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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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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 4 (2022.04.02.) 안동 하회마을 [ 정의 ] 13세기 고려 말 전서 류종혜柳從惠가 이곳에 자리를 잡은 이후 풍산류씨豊山柳氏들이 지금까지 살아온 씨족마을. [ 개관 ]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류씨豊山柳氏 집성촌으로, 13세기 고려 말 전서 류종혜가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시작되었다. 하회마을에 터를 잡기 전, 마을에는 허씨와 안씨 일가가 살았다. 하회마을은 화산 기슭이 아닌 끝자락이 서쪽 화천(낙동강)으로 흐르는 지맥 위에 화천이 마을의 삼면을 감싸 흐르는 곳에 터를 잡았다. 풍산류씨의 하회마을이 번창하게 된 시기는 류종혜의 5세손인 입암立巖 류중영柳仲郢(1515~1573)과 입암의 두 아들 겸암謙唵 류운룡柳雲龍(1539~1601),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542~1607) 때부터이다. 마을이 들어설 자리는 당시 울창한 숲이었..
안동 하회마을 원지정사 - 2 (2022.04.02.) 안동 하회마을 원지정사 (河回마을 遠志精舍)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유씨의 동족마을로 빼어난 자연경관과 민속·유교 전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조선시대 양반촌이다 원지정사는 서애 유성룡 선생(1542∼1607)이 아버님이 돌아가시자 고향으로 돌아와 지은 것으로, 자신이 병이 났을 때 요양하던 곳이기도 하다 조선 선조 6년(1573)에 지었다고 하며 북촌의 북쪽에 강을 향해 정사와 누정이 자리잡고 있다. 정사는 앞면 3칸·옆면 1칸 반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왼쪽 끝칸에 대청을 두고 나머지 2칸은 온돌방을 두었다 앞쪽으로는 반칸짜리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누정인 ‘연좌루’는 앞면·옆면 2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누..
경주남산 열암곡마애불상 (2021.02.27.)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 경주시가 엎드린 채 발견된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에 대해 2020년까지 불두 안정화와 석축 보강, 보호각 교체사업 등을 거쳐 안전한 관람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이 불상을 세우는 방안에 대해서는 대해서는 문화재청, 불교계, 전문가 등 입장 차가 커 각계 의견을 수렴해 논의를 할 계획이다. 남산 열암곡 마애불상은 2007년 5월 22일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에서 열암곡 석불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13호) 보수 정비를 위해 유실된 부재, 사역배치, 발굴조사를 하던 중에 우연히 엎어진 채로 발견됐다. 특히 남산에 남아 있는 100여구의 불상 중 가장 완벽한 상태로, 오뚝한 콧날과 아래쪽 바위 사이의 간격이 불과 5cm에 불과해 큰 화제를 모았다. 마애불상 발견 이후 경주시는 주변정비와 함..
경주 수봉정 및 감산사지3층석탑 (2020.08.22.) 수봉정 (秀峯亭) 이 정자는 구휼(救恤)사업 및 육영(育英)사업과 독립운동가(獨立運動家)의 지원(支援)을 펼친 현장(現場事業處)로서 수봉 이규인(秀峯 李圭寅)(1859~1936) 선생이 1924년 서당(書堂)인 비해당(匪懈堂)과 약국(藥局)인 보인재(輔仁齋)를 갖춘 2층으로 건립하였으나 1953년 현재와 같이 단층으로 개수되었다. 선생은 사립(私立)의 경주고등보통학교(慶州高等普通學校)를 설립하여 구국(救國)의 인재(人材)를 양성하려 하였으나 끝내 조선총독부(朝鮮總督府)에 수탈(收奪)되어 경주공립중학교(慶州公立中學校)로 개교되고 말았다. 그러나 광복(光復) 후 선생의 유지(遺志)대로 사학(私學)으로 환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본 건물은 선생의 선각(先覺)과 실천궁행(實踐躬行)을 배우는 도장(道場)으로..
