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영주 부석사 -3 ( 2013. 06.)

 

 

 

     부석사 [浮石寺] | 브리태니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삼국사기〉·〈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대사신라 문무왕의 뜻을 받들어 676년에 창건하고

 화엄종을 널리 전했다고 한다. 〈송고승전 宋高僧傳〉 의상전(義湘傳)에는 의상과 선묘,

부석사 창건에 관한 설화가 자세히 적혀 있다.

고려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또는 흥교사(興敎寺)라 불렀는데 선달이란 선돌의 음역으로

부석의 향음(鄕音)으로 보기도 한다. 의상을 부석존자(浮石尊者)라 하고 그가 창시한 화엄종을

부석종(浮石宗)이라 하는 것은 이 절의 명칭에서 유래된 것이다.

 

의상 이후 혜철(惠哲)을 비롯하여 신라 무열왕의 8대손인 무염(無染)과 징효(澄曉) 등

많은 고승들이 배출되었다. 만년에 이곳에 머문 원융(圓融)은 대장경을 인쇄했는데

지금 부석사에 전하고 있는 화엄경판은 이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1372년(공민왕 21) 원응(圓應)국사가 주지로 임명되어 가람을 크게 중창했다.

 

경내에는 고려시대의 무량수전(국보 제18호)과 조사당(국보 제19호)을 비롯하여

원각전·응진전·안양루·선묘각·범종루·자인당 등 조선시대의 건물들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조사당벽화(국보 제46호)·

3층석탑(보물 제249호)·당간지주(보물 제255호)·고려판각(보물 제735호)·

원융국사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27호) 등이 있다.

이밖에도 이 절의 창건설화와 관련있는 석룡(石龍)·대석단(大石壇)·선묘정(善妙井)·

녹유전(綠釉塼)·선비화(禪扉花) 등이 전해지고 있다.

 

 

 

 

 

 

 

 

 

 

 

 

 

 

 

 

 

 

 

 

 

 

 

 

 

 

 

 

 

 

 

 

 

 

 

 

 

 

 

 

 

 

 

 

 

 

 

 

 

 

 

 

 

 

 

 

 

 

 

 

 

 

 

 

 

 

 

 

 

 

 

 

 

 

 

 

 

 

 

 

 

 

 

 

 

 

 

 

 

 

 

 

 

 

 

 

 

 

 

 

 

 

 

 

 

 

 

 

 

 

 

 

 

 

 

 

 

 

 

 

 

 

 

 

 

 

 

 

 

 

 

 

 

 

 

 

 

 

 

 

 

 

무량수전앞 석등(국보 제17호)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부처의 광명을 상징한다 하여 광명등(光明燈)이라고도 하며, 대개 대웅전이나 탑과 같은

중요한 건축물 앞에 세워진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올린 후 꼭대기에 머리장식을 얹어 마무리한다.

4각 바닥돌은 옆면에 무늬를 새겨 꾸몄으며, 그 위의 아래받침돌은 큼직한 연꽃 조각을 얹어

가운데기둥을 받치고 있다. 전형적인 8각 기둥형태인 이 기둥은 굵기나 높이에서

아름다운 비례를 보이는데, 위로는 연꽃무늬를 조각해 놓은 윗받침돌을 얹어놓았다.

8각의 화사석은 불빛이 퍼져 나오도록 4개의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세련된 모습의

보살상을 새겨놓았다. 지붕돌도 역시 8각인데, 모서리 끝이 가볍게 들려있어 경쾌해 보인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을 얹었던 받침돌만이 남아있다.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아름다운 석등으로, 비례의 조화가 아름답고, 화려하면서도

단아한 멋을 지니고 있다. 특히, 화사석 4면에 새겨진 보살상 조각의 정교함은 이 석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하 글 : 문화재청)

 


 

 

 

 

 

 

 

 

 

 

 

 

 

 

 

 

 

 

 

 

 

 

 

 

 

 

 

 

 

 

 

 

 

 

 

 

 

 

 

 

 

 

 

 

 

 

 

 

 

 

 

 

 

 

 

 

 

 

 

 

 

 

 

 

 

 

소조불좌상(국보 제45호)

 

 

부석사 무량수전에 모시고 있는 소조불상으로 높이 2.78m이다.

소조불상이란 나무로 골격을 만들고 진흙을 붙여가면서 만드는 것인데,

이 불상은 우리나라 소조불상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된 작품으로 가치가 매우 크다.

얼굴은 풍만한 편이며, 두꺼운 입술과 날카로운 코 등에서 근엄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옷은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에만 걸쳐 입고 있는데, 평행한 옷주름을 촘촘하게

표현하고 있다. 무릎 아래까지 이어지고 있는 이런 형태의 옷주름은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 제63호)에서도 보이는 것으로

이 작품이 고려 초기 불상들과 같은 계열임을 알 수 있다.

손모양은 석가모니불이 흔히 취하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으로,

무릎 위에 올린 오른손의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다.

하지만 불상을 모신 장소가 서방 극락정토를 다스리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라는 사실과,

부석사에 있는 원융국사탑비 비문에 아미타불을 만들어 모셨다는 기록이 있는 점으로 보아

이 불상은 아미타불임이 확실하다.

지금의 손모양은 조선시대에 불상의 파손된 부분을 고치면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光背)는 불상의 뒤편에 나무로 따로 만들어 놓았는데,

가장자리에 불꽃이 타오르는 모양을 표현하였다. 머리광배와 몸광배는 원형으로 표현하고

그 안에는 화려한 꽃무늬를 장식하였으며, 작은 부처를 달았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온화함이 사라진 근엄한 표정과 평행의 옷주름 등에서 형식화된 모습이 보이지만

고려시대 불상으로서는 상당히 정교한 솜씨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며,

특히 소조불상이란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양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점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