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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실 ■/외부 건축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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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20> 구 서울역사-구보씨의 경성과 타자의 건축 구보씨의 경성 한바퀴… 소외된 인생들의 도회 항구속으로 입력 :2020-07-05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구 서울역사-구보씨의 경성과 타자의 건축 소설가 박태원(호 구보, 1909~1986)은 1934년 8~9월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을 조선중앙일보에 연재했다. 26세의 주인공 구보가 하루 동안 경성 중심부 곳곳을 배회하며 보고 겪은 일들을 묘사한 중편 소설이다. 작가가 곧 작품 속 주인공이 되어 일제강점기 서울의 모습, 그리고 식민지 지식인의 감성을 그린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그의 절친 이상(본명 김해경, 1910~1937)은 ‘하융’이란 필명으로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 경성역사(구 서울역사)는 현재 문화전시시설로 이용하고 있다. 1925년 완공 당시 크기와 완성도가 동양에서 1..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9> 경주 황룡사지 신라의 랜드마크… 텅 빈 폐허, 꽉 찬 위용 입력 :2020-06-08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경주 황룡사지 ▲ 남북 축선 위에 놓인 남문, 중문, 목탑, 중금당 터들이 황룡사의 중심부를 이루고 사방으로 회랑 터가 감싸고 있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삼국시대 국력이 가장 약했던 신라인들에게 자부심을 주는 세 가지 보물이 있었다. 황룡사 장육존상과 진평왕의 옥대 그리고 황룡사 9층탑이니, 두 가지나 가진 황룡사야말로 국보 중 국보였다. 경주의 황룡사는 진흥왕이 시작해 선덕여왕까지 90여년 동안 건설한 신라 최대의 국가적 사찰이었다. 그리고 그때는 세 나라가 치열하게 각축전을 벌이던 전란의 시대였다. ▲ 9층 목탑 터 중심부의 중앙 심초석이 멀리 선도산을 향하고 있다...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8> 고창 고인돌 유적 원시예술이 쌓아 올린 돌의 미학 입력 :2020-05-11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고창 고인돌 유적 ▲ 고창 도산리 고인돌. 탁자형 고인돌은 북방형이라고 불렀으나 고창, 화순 등 남부지방에도 분포한다. 4개의 받침돌이 무덤방을 만들었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2개만 남아 있다. 고창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전 세계에 남아 있는 고인돌은 5만여 기로 추산된다. 그 가운데 한반도에 적어도 2만 9500기가 현존한다니, 60%가 이 땅에 밀집된 셈이다. 면적당 밀도는 물론이고 절대 숫자에서도 이미 2500년 전 청동기 시대에 세계 1위를 기록했다. 한반도는 가히 ‘고인돌 왕국’이라 부를 만하다. ●최초의 견고한 건축물…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워 모든 자원을 자연 상태에서 얻어..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7>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역병과 정치에 염증난 조선 선비의 자가격리 입력 :2020-04-13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영천 매산고택과 산수정 ▲ 벼슬에서 내려온 선비 정중기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삼매리에 터를 잡은 매산고택은 그가 참혹한 전염병과 지저분한 세속을 피하기 위해 조성한 낙원과 같은 곳이다. 정중기는 이곳에 오록서당과 산수정을 지었고, 아들 일찬이 지금의 고택을 완공했다. 매산고택 안대청에서 내다보면 앞산이 날개를 편 나비처럼 보인다. 