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그 후㉙] 제41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최우수상 ‘노원책상’
- 기자명 서정필 기자
- 입력 2023.11.10 16:23
청사 단지 연계하는 로비 공간 정체성 명료하게 구축
적절한 질서의 스케일 제시해 본 청사 입구·신관 흐름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허브로 계획
노원구민 일상 스며드는 건축으로 변모
해마다 전국 각 지역에서는 그 지역에서 새로 지어진 건축물 중 탁월한 작품을 선정해 건축상을 수여한다. 심사위원들의 경탄을 자아내며 시기마다 건축문화를 선도했던 작품들은 주변 환경과 함께 잘 숨 쉬고 있을까? 대한건축사신문은 역대 수상작들을 다시 찾아 그 건축물들의 현재 모습을 살피고 설계를 담당했던 건축사와 건축주의 이야기를 듣는 기획을 마련했다. 스물아홉 번째 작품은 제41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최우수상 ‘노원책상’이다.
동네마다 대표 일꾼 격인 구청장이나 군수를 우리 손으로 직접 뽑기 시작한 것은 1991년부터다. 그 이전까지 구청장이나 군수는 임명직이었기에 각 구청이나 군청 역시 정부의 정책을 충실히 국민에게 전하는 역할만 담당하면 됐다. 따라서 공간의 외형은 딱딱한 느낌을 줬으며 일사불란(一絲不亂) 하게 필요 업무만 처리하러 다녀오는 곳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선거를 통해 각 지역 구청장이나 군수를 뽑게 되면서 구청은 행정 업무만 처리하는 곳이 아니라, 지역민의 여러 필요에도 응답해야 하는 공간이 됐다. 이 말은 건축적으로 1991년 이전 지어진 구(區)청사 등의 경우엔 예전 외형에, 새로운 필요도 담아내야 함을 뜻한다. 제41회 서울시 건축상 공공부문 최우수상 수상작 ‘노원책상’(조윤희 건축사, 구보건축사사무소)이 들어선 서울특별시 노원구청도 마찬가지다.
현재 노원구청 건물은 1990년 지어졌다. 구보건축사사무소 측은 이 건물을 “(1990년)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하면서 세월의 켜가 곳곳에 쌓인 건물”이라며 “당시 청사 건축이 대부분 그렇듯 큰 그림 없이 건물의 면적을 늘려온 터라, 전체 청사군의 허브 공간 역할을 해야 할 로비가 애매한 크기와 공간 구조로 중앙에 자리 잡게 되었다”라고 소개했다.
공공공간이 어떠한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성숙하지 않은 채 실행되었기에, 노원구청의 기존 로비 공간도 권위적인 공간 배치와 청사 각 부서의 오리엔테이션 기능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다. ‘노원책상’ 프로젝트 전의 노원구 청사는 구청 마당 지하주차장, 동쪽 보건소, ‘ㄱ’자 평면으로 돌출된 별관 등 복잡하게 얽힌 주변 건물과의 연계가 원활치 않아, 건물이 주는 느낌이 산만하고 여러 기능이 질서 없이 혼재하고 있었다. 설계자에겐, 복잡하게 얽힌 건축물과의 관계 속에 적절하게 개입해 질서를 잡아가는 어려운 고민이 주어졌다.
설계자는 여러 기능이 이렇게 혼재하는 환경을 정리하는 동시에 청사 단지를 연계하는 로비 공간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구축하고, 적절한 질서의 스케일을 제시해 본 청사의 입구, 식당, 지하주차장, 신관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퍼져나가는 허브로 계획하려 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이미 완성된 건축물 사이에서 새로운 가치를 지닌 공간의 정체성을 확보하는 것은 설계도 설계지만, 시공의 어려움도 상당한 작업이었기 때문이다. 2층 테라스를 없애고 1층 로비 층고를 확장했으며 로비 전면에 유리창을 설치해 환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중앙에 배치된 970㎝ 길이의 대형 원목 책상은 특히 이곳 분위기를 돋보이게 한다.
