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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장 완벽한 환영 > — 울산시립미술관 : 실재와 착시의 경계에서 (2026.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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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완벽한 환영— 울산시립미술관

 

Ⅰ. 전시장 입구, 낯익은 얼굴과의 조우

 

울산시립미술관 지하 2층 제1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이하는 것은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얼굴이다. 콧수염 끝이 하늘로 치솟은 그 낯익은 표정은 그러나 그림이 아니라 조각이다. 일본계 미국인 작가 카즈 히로가 빚어낸 이 인물상은 피부의 잔주름과 실핏줄, 눈가의 미세한 그늘까지 재현해 관람객의 발걸음을 멈춰 세운다.

 

사진인지 회화인지, 실제 인물인지 조형물인지 가늠하기 위해 다가섰다가 다시 한 걸음 물러서는 사람들의 몸짓은 이번 특별전 '가장 완벽한 환영(The Most Perfect Illusion)'이 관람객에게 요구하는 첫 번째 태도이기도 하다. 2026 국제 극사실주의(하이퍼-리얼리즘) 특별전이라는 이름을 단 이 전시는 지난 7 2일 개막해 오는 10 5일까지 이어지고 있으며, 한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실내에서 서늘한 긴장감을 느끼려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Ⅱ. 극사실주의라는 질문

 

극사실주의는 흔히 '사진보다 더 사진 같은 그림'으로 소개되지만, 이번 전시가 던지는 질문은 기술적 완성도에 머물지 않는다. 참여 작가들은 인물의 표정과 시선, 사물의 질감과 흔적, 자연과 인간의 관계, 디지털 시대의 정체성과 기억이라는 저마다의 주제를 극도로 정밀한 손끝으로 풀어낸다. 관람객은 눈앞의 형상이 진짜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는 순간, 자연스럽게 '무엇을 실체라고 믿는가'라는 더 근본적인 물음과 마주하게 된다.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이 장면들은 낯설고도 서늘한 긴장감을 안기면서, 동시에 예술이 현실을 어디까지 재현할 수 있는지를 되묻는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호주,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는 대표 작가 13인의 회화 90점과 조각 9, 초대형 조각 1점을 한자리에 모았다는 점에서 국내 최대 규모의 국제 극사실주의 특별전으로 꼽힌다. 피부의 질감과 털 한 가닥, 미세한 표정 변화까지 정교하게 재현한 작품들은 관람객에게 압도적인 몰입감과 더불어 경이로움에 가까운 시각적 체험을 안겨 준다.

 

 

 

 

 

 

 

 

 

 

 

 

 

 

 

 

Ⅲ. 살아 숨 쉬는 조각  카즈 히로와 샘 징크스

 

이번 전시에서 가장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인체를 다루는 두 조각가의 작업이다. 영화 특수분장 분야에서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뒤 극사실 조각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카즈 히로는 실리콘과 인모, 채색을 겹겹이 쌓아 올려 살아 숨 쉬는 듯한 피부를 빚어낸다. 그의 손끝에서 완성된 인물상은 정지된 형상이면서도 금방이라도 눈을 깜빡일 것 같은 생기를 품고 있으며, 전시장 입구에 놓인 살바도르 달리 재현 조각은 그 정교함의 정점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작업으로 꼽힌다. 

 

호주 출신 조각가 샘 징크스는 이와는 다른 결로 접근한다. 그는 인체를 실물보다 작게 축소해 빚어내는데, 오히려 그 축소된 크기가 인간 존재의 연약함과 유한함을 더욱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두 작가 모두 재료로는 완벽에 가까운 사실성을 구현하면서도, 그 사실성을 통해 결국 인간이라는 존재의 연약하고 덧없는 조건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닮아 있다. 관람객들은 이 조각들 앞에서 유독 오래 머무르며, 숨소리라도 들릴 듯한 정지된 인물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듯한 표정을 짓곤 한다.

 

 

 

 

 

 

 

 

 

 

 

Ⅳ. 화폭 위의 시선  회화가 펼치는 착시

조각이 인체의 촉각적 사실성을 겨눈다면, 회화 부문의 작가들은 시선과 표면의 착시를 파고든다. 호주 작가 로빈 일리는 투명한 비닐이나 유리를 통과하는 빛의 굴절을 극도로 정교하게 그려내며 인물과 배경 사이의 경계를 흐릿하게 만들고, 이탈리아 작가 디에고코이는 사물의 질감과 흔적을 통해 시간의 축적을 화폭 위에 새긴다. 

한국 극사실주의를 대표하는 고영훈, 구자승, 김영성 세 작가의 작품도 나란히 소개되는데, 이들은 오래된 책과 사물, 자연의 파편들을 통해 사물과 생명, 시간과 기억이라는 한국적 정서를 사실적 표현 속에 담아낸다. 