온지음연구소 집공방 제공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감염을 극복할 근본 해법은 아직 없다. 물리적 거리두기로 전염 속도를 줄이는 것이 유일하다. 300년 전 더 참혹한 역병 속에서 한 지식인은 반생의 노력으로 안전하고 아름다운 유토피아를 만들었다. ●치사율 30% 넘는 역병에 ..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6> ‘영욕의 55년’ 서울 세운상가 굴곡졌던 어제…혼란스런 오늘…다시 세운 내일 입력 :2020-03-16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영욕의 55년’ 서울 세운상가 ▲ 13층 현대상가 건물을 철거하고 조성한 다시세운광장과 세운상가의 모습. 정연호 기자 tpgod@seoul.co.kr ‘세운상가’라고 부르는 7동의 건물들이 멈춰 선 열차와 같이 서울 도심의 한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다. 건립 때는 ‘동양 최대’의 복합쇼핑센터로 위용을 자랑했지만, 이내 도시 경관을 해치는 철거 대상 흉물이 됐다가 이제는 노후 지역을 되살리는 도시재생의 핵심이 됐다. 반세기가 넘은 이 건물의 극적인 과거는 곧 수도 서울의 역사였고, 앞으로의 운명은 곧 현대 도시의 미래이기도 하다. ▲ 1968년 세운상가 모습. 왼편 건물부터 아세아상가(현 세운가동상가..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5> 머슴 출신 조선 건축가 박자청 미천함 뛰어넘은 실력자…도시를 읽다, 한양을 짓다 입력 :2020-02-17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머슴 출신 조선 건축가 박자청 영화 ‘천문:하늘에 묻는다’는 세종과 장영실의 브로맨스로 큰 인기를 끌었다. 앙부일구와 자격루를 발명했던 장영실은 오로지 자신의 재능만으로 노비에서 종3품 고위직까지 올랐던 공학자였다. 동시대에 건축 기술에 큰 성취를 남긴 이는 바로 박자청(1357~1423)이다. 지방 머슴 신분으로 종1품 공조판서까지 올랐으니, 조선 역사상 불세출의 ‘개천에서 나온 용’이었다. ▲ 동구릉 안에 있는 건원릉은 박자청이 만든 태조의 왕릉이다. 완벽한 법식을 구현한 작품이며, 봉분에 태조의 고향인 함흥의 갈대를 입힌 것으로 유명하다. 박지환 기자 popocar@seoul.co.kr ..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4> 인천 강화성공회성당 한옥 품은 교회… 눈물의 섬에 띄운 방주 입력 :2020-01-20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인천 강화성공회성당 ▲ 인천 강화군 강화읍에 자리한 강화성공회성당은 ‘성당’이라는 이름과 달리 나무기둥에 기와지붕을 얹은 한옥 형태로 불교 사찰에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다. 강화읍 좌청룡에 해당하는 능성에 ‘외삼문-내삼문-본당-사제관’을 일렬로 배치했다. 한국의 양대 종교인 기독교와 불교는 여러 면에서 다르다. 특히 건축이 그렇다. 교회는 뾰족한 종탑이 있는 서구 중세풍의 고딕 건물을, 사찰은 아무래도 기와지붕의 전통 한옥을 연상케 된다. 그러나 불교 사찰같이 생긴 교회와 성당이 있다. 나무기둥에 기와지붕을 얹은 이른바 ‘한옥교회’들이다. 이들은 선교 초기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주로 지어졌고..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13>집토기로 본 가야 건축 높아서 신성한… 낮아서 편리한 ‘집’ 입력 :2019-12-23 [김봉렬과 함께하는 건축 시간여행] 집토기로 본 가야 건축 ▲ 가야 시대 건축은 문헌기록이 극히 드물고, 대형 건물지도 발견되지 않은 탓에 여전히 비밀로 남아 있다. 다만 집모양토기가 다수 출토돼 가야의 건축을 재현해 볼 뿐이다. 김해 봉황동 가야 유적의 가옥 역시 집토기를 바탕으로 복원했다. 도준석 기자 pado@seoul.co.kr 2000여년 전, 하늘에서 내려온 황금알에서 부화한 사내가 왕이 돼 건국했다는 전설의 나라. 한반도 남부, 낙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10여개 작은 나라들이 이룬 연맹국가. 520년 동안 존속해 사국시대를 열었던 가야. 그러나 아직도 어떤 나라였는지, 어디서 어떻게 살았는지 알려진 것은 너무나 적다. 때맞춰 국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