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기 열전 제67편 ㅡ 일자열전(日者列傳)
서론
일자열전은 점복(占卜)과 택일(擇日)을 업으로 삼았던 술사들의 삶을 다룬 열전으로, 사마천의 역사 서술 체계 안에서도 특히 이색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일자(日者)'란 문자 그대로 날짜를 점치는 자, 곧 길흉을 점쳐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점복업 종사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열전이 특별한 까닭은 사마천이 단순히 여러 점복가들의 행적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마계주(司馬季主)라는 한 인물과 조정 관료 송충(宋忠), 가의(賈誼) 사이의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학문과 처세, 그리고 진정한 현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담아냈다는 데 있다.
당시 사대부 사회에서 점복업은 흔히 미천하고 비루한 일로 치부되었다. 조정의 고관들은 시정(市井)에서 거북점과 시초점을 치는 이들을 경시하였으며, 이는 유가적 정통 학문을 닦은 사대부와 잡학으로 여겨진 술수가 사이의 뚜렷한 신분적 위계를 반영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이 열전을 통해 그러한 세속적 편견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그는 송충과 가의라는 당대 최고의 엘리트 관료가 오히려 저잣거리의 점쟁이 사마계주로부터 깊은 깨우침을 얻는 역설적 상황을 서술함으로써, 학문의 고하와 신분의 귀천이 결코 지혜의 깊이와 정비례하지 않는다는 통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였다. 이는 골계열전에서 미천한 배우와 악인들이 오히려 깊은 지혜를 보여주었던 서술 전략과도 맥을 같이한다.
본론
사마계주와의 만남의 배경
일자열전의 중심 서사는 한 문제(漢文帝) 시절, 중대부(中大夫) 송충과 박사(博士) 가의가 함께 저잣거리를 거닐다가 복사(卜肆)에 앉아 있는 사마계주를 찾아가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두 사람은 당대의 대표적인 학자 관료로서 자부심이 대단하였는데, 마침 조회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 서로 옛사람들의 지혜에 관해 논하다가, 문득 "내 듣건대 옛 성인은 조정에 몸담지 않으면 반드시 점복이나 의술의 무리 속에 있다고 하였다"는 말을 나누며 사마계주를 시험 삼아 찾아가 보기로 하였다. 이는 당시 지식인 사회에 은거한 현자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동시에 점복가에 대한 은근한 멸시가 뒤섞여 있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마계주는 초(楚)나라 출신으로 장안(長安)의 동쪽 저잣거리에서 점복업을 하고 있었는데, 그의 곁에는 서너 명의 제자가 둘러앉아 천지(天地)의 이치와 일월(日月)의 운행에 대해 강론을 듣고 있었다. 송충과 가의가 찾아갔을 때 마침 사마계주는 제자들에게 음양(陰陽)의 조화와 길흉의 근본 이치를 설명하고 있었으니, 그 언사가 심히 넓고 심오하였다. 두 사람은 처음에는 예를 갖추지 않고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하였으나, 사마계주의 언변과 학식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는 이내 옷깃을 여미고 정색하여 그 앞에 나아가 앉았다.
사마계주의 장광설: 점복업의 본질과 존엄성
송충과 가의가 사마계주에게 "선생께서는 어찌 이런 비천한 일에 종사하십니까?"라는 취지로 넌지시 묻자, 사마계주는 크게 웃으며 도리어 그들을 꾸짖듯 반박하기 시작한다. 그는 먼저 세상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들이 실은 얼마나 천박하고 근거 없는 것인지를 통렬히 비판하며, 이른바 현자라 자처하는 자들이 오히려 아첨과 권세에 영합하여 스스로를 더럽히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지적한다. 이어 그는 점복업이야말로 하늘의 이치를 관찰하고 땅의 형세를 살피며 사시(四時)의 순환에 순응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화를 피하고 복을 구하게 하는 지극히 고귀한 일이라고 역설한다.
