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을 숲 이야기] 남원 운봉 행정, 삼산 마을숲과 운봉고원
이상훈 전주고등학교 교사
▲ 운봉읍 행정마을 서어나무숲
운봉고원은 해발 500m에 이르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고원입니다. 신라시대에는
모산현(母山縣)이라 불렸습니다. 지명연구가인 임공빈 선생님에 의하면 운봉은
‘엄골’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엄’은 엄지손가락 엄과 같이 ‘높다’, ‘크다’의 의미로
마치 우리지역의 모악산과 같은 의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엄골을 큰마을, 으뜸마을로 행정의 중심마을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운봉지역 가야문화에 탁월한 식견을 가지고 계신 곽장근(군산대 사학과)교수는
운봉고원에서 발굴된 가야계 유적에 깊은 관심을 갖고, 출토된 유물 즉 천계호(天鷄壺)와
철제자루솥에 주목하여 이 지역을 기반으로 가야계 소국으로 발전했던 토착세력 집단을
운봉가야라 칭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는 운봉고원 지역이 철이 개발되고,
교통의 중심지라는 사실에서도 이를 뒷받침 해주고 있습니다.
이런 운봉고원에 아름다운 마을숲이 몇 군데 자리 잡고 있습니다. 주천 육모정 넘어
지리산을 끼고 운봉 마을숲을 찾아 가게 되었습니다.
지리산은 환상적인 수채화를 그리며 자연이 만드는 봄의 향연을 느끼게 해주었고,
봄비는 운봉고원 농사철에 맞게 내리는 듯 했습니다.
우리나라 남단에서 제일 먼저 모내기가 시작되는 곳이니까요.
오래전에 답사한 마을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고촌마을, 노치마을 가장마을 등…. 오늘은 도로를 두고 이웃한 행정마을 서어나무숲과
삼산마을에 소나무숲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행정리는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지역으로 은행몰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엄계리 일부가 병합되어 행정리가 되었습니다.
마을이 형성된 때는 1769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처음 풍안 유씨가 정착하여 살다가
모두 준향리로 옮겨가고 그 뒤 창녕 조씨(昌寧曺氏)들이 이곳을 개척하였다고 합니다.
이어 김씨, 최씨, 정씨가 차례로 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씨들이 새로 들어와 정착할 무렵 이곳 일대에는 은행나무가 숲을 이루어 풍치가 아름다워
사람들은 이곳을 은행마을, 은행몰이라고 이름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이를 한문으로 표기하여 은행리(銀杏里)가 되었는데 이를 줄여 행정(杏亭)으로 고쳐서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행정마을 입구에는 행림정(杏林亭)이란 모정이 있고, 지리산을 향하여 옹기종기 30여 가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마을 뒤편에 마을숲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서어나무로 약 500 평 정도 규모입니다. 마을숲은 마을소유로 보존되고 있으며 마을 어른들은
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합니다. 실제 이곳은 지리산 계곡에서 내려오는 두 물줄기,
즉 공안천과 남천이 합류하는 지점으로 침수방지와 마을 북동쪽을 막아주는 방풍림 역할을
하기 위하여 마을 조성과 함께 심어졌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또한 마을에서 전해오는 이야기는 마을에 역병이 돌아 재앙을 막기 위하여 조성하였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이런 이야기는 마을숲을 잘 보존하기 위한 신성성의 표현이라고 생각됩니다.
지리산 주변마을로 근현대사의 혼란기 속에서도 온전히 보존된 행정마을 마을숲은
2000년 처음으로 실시된 '아름다운 마을숲 전국대회'에서 마을숲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이런 서어나무는 영농법인 행정마을의 상표이기도 합니다.
