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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전 남

장성 필암서원 ( 2012.04. )

 

 

 선비들이 모여서 학문을 닦고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조 23년(1590)에 하서 김인후(1510∼1560)를

추모하기 위해서 그의 고향인 기산리에 세워졌다.

  1597년 정유재란으로 불타 없어졌으나 인조 24년(1624)에 다시 지었다. 현종 3년(1662)에 임금께서

 ‘필암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직접 내려보내 주셨으며, 1672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공부하는 곳을 앞쪽에, 제사지내는 곳을 뒤쪽에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태로서 휴식처가 되는

확연루를 시작으로 수업을 받는 청절당, 그 뒤에 학생들이 생활하는 공간인 동재와 서재가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그 북쪽으로는 문과 담으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사당을 두고 제사를 지냈다.

 청절당의 처마밑에는 윤봉구가 쓴 ‘필암서원’현판이 걸려있고, 대청마루에는 동춘 송준길이 쓴 현판이

달려있다. 또한 확연루의 현판은 우암 송시열이 쓴 것이다. 사당의 동쪽에는 경장각이 있는데,

보물로 지정된 서책이나 문서 등이 보관되어 있다. 이들 자료는 주로 18세기∼20세기초부터 전래된

것으로서, 당시 지방교육과 제도 및 사회·경제상, 그리고 학자들의 생활상 등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이다. (자료 :문화재청)

 

- 서원 근처에 유물전시관과 집성관이 있다.

 

 

 


 

 

 

 

 

 

 

 

 

 

 

 

 

 

 

 

 

 

 

 

 

 

 

 

 

 

 

 

 

 

 

 

 

 

 

 

 

 

 

 

 

 

 

 

 

 

 

 

 

 

 

 

 

 

 

 

 

 

 

 

 

 

 

 

 

 

 

 

 

 

     집성관

  집성관은 필암서원 내 교육공간인 진덕재와 숭의재가 비좁고 낡아 서원 옆에 2008년 5월부터 42억 원의 사업비를 투입해 2년 여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청소년과 전국 유림들을 위해 마련한 교육의 장이다. 

 연면적 1986㎡에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로 지하에는 60여 명이 동시에 이용할 수 있는 식당과 체력 단련실, 휴게실이 마련됐고, 지상 1층에는 회의실, 다도실, 예절교실, 서예실, 교육실, 숙소 등을 갖추고 있다.

 

 

 

 

 

   유물전시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