2018년 설계를 시작해 2022년 3월 완성된 ‘노원책상’은 이렇게 때로는 도서관으로 때로는 소규모 공연장으로 변신해 노원구민의 일상에 스며들고 있다.
다음은 설계자 조윤희 건축사와의 일문일답이다. 질의 응답에는 설계 과정을 함께했던 홍지학 충남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도 함께했다.
조윤희 건축사, 홍지학 교수와의 일문일답
Q. 이 건축물을 설계하시게 된 과정과 설계 과정에서 특히 염두에 뒀던 점에 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노원구청 로비 문화휴게공간 조성 공사’라는 복잡한 명칭의 공모전에서 시작된 본 프로젝트는 작은 볼륨의 로비공간을 키우고, 내부에 북 카페를 중심으로 구민들을 위한 휴게 공간을 조성하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설계공모 공모지침서에 간단하게 서술된 브리프와 달리, 복잡하게 얽힌 청사 건축물 군의 관계 속에서 아키텍트에게 요구되는 것은 적절한 개입을 통해 건물의 질서를 잡아가는 고난도의 작업이었습니다.
노원구청은 청사가 신축된 1990년 이후 여러 차례 증축을 거듭하면서 시간의 켜가 곳곳에 쌓인 건물이었습니다. 당시의 청사 건축이 대부분 그렇듯이 계획적으로 마련된 마스터플랜 없이 건물의 면적을 늘려온 터라, 전체 청사군의 허브 공간 역할을 해야 할 로비가 애매한 크기와 공간 구조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구청 마당의 지하주차장, 동측의 보건소, ‘ㄱ’자 평면으로 돌출된 별관동 등 복잡하게 얽힌 주변 건물과의 연계가 원활하지 않아서, 노원구청 건물군 전체의 중추적 공공공간으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기 어려웠기에 공간의 구조와 흐름을 개선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Q. (앞 질문에서의) 염두에 뒀던 점을 어떻게 구현하셨는지요?
그 해결책으로 로비 문화휴게공간이 지역 사회의 라운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양한 필요에 의해 청사를 방문한 주민들이 느슨하게 시간을 잠시 보낼 수 있는 건축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는데, 우리는 이 장소를 ‘풍경을 발산하는 도시의 거실’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도시의 일부분으로 존재할 수 있도록 주재료 사용에 주의를 기울였는데, 기존 청사 건물군의 주 마감재인 백색타일과 이질적이지 않으면서, 유지 관리의 측면도 고려했습니다. 밝은 베이지색의 테라코타를 오픈조인트로 외벽 시공하였으며, 내부에도 비슷한 계열의 테라코타로 벽체를 마감하여, 외부와 내부, 도시와 공공건축의 연속성이 자연스럽게 확보되도록 했습니다.
‘풍경의 발산’은 외부에서 들여다보이는 로비 공간의 내부 풍경을 어떻게 틀 짓느냐와 관계됩니다. 로비는 다양한 활동들이 동시에 전개되는 장소이기 때문에, 이러한 상황을 선명한 프레임에 담고자 했습니다. 외벽체는 전체가 바닥으로부터 2.4m 들어올려지고, 그 하부에 32mm 두께의 광폭 슬라이딩 알루미늄 프레임창호가 트랜섬(transom) 없이 전체를 가로지릅니다. 외벽 전체를 커튼월 아트리움으로 만들어 공간의 크기를 강조하기보다는 묵직한 테라코타 벽체 밑으로 기둥의 간섭 없이 가로로 긴 풍경을 열어두어 구청을 방문하는 시민들에게 보다 휴먼스케일에 가깝게 내부를 비추어 보여주고, ‘눈높이의 투명함’을 경험하도록 의도했습니다.