‘아름다운 서어나무숲과 지리산을 벗 삼은 행정 서어숲’ 조상님들은 후손에게 소중한 유산을
남겨준 셈이죠. 여름이 무르익을 무렵 행정마을 마을숲에 오시면 원시림 같은 위용을 느낄 수 있는
서어나무숲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서어나무 숲에서 / 복효근
서어나무 숲에 왔다
전라북도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환경부와 유한 킴벌리가 ‘아름다운 마을 숲 상’을 주었다고 하나
숲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상을 주지 않았어도 그럴 것이다
나무들은 그냥 서 있다
그냥 서어나무다
들으니 이 놈들은 목질이 약해서 부러지거나 다친 곳이 쉬 썩는단다
썩은 자리에 매미나 벌레의 유충이 살아서
딱따구리나 크낙새 등속이 서어나무숲에 산단다
낯선 사내가 들어서자 은유처럼
숲은 제 상처에서 새를 날려보낸다
나무들은 하늘 혹은 그 너머와 무슨 내통이나 하듯
긴 긴 안테나를 뽑아올리고 있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표정이다
그러니 짐승처럼 상처를 안고서도
누구든 이 숲에 들어서서는 서어 있어야 한다
휴대폰이 울린다
받지 않는다 부재중 001통화가 찍힌다
숲이 커다란 무덤 같다
현실現實이 현실玄室이 되어
나는 시방 부재중이다
누가 상을 주어서도 술 한 잔 주어서도 아니다
잠시 서있을 뿐으로 나는 숲의 일부이어서 서어나무이어서
내 안 어디에선가 새 나는 소리 들린다
피안이 목마르게 그립지 않다
부재중인 나를 영영 찾고 싶지도 않다
숲을 나서는 내가 새 것이겠다
▲ 삼산마을 소나무숲
도로를 경계로 이웃한 삼산마을은 소나무숲으로 행정마을 개서어나무숲에 그 위용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삼산(三山)마을은 본래 운봉의 남면(南面) 삼산이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산덕리, 교촌리와 군내면의 동천리 일부와 병합되어 삼산리에 편입되었다고 합니다.
고려말 양씨, 김씨, 이씨 등이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합니다.
소나무 숲의 연륜으로 보아 운봉일대 마을에서 오래된 마을 중 하나일 것으로 생각됩니다.
삼산이란 이름은 마을동쪽에 삼태산이 운봉향교의 안산인데 여기에 세 개의 작은 봉우리가 있어
삼산으로 불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삼산마을 입구에는 소나무에서 딴 송운정(松雲亭)이란 모정이 있습니다.
삼산마을 소나무숲은 2000여 평 규모입니다. 윗숲과 아랫숲으로 나누게 되는데,
윗숲은 삼태산 청룡맥을 이어주면서 공안천에 인접하여 제방림 역할을 해주고 있습니다.
상당히 널따란 숲에 아름드리 소나무 고목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70년대에 남원시로 그 소유가 이전되었다고 마을 분들은 아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랫숲은 마을소유로 마을 입구에서부터 마을 정면으로 일자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마을 앞으로 도로가 개설되어서 그렇지 어느 부분에서는 도로 부분까지 소나무 숲이 조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삼산마을 소나무숲은 한때 솔잎혹파리로 인하여 상당수의 나무가 죽었으며 지금도 원인 모르게
한두 그루씩 죽어가고 있습니다. 언제가 우리나라도 온난화로 인하여 소나무를 볼 수 없다고 하던데,
큰일입니다. 그나마 운봉고원이기 때문에 소나무가 보존될 수 있는 여건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2002년에 ‘환경부 자연 생태 우수마을’로 지정되었고, 현재는 삼산마을 소나무숲 복원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중입니다.
삼산마을 윗숲에 할아버지 당산, 아랫숲에 할머니 당산이 있어 당산제를 모셨는데,
당산나무가 60년대에 죽으면서 당산제가 없어졌다고 합니다. 당산제의 폐지는 실제 마을의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런데 마을숲 복원 작업을 하면서 당산제를 복원한다고 합니다. 당연히 마을숲 복원 작업은
단순히 몇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이 아니라 마을숲 문화를 복원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당산제의 복원은 자연스럽게 마을숲을 보존하는 데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최근에 다녀간 산림과학원장은 마을숲 복원은 다른 곳에서 나무를 옮겨다 심는 것이 아니라
후계목을 키워서 같은 종으로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복원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다고 합니다.
매우 바람직한 의견이지요. 이 기회에 산림과학원에서는 장기적인 마을숲 복원 매뉴얼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작업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실제 현재 행해지고 있는 마을숲 복원작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요구하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삼산마을 소나무숲은 여전히 신앙성과 신성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소나무숲이 있어 침수도 예방했고 마을사람들이 수백 년 동안 편안한 삶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언젠가 당산나무가 죽자 그 나무를 베어다가 땔감으로 사용한 사람이 정신병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유산을 함부로 하지 말라는 경고이면서 당산제 복원을 기다리는
암시로 생각됩니다.
당산제가 복원되어 매년 대동의 축제가 펼쳐지는 삼산마을, 운봉고원의 청정한 마을로 남을
삼산마을을 찾으면 언제나 생기 넘치는 소나무숲을 만나 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전주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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