사마계주는 점복가가 사람들의 길흉을 판단해 줄 때 결코 함부로 말하지 않으며, 병자에게는 마땅히 치료를 권하고, 자식 된 자에게는 효를 다하도록 이끌며, 신하 된 자에게는 충성을 권면하니, 이는 실로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이 한둘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세상 사람들은 점복가가 받는 사례가 보잘것없다 하여 이를 천시하니, 이는 근본을 모르고 지엽만을 논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는 나아가 조정의 대신들이 겉으로는 인의(仁義)를 표방하나 실상은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 아첨하고 서로 헐뜯으며 백성을 속이는 일이 허다함을 신랄하게 비판하니, 오히려 그러한 자들이야말로 참으로 부끄러워해야 할 존재라고 단언한다. "지금 그대들이 말하는 이른바 현자란 것이 모두 부끄러워할 만한 것들이다(今夫子所賢者, 皆可爲羞矣)"라는 그의 일갈은 이 열전 전체의 핵심적 메시지를 응축하고 있다.
송충과 가의의 깨달음과 이후의 운명
사마계주의 장광설을 들은 송충과 가의는 크게 부끄러움을 느끼고 낯빛이 변하여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물러났다. 사마천은 이 장면을 통해 저잣거리의 점복가가 조정의 고관들보다 오히려 더 깊은 통찰과 도덕적 자긍심을 지니고 있었음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두 사람이 돌아가는 길에 서로 탄식하며 "현자는 지위로써 판단할 수 없으며, 지혜는 겉모습으로 헤아릴 수 없다"는 취지의 대화를 나누는 대목은, 신분과 직업의 귀천으로 사람의 가치를 재단하는 세속적 통념에 대한 근본적 반성을 촉구한다.
사마천은 이어 두 사람의 후일담을 간략히 덧붙이는데, 가의는 훗날 양회왕(梁懷王)의 태부(太傅)가 되었다가 왕이 낙마하여 죽자 이를 상심하여 스스로 슬픔에 잠겨 죽었으며, 송충 역시 흉노에 사신으로 나갔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고 짧게 기록한다. 이 대목은 겉으로 화려해 보이던 조정 관료들의 말로가 결코 순탄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며, 이는 은연중에 사마계주가 택한 은거와 자족의 삶이 오히려 더 안온하고 떳떳한 것이었음을 대비적으로 보여주는 서술 장치로 기능한다.
점복업에 대한 사마천의 시각
일자열전 말미에서 사마천은 태사공으로서의 자신의 견해를 덧붙이며, 예로부터 복서(卜筮)의 도가 삼왕(三王) 시대부터 이미 존재하였으며 그 유래가 매우 오래되었음을 밝힌다. 그는 각 나라마다 점복의 방식이 다르지만 그 근본 목적은 하나같이 길흉을 판단하여 백성을 이롭게 하려는 데 있었다고 지적하며, 세상 사람들이 이를 근거 없는 잡술로 치부하는 것이 얼마나 편협한 시각인지를 은근히 비판한다. 이러한 태도는 사마천이 지닌 역사가로서의 포용적 시야, 곧 정통 학문의 위계 바깥에 있는 지식과 실천에도 마땅히 정당한 자리를 부여하고자 했던 그의 서술 철학을 여실히 보여준다.
결론
일자열전은 표면적으로는 점복업에 종사하는 술사들의 이야기이지만, 그 본질은 진정한 현자와 지혜란 무엇인가에 대한 사마천의 깊은 철학적 성찰이다. 그는 사마계주와 송충, 가의의 대화를 통해 신분과 직업의 귀천이 결코 인간의 지적, 도덕적 가치를 판가름하는 척도가 될 수 없음을 통렬하게 논증하였다. 저잣거리에서 점을 치는 미천한 자가 조정의 엘리트 관료들에게 부끄러움을 안겨주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든 이 일화는, 세속적 지위와 명망에 가려진 진실을 꿰뚫어보고자 했던 사마천 특유의 통찰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나아가 이 열전은 골계열전과 더불어 사마천의 열전 편찬 원칙이 지닌 폭넓음을 재차 확인시켜 준다. 그는 제왕과 장상뿐 아니라 배우, 점복가와 같이 사회적으로 주변화된 존재들에게도 응당한 역사적 지면을 할애함으로써, 참된 가치와 지혜가 반드시 권력과 신분의 중심부에서만 발현되는 것이 아님을 후대에 전하고자 하였다. 이는 궁형이라는 극한의 치욕을 겪고도 역사가로서의 소명을 저버리지 않았던 사마천 자신의 삶의 궤적과도 은밀히 공명하는바, 세상의 통념과 권위에 굴하지 않고 자신만의 정당한 자리를 지켜낸 이들에 대한 깊은 공감과 경의가 이 열전 곳곳에 배어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