경주 감은사지3층석탑 - 3 (2020.08.21.) 경주 감은사지 동ㆍ서 삼층석탑 (慶州 感恩寺址 東ㆍ西 三層石塔) 종 목 국보 제112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양북면 용당리 55-3, 55-9번지 시 대 통일신라 감은사터 넓은 앞뜰에 나란히 서 있는 쌍탑이다.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서로 같은 규모와 양식을 하고 있으며, 옛신라의 1탑 중심에서 삼국통일 직후 쌍탑가람으로 가는 최초의 배치를 보이고 있다. 감은사는 삼국을 통일한 문무왕이 새 나라의 위엄을 세우고, 당시 틈만 나면 동해로 쳐들어 오던 왜구를 부처의 힘으로 막아내어 나라의 안정을 도모하고자 세운 절로, 동해 바닷가인 이 곳에 터를 잡았다. 문무왕은 생전에 절이 완성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그 아들인 신문왕이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즉위 이듬해인 682년에..
경주 원성왕릉 ( 괘릉. 2020.08.22.) 사적 제26호 경주 원성왕릉 (慶州 元聖王陵)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괘능리 산17번지 시 대 통일신라시대 원성왕릉은 낮은 구릉의 남쪽 소나무 숲에 있는 것으로 신라 제38대 원성왕(재위 785∼798)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원성왕의 이름은 경신이며 내물왕의 12대 후손으로 독서삼품과를 새로 설치하고 벽골제를 늘려쌓는 등 많은 업적을 남겼다. 왕릉이 만들어지기 전에 원래는 작은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의 모습을 변경하지 않고 왕의 시체를 수면 위에 걸어 장례하였다는 속설에 따라 괘릉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 능은 원형 봉토분으로 지름 약 23m, 높이 약 6m이다. 흙으로 덮은 둥근 모양의 무덤 아래에는 무덤의 보호를 위한 둘레석이 있는데, 이 돌에 12지신상이 조각되어 있다. 봉분 바로 앞에는 ..
포항 덕동문화마을 (2020.08.22.) 포항 덕동문화마을 (글 출처 : 국제신문) 한 마을이 유구한 역사를 오롯이 품은 박물관이다. 수려한 고목들은 이 마을을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만들었고, 고택들은 이 마을의 400년 전통을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다. 덕(德)이 많은 사람이 모여 산다고 이름 붙은, 경북 내륙의 숨은 보물 같은 장소다. 바로 자연과 역사 그리고 인간과 문화가 공존하는 경북 포항시 기북면 덕동문화마을이다. ■마을 전체가 하나의 문화재 포항의 북부, 바로 옆은 청송이다. 비학산과 침곡산, 운주산과 성법령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싼 기북면 오덕리에 덕동문화마을이 있다. 덕동문화마을의 초입에 들어서자 이 마을의 상징인 소나무들이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이라는 명성을 유감없이 확인해줬다. 촘촘하지 않게, 그러면서도 메마른 듯한 느..
경주 남산 탑곡마애불상군 및 옥룡암 (2020.08.21.) 경주 남산 탑곡 마애불상군 (慶州 南山 塔谷 磨崖佛像群) 보물 제201호 소 재 지 경북 경주시 배반동 산72, 산79 시 대 통일신라시대 이 일대는 통일신라시대에 신인사라는 절이 있었던 곳이다. 남쪽의 큰 바위에는 목조건물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석탑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보아 남쪽면의 불상을 주존으로 하여 남향사찰을 경영했었음을 알 수 있다. 9m나 되는 사각형의 커다란 바위에 여러 불상을 회화적으로 묘사하였다. 남쪽 바위면에는 삼존과 독립된 보살상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 바위면에도 불상과 보살, 승려, 그리고 비천상(飛天像)을 표현해 놓았다. 불상·보살상 등은 모두 연꽃무늬를 조각한 대좌(臺座)와, 몸 전체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 한 광배(光背)를 갖추었으며 자세와 표정이 각기 다르다. 비천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