.
그 정통사극은 현장감 있는 리얼리티와 함께 객관적이고 진솔한 진정성으로
서서히 관객들을 삭풍이 몰아치는 고립된 산성 한가운데로 내몰고
마침내 관객들도 함께 고뇌하게 만들기 시작한다.
적군에게 포위된 눈보라 날리는 회색빛의 암울한 남한산성.
사방이 얼어붙은 추위 속에서도 김윤석(김상헌)과 이병헌(최명길)의 연기대결은
불을 뿜는다.
화면은 전반적으로 어둡지만 주인공들의 수염 한 올까지도 보일 정도로
화질은 선명하고 음향도 이병헌(최명길)의 눈물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세심하고 훌륭하다
그러나 음악은 아카테미 음악상을 받은 거장(사카모토 류이치)에게 맡겼다고 하지만
전반적으로 존재감이 미미하게 느껴졌다
대규모의 스펙타클한 전쟁 씬은 없지만 사실적이고 고증에 충실한
소규모의 전투 씬이 오히려 실감나고 편했다.
결말부분의 엔딩에서 살짝 늘어져서
영화의 몰입도와 긴장감이 약간 느슨해진 감은 있지만
오락성과 흥행성이 부족한 스토리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알차고 탄탄하게 완성한 황동혁 감독의 연출의 탁월함과
작가적인 소명정신은 칭찬받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리고 정통사극의 신선한 매력과 가능성을 확인시켜준
‘정통사극 영화의 이정표가 될 만한 수작’이었다고 박수를 보내주고 싶다.
더불어, 영화 <남한산성>은 재미와 흥미 위주로 영화를 선택하는 관객들에게는
좀 어필이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천만관객 돌파는 가능한 쪽에
나는 한 표를 던진다.
영화 <남한산성>이 추석연휴에 개봉된 이후
여기저기 반응이 뜨겁다.
일반 관객들은 호불호가 양분되는 양상이고
소설가등 문화계 종사자들은 칭찬 일색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치권에서도 한마디씩 거들기 시작했다.
오늘날 우리가 당면한 주변 환경이 병자년의 국제 정세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그 책임소재와 해법에 대해서는
당리당략적이고 아전인수 격의 논평들이 쏟아져 나왔다.
요즘 정치가들의 말을 귀담아 듣는 사람은 별로 없겠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예리한 지적을 하나 발견했다.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서운 것은 내부의 적이다!”
영화 <남한산성>은 순간의 치욕을 견디고
나라와 백성을 지켜야 한다는 최명길(이병헌)과 청의 공격에 끝까지 맞서 싸워
대의를 지켜야 한다는 김상헌(김윤석)이 시종일관 첨예하게 대립하지만
결론은 없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관객들은 둘 중 누가 옳은 지를 선택해야하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은 같으나
이를 지키고자 했던 방법론적인 신념만 달랐다면
둘 다 옳다고 말해도 틀린 판단은 아니지 싶다.
모두다 국가의 장래를 위한 진정성 있는 충정이었다면
국가의 백년대계라는 긴 안목으로 보면
그 선택의 결과물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문제는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을 겪고도 정신 차리지 못한 위정자들과
국가의 장래보다 자신의 안위나 정치집단의 이익을 더 우선시하는
영화 속의 영의정 같은 ‘내부의 적’이
청나라보다 북한의 핵보다 더 위험하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국가의 공권력과 군대를 동원하여 상대를 음해하는 ‘댓글작업’을 시키고
최순실에게 나라를 맡기는 ‘내부의 적’이
오늘날 21세기에도 엄연히 위정자로 활동한다는 것이고
또 반성 없는 역사는 계속 반복 된다는 것이다.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대화이다”(E.H.카아)
좋은 영화 한 편으로 역사와 책임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
달 밝은 한가위의 깊은 밤이다.
2017. 10. 06.
2014년 영화 <명량>관람후기 ▶ http://blog.daum.net/arky7/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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