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사는 이야기 ■/책 이야기-2 (사마천의 사기)

사마천의 『사기』 - 010. 장의열전(張儀列傳) — 혀 하나로 천하를 움직인 종횡가(縱橫家)의 삶과 전략

728x90
반응형
SMALL

 

 

 

 

 

 

 

 

 

사기(史記) 열전 제10편 ㅡ 장의열전(張儀列傳)

 

■ 서론(序論) — 말(言)로 싸우는 전국시대의 전장(戰場)

기원전 4세기 전후, 중국의 대지는 일곱 강국이 서로 맞물려 싸우는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칼과 창이 전장을 지배하던 시대였으나, 그와 동시에 혀와 말이 나라의 운명을 갈랐던 시대이기도 했다. 바로 이 시대에, 오직 언변(言辯) 하나로 여섯 나라를 분열시키고 진()나라의 패권을 공고히 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장의(張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열전(列傳) 10편에 수록된 장의열전(張儀列傳)은 전국시대 최고의 종횡가(縱橫家)이자 진나라의 재상으로서 이른바 연횡책(連橫策)을 구사해 천하의 외교 판도를 뒤흔든 장의의 생애와 전략을 생생하게 그려낸 열전이다. 소진(蘇秦)의 합종책(合縱策)과 정면으로 맞선 장의의 연횡책은 단순한 외교 술책이 아니라, 힘의 논리와 언어의 위력이 결합된 전국시대 정치 외교의 정수(精髓)였다.

장의열전은 사기 전체를 통틀어 가장 극적인 구성을 지닌 편 가운데 하나다. 장의의 굴욕적인 출발과 화려한 역전, 천재적인 변설(辯舌)과 가차 없는 기만(欺瞞), 나라를 뒤흔든 설득과 배신의 연속 속에서 사마천은 한 인간의 삶을 통해 권모술수가 지배하는 시대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하고 있다. 이 글은 장의열전의 서사를 따라가며 장의라는 인물의 본질과 그 역사적 의미를 살펴보고자 한다.

■ 본론 1 — 장의의 출신과 귀곡자의 문하(鬼谷子門下)

장의는 위()나라 출신으로, 귀곡자(鬼谷子)에게서 종횡술(縱橫術)을 배웠다. 귀곡자는 전국시대 최고의 책략가를 길러낸 전설적인 스승으로, 장의와 소진은 그의 가장 뛰어난 두 제자였다. 이 두 사람은 훗날 각각 연횡과 합종이라는 상반된 외교 전략을 들고 천하를 무대로 맞선다는 점에서, 귀곡자의 문하는 전국시대 외교사의 진원지(震源地)이기도 하다.

그러나 장의의 출발은 영광스럽지 않았다. 배움을 마치고 하산한 장의는 처음 초()나라 재상의 연회에 참석했다가 뜻밖의 봉변을 당한다. 연회 도중 재상의 벽옥(璧玉)이 사라지자 가난한 식객 장의가 의심받아 발가벗겨지고 심한 매질을 당했던 것이다. 장의는 끝내 자신이 무죄임을 주장했지만 소용없었다. 집에 돌아온 그에게 아내가 혀는 온전하오 라고 묻자 장의는 혀만 온전하면 충분하오 라고 답했다. 이 일화는 장의의 삶 전체를 관통하는 상징이다. 그에게 혀는 무기요, 자본이요, 존재 이유였다.

■ 본론 2 — 진나라로 가다: 연횡책(連橫策)의 탄생

굴욕적인 처지가 된 장의에게 손을 내민 것은 다름 아닌 동문 소진이었다. 당시 소진은 이미 여섯 나라를 잇는 합종책을 성사시켜 천하에 이름을 드높이고 있었다. 그런데 소진은 자신의 수하를 통해 몰래 장의를 도와 진나라로 가도록 유도하고 물질적 지원까지 아끼지 않았다. 그 이유는 절묘했다. 소진은 자신의 합종책을 위협할 수 있는 강자는 오직 장의뿐이라고 보았고, 그를 진나라로 보내 연횡책을 펼치게 함으로써 오히려 자신의 합종책을 더욱 긴장감 있게 유지시키려 했던 것이다. 훗날 이 사실을 알게 된 장의는 소진이 있는 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탄식을 내뱉었다고 전한다.

진나라에 입성한 장의는 혜문왕(惠文王)에게 연횡책을 제시함으로써 즉각 신임을 얻어 객경(客卿)이 되었고, 곧이어 재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연횡(連橫)이란 진나라를 중심으로 동쪽의 여섯 나라 각각과 개별적으로 동맹을 맺는 전략이다. 북에서 남으로 세로로() 여섯 나라를 묶는 소진의 합종책과 정면으로 맞서는, 동서로 가로지르는() 외교 전술이었다. 장의의 연횡책은 한마디로 진나라의 힘을 활용하되, 말로 적을 분열시킨다는 전략이었다.

■ 본론 3 — 기만과 설득의 외교: 상어의 땅 600리

장의의 외교 활동 가운데 가장 극적이고 논란이 많은 사건은 단연 초()나라를 상대로 벌인 이른바 상어(商於)의 땅 600리 기만 외교다. 장의는 초회왕(楚懷王)에게 접근하여 진나라와의 동맹을 맺고 제()나라와 단교하면 진나라가 상어의 땅 600리를 초나라에 바치겠다고 약속하였다. 탐욕스러운 초회왕은 이 말에 혹하여 당장 제나라와 국교를 단절했다.