 

서구 작가들의 작업이 인간의 신체와 존재론적 질문에 집중한다면, 한국 작가들의 작업은 사물에 깃든 기억과 시간의 결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이번 전시는 극사실주의라는 하나의 언어 안에서도 서로 다른 문화적 결을 드러내 보인다. 화폭 앞에 바짝 다가서면 붓 자국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매끈한 표면이 펼쳐지고, 한 걸음 물러서면 그 표면이 다시 하나의 완결된 장면으로 되살아나는 이 시각적 줄다리기야말로 극사실 회화가 지닌 고유한 매력이라 할 만하다.

 

 

 

 

 

Ⅴ. 역사 위에 세운 미술관

 

이 모든 착시의 향연이 펼쳐지는 울산시립미술관 자체도 눈여겨볼 만한 공간이다. 미술관은 울산 중구 북정동, 조선시대 울산 동헌과 객사가 있던 역사공원 터에 자리를 잡았다. 설계 공모 당시 '레이어드 스케이프(Layered Scape·중첩된 풍경)'라는 이름으로 당선된 이 건축물은 땅의 기억과 풍경의 회복, 역사공원과 조화되는 미술관, 관람자와 미술을 위한 열린 건축공간이라는 개념 아래 지하 2, 지상 2층 규모로 지어졌다. 

건물의 배치는 동헌과 향후 복원될 객사 부지 사이의 보행 동선을 최대한 확보하고, 부지가 지닌 고저차를 그대로 살려 낸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최종 설계안으로 선정된 바 있다.

 

2022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실험성과 창의성으로 과거를 읽고 현재를 보며 미래를 담아내는 미술관을 표방해 왔는데, 역사의 흔적 위에 세워진 건축물 안에서 실재와 환영의 경계를 실험하는 이번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는 사실은 공교롭게도 이 미술관이 처음부터 품어 온 정체성과 맞닿아 있다. 조선시대 관아의 터를 딛고 선 지하 전시실에서 21세기 극사실 조각과 마주하는 경험은, 시간을 겹겹이 포갠 이 건축물의 '중첩된 풍경'이라는 이름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Ⅵ. 여름 내내 이어진 관람의 물결

 

전시에 대한 반응은 개막 이후 뚜렷한 흥행세로 이어졌다. 지난 7 2일 개막한 이후 8 9일까지 전시를 찾은 관람객은 2 7천여 명에 달했으며, 이 가운데 7월 한 달 관람객만 1 8,600명으로 미술관 개관 이래 같은 달 기준 가장 많은 기록을 세웠다. 휴가철이 겹친 8월 들어서는 관람 열기가 한층 뜨거워져, 8 4일부터 9일까지 엿새 동안에만 5,565명이 다녀갔고 주말 이틀간 방문객이 2,600명을 넘어서며 7월 주말 평균보다 85퍼센트 가까이 늘었다. 

 

미술관은 이러한 관심에 부응해 전시 기간 중 매주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는 오후 8시까지 야간 연장 운영을 이어가고 있다. 함께 진행 중인 체험형 전시 '팬 레터' '줄리안 오피'전 관람객까지 더하면 한 주 동안 미술관을 찾은 인원은 약 7,500명에 이르러, 올해 상반기 월평균 관람객 수와 맞먹는 규모가 단 일주일 만에 몰린 셈이다. 무더운 여름,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형상들 앞에서 서늘한 긴장을 느끼려는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Ⅶ. 관람 안내

전시는 울산시립미술관 지하 2층 제1전시실에서 진행되며, 관람료는 성인 1 5천 원, 청소년 1 2천 원, 48개월부터 미취학 아동까지는 1만 원이다. 평소보다 이른 시각부터 관람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조기 예매 기간에는 성인 기준 20퍼센트 할인된 요금으로 티켓링크를 통해 사전 예약이 가능했다. 

 

무더위가 이어지는 여름철 특성을 고려해 미술관은 매주 수요일, 금요일, 토요일에는 오후 8시까지 야간 연장 운영을 실시하고 있어, 낮 시간을 내기 어려운 직장인이나 늦은 오후 나들이를 즐기는 가족 단위 관람객에게도 넉넉한 선택지를 제공한다.

 

 

 

 

 

 

 

 

 

 

 

 

 

 

 

Ⅷ. 맺음말  무엇을 실체라 믿는가

 

전시장을 나서며 다시 떠올리게 되는 것은 결국 '가장 완벽한 환영'이라는 제목 그 자체다. 완벽에 가까운 환영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딛고 선 실재를 더욱 또렷하게 되비추는 거울이 된다. 피부의 질감 한 올, 유리에 굴절된 빛 한 줄기까지 재현해낸 이 작품들 앞에서 관람객은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이 그림인지 조각인지, 나아가 자신이 믿어 온 현실이라는 것이 얼마나 정교하게 구성된 감각의 산물인지를 되묻게 된다. 

 

극사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모인 열세 명의 작가는 저마다 다른 언어로, 그러나 하나같이 손끝의 인내와 정밀함으로 이 질문에 다가섰다. 역사의 터 위에 세워진 미술관 안에서, 가장 완벽한 가짜가 가장 진실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이다. 10 5일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은, 무더위가 한풀 꺾인 뒤에도 여전히 실재와 환영 사이를 서성이고 싶은 이들에게 충분한 시간을 남겨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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