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붕처럼 비스듬히 경사진 옥상 위에는 풀과 등나무가 자라고 있다. 시간이 흘러 등나무가 벽을 타고 옥상에 세워진 프레임을 덮으면 아이들은 등나무 그늘 아래서 책을 읽을 수 있게 된다. 이곳은 도서관이자 공원이다. 알록달록한 색으로 칠한 내부에는 상상력으로 가득 찬 공간이 숨어 있다.
'4창원의 방' '별 따러 가는 길' '신화의 방' '녹색의 방' '다목적 강당'. '역사의 방'에는 가야의 정서가 흐르고 지금도 그때 유적이 발굴되는 '김해'라는 장소의 특성이 살아 있다.
온 국민 독서운동을 펼쳐온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사장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대학장)이 경남 김해시와 함께 30일 김해시 장유면 율하리에서 기적의도서관을 개관했다. 한살배기 아이도 엄마와 함께 와서 책 읽을 수 있게 하자며 2003년 1월 전국에서 시작된 이 어린이 전용 도서관 건립 운동의 11번째 결실이다. 김해 도서관은 1,458㎡ (약 441평) 규모에 지상 2층 건물 3개 동으로 만들어졌다.
2008년 전북 정읍 도서관 건립 이후 3년 반 만에 시민 후원금과 지자체 예산으로 만든 이번 김해 도서관은 건축가 정기용씨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각별하다. 첫 기적의도서관인 순천 도서관을 시작으로 진해, 서귀포, 제주, 정읍 등 모두 6개의 도서관을 '실비'만 받고 설계한 정씨는 지난 3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해 도서관은 '감응의 건축가'로 불린 그의 예순여섯 평생 마지막 작품이다.
도서관 내부는 외부와 완전히 격리되지 않는다. 비가 내리는지, 햇살이 뜨거운지, 캄캄한 밤에 별이 떴는지를 하늘을 향해 곳곳에 뚫린 채광창을 통해 내다볼 수 있다. 베란다처럼 천장이 뚫린 실내 공간에서 자연바람으로 환기를 할 수도 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건축, 이를 통해 삶을 재조직할 수 있는 쌍방향의 건축이 정씨가 평생 추구해온 바로 '감응의 건축'이다.
그는 '건축계 공익요원'이라 불릴 정도로 돈이나 명성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삶을 위한 건축으로 깊은 울림을 남겼다. 잘 알려진 무주 구천동 어르신을 위한 목욕탕과 공설운동장, 노무현 대통령의 봉하마을 사저와 함께 기적의 도서관 역시 그의 대표작이다.
김해 도서관 김은엽 사서는 "암 투병 중에도 김해 기적의도서관을 설계하기 위해 그 동안 설계한 도서관을 찾아 다니며 이용자들에게 개선점을 물어 가며 고쳐야 할 점을 설계에 반영했다고 한다"며 그를 회고했다. 그를 추모해 이날 개관식에서는 정기용의 생애를 돌아보는 영상 상영과 그의 건축 작품 스케치 전시회도 열렸다.
김 사서는 "방문한 많은 건축가들이 다목적 강당이 어떤 공연장보다 잘 설계됐다고 감탄한다"며 "어린이 도서관이지만 청소년층은 물론 젊은 부모층까지 흡수할 수 있게 2층은 성인을 위한 공간으로 꾸몄다"고 말했다. 개관 행사를 찾은 젊은 부모들 역시 도서관 건립을 무척 반겼다.
23일부터 시작된 시범운영 중에 5세 딸과 함께 도서관을 이용해 본 박미경(38)씨는 "책만 읽는 것이 아니라 다목적 강당에서 공연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를 향유할 수 있어 좋았다"며 "둥근 창이 있는 '아빠랑 나랑'이라는 방을 본 딸 아이가 '우주선 같다'며 재미있어 하더라"고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박씨는 "도서관이면 조용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곳에선 놀이터처럼 놀다가 책과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도서관 앞 낮은 담벼락에는 전국 기적의도서관을 이용하는 아이들이 타일 위에 그린 그림 1,100여 점이 붙어 있다. 이름하여 '어깨동무 담'이다. "나무도 고맙고, 바람도 고맙고, 하늘도 고맙고, 공기도 고맙고, 모두모두 고맙습니다."
아이들 키만한 도서관 담벼락 옆에 서면 평생 삶이 있는 건축을 지향했던 정기용씨의 유언이 나지막이 들려오는 것도 같았다. (출처=한국일보 이인선기자 kel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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