Q. 설계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기존 구조물에 덧대어 새롭게 로비 공간을 규모를 키워 덧붙이는 것은 다양한 기술적 이슈를 수반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로비 문화휴게공간이 가구로 만들어진 열린 건축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에, 철골조로 증축하는 로비에 신설되는 기둥의 개수와 사이즈를 최소화하며 공간의 질서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한 숙제였습니다. 지하 식당에 마이크로파일(micropile)을 설치하여 신설 기둥과 슬라브를 지지할 수 있도록 하였고, 신설 기둥의 숫자를 줄이기 위해 철골보를 바로 기존 콘크리트 보에 연결하는 시스템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서로 다른 구조 시스템 간의 거동 차이로 인해 지붕구조물의 균열과 방수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구조기술사와 구청관계자, 구보건축은 긴 시간에 걸친 지난한 협의과정을 거쳤습니다. 또한 구건물과 신건물 사이의 이격, 균열을 고려하여 연결부 상세 설계에서 과하다 싶을 만큼의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기존에 완성된 구조물의 사이를 파고들어 새로운 장소를 덧붙이는 것은 계획의 측면뿐 아니라, 시공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돌발 상황이 있었기에, 감리 역할을 수행한 구보건축은 시공단계에서도 밀착하여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Q. 건축설계를 시작하면서 가진 건축적 지향점이 있다면?
건물은 홀로 존재하지 않고, 언제나 대지의 컨텍스트 안에서 관계를 맺으며 만들어집니다. 그렇기에 용도와 규모, 그리고 설계자의 의도와 상관없이 모든 건물은 일정 정도의 공공성을 태생적으로 지닌 존재입니다. 그러한 건축의 공공성이 극대화해서 드러나는 곳을 우리는 건물의 문지방 공간(Threshold)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이곳은 건물을 드나들 때마다 거쳐가는 일상적인 곳이며, 동시에 건축과 도시가 만나는 접점이기 때문에, 그 부분을 얼마나 섬세하게 계획하는지가 건축과 도시를 보다 풍부하게 만들어주는 핵심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목적성이 옅은 공간이기 때문에 건물의 주요 공간에 비해 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보건축은 의식적으로 문지방 공간의 설계를 세심하게 해서 도시와 건축이 자연스럽게 만나고, 공공성을 확대하고, 사람들이 더욱 좋은 공간들을 경험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좋은 물리적 환경을 만들어서 사회에 돌려주는 것이 건축사가 할 수 있는 사회적 역할이며, 동시에 건축사의 작업을 더욱 생명력 있게 만들어주는 원동력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Q. 그 지향점을 이 작품에 잘 반영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노원구청의 로비공간은 문지방의 특색을 정확하게 가지고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에 평소에 믿는 바가 실제로 구현되는 좋은 사례를 만들고자 했습니다. 다행히 구보건축에서 노력하는 만큼 발주처(노원구청)와 시공사(하나건설)에서 최대한 협조해 주었으며 여러 사람들의 노력과 진심에 힘입어 좋은 공간이 만들어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이번 수상이 건축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최근 들어 건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으나, 관심의 초점이 건축물의 특이한 형태나 값비싼 재료 사용 등에 맞추어지는 것은 아쉽습니다. 그건 사람들이 좋은 공간을 느껴보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렇다는 생각을 합니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열려있는 공공건축이 좋은 공간을 가진다는 것은 일부 사람들에게만 사용이 한정되는 민간건축에서 좋은 결과물을 만드는 것 이상의 의미와 파급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건축상은 평소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소수의 집단에 국한된 생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의미가 있는 작업임을 확인받고 격려 받는 기회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어 공공건축의 저변이 넓어지는데 일말의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더욱 큰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Q. 근래 들어 관심을 두고 있거나 설계에 적용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도시는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와 같다는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공공청사도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지역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에 크고 작은 변화를 수반하였고, 건축도 이에 맞추어 변경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노원구청 로비 문화휴게 공간 프로젝트는 도시에서 공공건축이 담당해야 하는 역할의 변화를 감지한 좋은 의도에서 시작되었고, ‘지역사회의 라운지’라는 화두를 저희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현대적 의미의 공공성은 무엇이며, 건축적으로 어떤 개입이 필요하고, 또 가능한지 고민해 보는 좋은 계기였습니다. 이에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지역사회의 라운지’를 많이 만들어내는 건축작업을 지속하고 싶습니다.
출처 - [수상 그 후㉙] 제41회 서울특별시 건축상 공공부문 최우수상 ‘노원책상’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ncnew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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