그러나 초나라 사신이 진나라에 가서 땅을 요구하자 장의는 태연히 발뺌했다. 나는 6리를 약속했을 뿐, 600리는 기억하지 못한다고 잡아뗀 것이다. 분노한 초회왕이 진나라를 공격했으나 오히려 크게 패하고 영토까지 빼앗겼다. 이후 장의가 직접 초나라로 들어가 담판을 지으러 갔다가 잡혀 처형 직전에 몰리기도 했으나, 매수한 초나라 신하 근상(靳尙)을 통해 회왕의 총희(寵姬) 정수(鄭袖)를 움직여 기어이 풀려났다. 이 일화는 장의 외교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그는 약속을 지키는 신의(信義)의 외교관이 아니라, 목적을 위해서는 기만과 매수도 서슴지 않는 철저한 권모술수의 실행자였다.

장의의 연횡책은 철저하게 힘의 논리다. 강압적이고 기만적인 외교술로 제후국들을 무력화하는 데 앞장섰던 장의는 훗날 진시황의 천하 통일에 이바지하였지만, 역설적으로 힘과 모략을 앞세운 그의 외교술은 진나라의 멸망을 앞당긴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 본론 4 — 육국(六國)을 유세하다: 연횡의 완성

장의는 초나라를 시작으로 한((((() 각국을 차례로 순방하며 각 군주를 설득해 진나라와의 연횡을 완성시켰다. 그의 유세는 나라마다 상황에 맞는 맞춤형 논리를 구사했다. 강대국에는 진나라의 위세를 과시해 공포심을 자극하고, 약소국에는 실리를 강조하며 손을 잡도록 유도했다. 어느 경우에도 그의 혀는 멈추지 않았고, 그가 떠난 자리마다 나라의 방향이 바뀌었다.

위나라에 가서는 재상이 되어 직접 위왕을 설득해 소진의 합종 동맹을 탈퇴하게 만들었고, 한나라에서는 왕을 정면으로 압박해 굴복을 받아냈다. 제나라와 조나라, 연나라도 장의의 연횡 논리 앞에 차례로 무릎을 꿇었다. 진나라 혜문왕은 이 공로를 높이 사 장의에게 무신군(武信君)이라는 작호를 내렸다. 종횡가로서 장의가 도달한 정점이었다.

■ 본론 5 — 무왕의 즉위와 장의의 퇴장

그러나 권력은 영원하지 않았다. 혜문왕이 죽고 무왕(武王)이 즉위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무왕은 어릴 적부터 장의를 탐탁지 않게 여겼으며, 이를 눈치챈 신하들의 비방도 이어졌다. 장의와 왕의 관계가 예전만 못하다는 소문이 퍼지자, 여섯 나라는 다시 합종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외교의 세계에서 신뢰는 오직 힘에서 비롯됨을 다시 한번 보여준 순간이었다.

진나라에서 입지가 좁아진 장의는 스스로 자원하여 위나라로 가 재상이 되었다. 그의 마지막 계략도 여기서 드러난다. 장의는 진나라를 떠나면서 무왕에게 제나라가 나를 미워하므로 내가 위나라로 가면 제나라가 위나라를 공격할 것이고, 그 틈에 진나라는 주나라의 수도를 치고 천하 통일의 기반을 다질 수 있다고 진언했다. 죽는 순간까지 진나라를 위한 포석을 잊지 않은 것이다. 이후 장의는 위나라 재상으로 부임한 지 1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기원전 309년경의 일이다.

■ 결론(結論) — 장의가 남긴 유산과 사마천의 시선

장의의 삶은 전국시대라는 특수한 시공간이 만들어낸 하나의 극적인 드라마다. 그는 문벌도, 군사적 무용도, 재력도 없이 오직 언변과 전략으로 천하의 외교 판도를 뒤흔들었다. 합종과 연횡이라는 두 거대한 외교 흐름을 소진과 함께 주도하며 진나라의 패권 확립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그의 역할은 역사적으로 부인할 수 없다. 실제로 장의의 연횡책은 훗날 진시황의 천하 통일(기원전 221)을 가능하게 한 외교적 토대를 다지는 데 중요한 선례가 되었다.

 

그러나 사마천은 장의열전을 서술하면서 그를 마냥 영웅으로 그리지 않았다. 사마천의 붓끝에서 장의는 재능은 탁월하나 신의(信義)를 저버린 인물, 나라를 위해서라면 기만과 배신도 정당화한 전략가로 묘사된다. 특히 초회왕을 속인 상어의 땅 600리 사건은 장의 외교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다. 뛰어난 지략과 언변은 칭탄할 만하나, 그 수단이 도의(道義)에 반하는 기만이었다는 점에서 사마천은 장의에게 경탄과 불신이라는 두 시선을 함께 던진다.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사마천이 장의열전을 소진열전 바로 뒤에 배치하여, 합종과 연횡, 소진과 장의를 거울처럼 대비시킨 것이다. 소진의 합종이 여럿이 힘을 합해 강자를 견제하는 집단 외교라면, 장의의 연횡은 강자 중심으로 나머지를 흡수하는 단극(單極) 외교다. 이 두 전략의 충돌과 공존은 오늘날 국제 관계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보편적 패턴이다.

장의는 혀 하나로 역사를 움직인 사람이었다. 그 혀는 때로는 진실을 담기도 했지만, 더 자주 기만과 위협을 담았다. 그럼에도 사마천이 그를 열전에 당당히 기록한 것은, 도덕적 심판보다는 역사적 사실의 기록이라는 사가(史家)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장의열전은 결국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권력과 결합되고, 그 결합이 세상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전국시대가 낳은 가장 생생한 증언이다.

장의열전이 우리에게 던지는 물음은 오늘도 유효하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뛰어난 재능과 윤리적 책임은 어떻게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가? 말이 가진 힘은 어디까지 발휘되어야 하는가? 장의라는 인물을 통해 사마천은 2,000년이 지난 오늘에도 유효한 이 질문들을 조용히, 그러나 날카롭게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728x90
반응형
LIS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