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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 화 -9 순천 금전산 금둔사 납월매.2 ( 2012.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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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절'이란 말이 있다면 이 절을 위해 아껴놓고 싶다. 벌교읍이 내려다보이는 금전산 산자락에 포옥 안긴 이 자그마한 절엔 유난히 꽃이 많다. '여기가 네 자리'라고 한그루 한그루 번호 붙여 심어 놓은 것 같다. 아니나다를까 주지 지허스님이 일일이 다 심었단다.

 대웅전 오른편엔 흰 매화 사이에 붉은 점처럼 납월매가 2그루, 대웅전 마당엔 담장을 이룬 연산홍 10여그루. 선방으로 가는 계단과 장독대 주변엔 동백이다. 목을 똑똑 끊고 장독대로 추락한 동백 꽃송이가 빗자루로 쓸어다 모아놓은 것처럼 많다. 양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대 프레임을 만들면 그대로 '그림'이 된다.

 

 

 이 꽃들 중에서도 금둔사가 자랑하는 꽃은 바로 납월매다. 지허스님은 "아마도 여기 6그루가 전국에서 유일한 납월매일 것"이라고 말했다. 1983~84년께 씨를 얻어다 직접 뿌렸다. "낙안읍성에 살던 조씨댁에 납월매가 딱 한 그루 있었어요. 거기서 씨를 받아 몇년을 뿌렸는데, 겨우 6그루가 났어. 조씨댁 납월매는 노목이 되어 죽어버리고. 그래서 이게 유일한 납월매요."

 

 납월에 핀다고 해서 납월매다. 불가에서는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음력 12월8일을 기려 12월을 납월이라고 부른다. 섣달 모진 추위에 피는 꽃. 흰꽃이 숨막힐 듯 흐드러지는 3월의 매화와 다르다. 꺾이고 비틀린 가지에 겨우 손톱만한 꽃 몇송이가 듬성듬성 달라붙는다. 동양화 속에서 툭 끊어내 온 것 같다. 꽃도 열매도 섬진강변 매화에 못미치지만 향기만큼은 더 짙단다. 까치발을 하고 꽃심에 코를 들이댔지만…수행이 부족한가보다.

 

 

 20년 전만 해도 금둔사 일대는 폐허였다. 백제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내력 깊은 절이었지만 정유재란 때 흔적도 없이 불탔다. 수백년 간 굴러다니던 탑과 비석을 82년 근처 선암사에 있던 지허스님이 거뒀다. 버려진 3층석탑과 비석이 알고 보니 9세기 작품. 보물 945호와 946호로 각각 지정됐다. 1000년도 넘었는데 아직도 기단부와 몸돌의 부조가 선명하다. 1층 몸돌에 새겨진 무릎 꿇은 사람의 시선은 맞은편 비석의 석불로 향한다.

 

 

 금둔사는 선암사 주지까지 지낸 지허스님이 '두집 살림'을 하며 가꿨다. 그 덕에 절은 흙일 좋아하는 주인이 조물락거려 만들어놓은 집 같다. 대웅전으로 가려면 선암사 앞 승선교를 꼭 닮은 돌다리를 건너야 한다. 94년에 지은 대웅전은 아직도 새것 냄새가 나지만, 10년 더 된 뒤편 선방에선 묵은 분위기가 좀 난다. 낮은 담장이 선방과 대웅전을 갈라 작은 오솔길이 생겼다. 돌을 쌓고 기와로 덮었고, 바닥엔 흙을 깔았다. 절 뒤 숲엔 호랑가시나무와 동백을 심었다. 차나무도 눈에 띈다. 팔뚝만한 불상 58기를 바위 하나에 새겨놓은 불조존상, 바위에 새긴 비로자나마애불도 아기자기한 절집 분위기와 썩 잘 어울린다.

 

 수백년간 절터를 지킨 석탑과 비석도 애초부터 지금 절집의 일부였던 것 같다. '보물'들은 계곡 건너 언덕 위에 놓여 있다. 한칸 한칸 손으로 만져 다듬어놓은 돌계단을 오르는데, 가지를 뻗쳐 올린 노란 꽃이 눈에 띄었다. 산수유다. 손 뻗치면 닿을 거리인데, 눈 앞의 꽃 때문에 절이 갑자기 꿈 속처럼 노랗게, 뽀얗게 흐려졌다.(출처-경향신문 최명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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