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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충 북

청원 이항희 가옥 - 3 ( 2012.07.)

 

 

 

...... 이항희 가옥은 일반인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고택이지만, 권위적이지 않고 소박한 정겨움과 공간미학이 느껴지는 무척 매력적인 집이라는 게, 답사할 때마다 항상 느끼는 감정이다.

 아담하고 실용적인 대문간을 중심으로 좌우로 이어진 행랑채와 사랑채의 외관구성이 단순하면서도 기능적이고, 안채와 사랑채를 제외한 나머지 건물들은 기와대신 초가로 지붕을 처리하여 조화와 검소함을 실천하였고, 각각의 건물을 연결하는 공간과 동선의 짜임새와 전개는 막힌 듯 열리고, 열린 듯 닫아서, 자연스러우면서도 리듬감마저 느끼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집이다.

 규모가 으리으리하고 볼 게 많아서 주목받는 집이 아니라, 작고 단순하지만 다양한 공간체험과 개성적인 구성으로 인해서 보면 볼수록 호감이 가는 매력적인 집이라는 것이다.

 

 

이항희 가옥의 전체적 구성은, ‘一’자형의 행랑채와 사랑채, 'ㄱ'자형의 안채 그리고 안채 좌우의 광채와 곳간채로 이루어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에는 사당채가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사라지고 흔적조차 없다. 현존하는 건물 중 안채는 조선후기에 지은 것이고, 나머지 사랑채와 기타 건물은 1930년대에 지은 근대식 한옥건물이다.

 근대식 한옥의 일반적인 경향은, 기둥간격을 넓히고 지붕을 높혀서 건물의 규모가 점차 커지고 권위적으로 바뀌어 지면서, 우리 전통한옥의 단아한 멋을 점점 잃어 가게 되는 안타까운 면이 나타난다. 그 변화 중에서도 가장 눈에 뛰는 것은 유리가 등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구한말 이후부터 서양문물과 함께 들어온 유리는, 궁궐과 서울의 상류층 집에서 사용하기 시작하여 점점 지방의 지주와 부농의 집에까지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이항희 가옥의 사랑채도 그 당시 시대상황의 영향을 받았다. 건물을 키우고 퇴칸에는 유리문을 달았다.

당시의 유행을 반영한 것이었겠지만, 사랑채보다 약 100년 앞서 건축한 안채보다도 건물의 품격이 한수 아래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사랑채의 구성은 대청·사랑방·건넌방의 흔히 보이는 평면구성이며, 전면의 바깥마당은 아랫집과 뒷쪽의 큰 회나무로써 담장 없이도 외부공간의 분위기를 훌륭히 연출하였다.

 

 

 행랑채는 우진각 초가지붕이고, 서쪽부터 측간, 외양간, 행랑방, 대문 그리고 사랑채가 이어져 있다. 대문을 사이에 두고 행랑채와 사랑채가 붙어 있는 형식이다.

 행랑채와 사랑채 중간의 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안채와 사랑채의 내외 구분을 위해 설치한 담장이 갑자기 앞을 가로막아 서고 정면으로 안채 출입용 작은 쪽대문이 보인다. 바깥마당에서 안채가 있는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주진입동선에 전이공간인 가운데마당(중정)이 별도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이 중정은 마을을 향해 무한히 열려 있는 바깥마당에 비하면 빈약하고 좁지만, 이 중정이 가진 힘과 에너지만은 만만치 않다. 안채가 있는 안마당을 보호하면서 자연스러운 동선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고, 작은 공간이지만 인간적이고 친근한 스케일로 손님을 맞아주는 탁월한 능력이 이 중정에 있다. 손님의 발밑을 지나는 수로(도랑)도 이 가옥의 운치 있는 멋이라고 할 수 있다.

 대문을 들어선 손님은 예상치 못한 중정의 등장으로 동선의 방해를 받지만, 이내 이 소박하고 햇살 가득한 중정의 분위기와 정취에 흠뻑 빠지게 되고, 기대와 설레임을 안고 안마당으로 들어가는 중문을 향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