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자료실 ■/스크랩 - 건축사신문(대한건축사협회)

서양근대건축사 산책(6) - 장식과 범죄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서양근대건축사 산책(6) - 장식과 범죄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 기자명 강태웅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  입력 2012.11.01 10:06
  •  

아돌프 로스의 골드만&살라쉬 스토어와 루이스 설리번의 카슨피리스콧 백화점

폭군으로 여겨 왕으로서 묘호조차 받지 못하고 군으로 강등된 이 혼이 ‘광해’라는 영화로 화재다. 광해군을 폭군이며 패륜아로 기록한 것은 인조반정 후 권력을 잡은 자들이 실록을 수정했기 때문이다. 역사는 승리자의 기록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건축역사도 예외는 아닐 터, 그런데 건축역사는 운 좋게 건물들이 남아 있는 경우 그 진의의 파악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

 

▲ <사진1> ⓒ강태웅

 

우측의 건물<사진 1>은 시카고파의 거두(巨頭)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 1856~1924)의 카슨 피리스콧 백화점 건물이다. 이 건물은 근대주의 역사가 지크프리트 기디온의 “공간, 시간 , 그리고 건축’이라는 책에서 근대적 기능주의 건물의 한 예로 등장한다. 장식 없는 명징한 구조적 표현은 근대주의건축이 표방하는 기능적 순수성을 상징하는데 적합했다. 게다가 설리번은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는 기가 막힌 경구를 만들어내지 않았던가. 시카고창을 박아놓은 명징한 하얀 구조체와 형태가 기능에 좌우된다는 이 경구, 뭔가 딱 들어맞지 않은가.

 

좌측의 건물<사진 2>은 아돌프 로스(Adolf Loos: 1870~1933)의 골드만 & 살라쉬 스토어 건물(로스하우스라고도 불리기도 한다)이다. 이 건물은 당시 보수파에게는 맨홀 뚜껑 같은 건물로 혹평을<사진 3>, 진보파에게는 새 시대 양식의 전조로 극찬을 받았다. 1908년, 로스는 ‘장식과 범죄’ (Ornament and Crime) 라는 짧은 글을 발표했고 그 이듬해에 사각형의 창이 가지런히 배치된 백색의 순수한 입면을 설계해 마치 1908년 글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했으니 반 역사주의자들은 좋아할 수밖에… 그런데 건물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을 조금만 내리면 두 건물에서 좀 이상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설리번 건물의 저층 부분에는 유기적인 장식이 덕지덕지 붙어있고 로스의 건물에는 스케일을 달리한 고전건축의 오더들이 박혀있다.<사진 4> 이건 뭐지? 아직 시기가 시기라 역사주의의 때를 벗지 못한 것인가? 두 건물에 환호를 보냈던 자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시도들은 참 좋았으나 아직은 잔재가 남아있다고…

 

▲ <사진2> ⓒ강태웅
 
▲ <사진3> ⓒ강태웅
 
▲ <사진4> ⓒ강태웅
 
 

그게 아니다. 설리번이 의미했던 기능은 근대주의자들의 기능과는 좀 다른 기능이고 로스는 ‘장식이 범죄’라고 한 적이 없다. 분명히 ‘장식과 범죄’라고 했지. 설리번의 경구는 ‘예술적 관점에서의 고층건물’(1896)이라는 글에서 찾을 수 있는 문장의 일부다. 이 글에서 설리번은 여러 층을 포개놓은 건물의 유형이 사회에서 건물에 요구하는 새로운 기능(새로운 비즈니스 스타일, 수직 동선의 확장, 부동산 가격의 상승 등)에 반응해서 나온 필연적인 결과물임을 강조하기 위해 이 경구를 사용했다. 근대주의자들이 생각한 기능의 의미보다 좀 복잡한 의미의 기능이다.

로스는 예술과 공예를 구별했다. 그리고 건축을 공예의 범주, 즉 일상성의 범주라고 생각한 거다. 예술의 순기능을 로스는 대 사회적 비판과 집산적 기억의 표현으로 봤다. 예술로서 건축의 역할은 이 중에서 단지 집산적 기억에 표현에 한정지었다. 로스는 장식을 예술행위의 상징적 대체물로 생각한듯하다. 로스가 범죄라고 생각한 것은 일상성의 영역에서 미학적 행위가 판을 치는 당시의 건축적 작태였다. 로스는 특히 제제션(Sezession)이라는 오스트리아 에술운동에 질겁했다. 두 건물로 돌아가 보자. 설리번의 건물은 도시의 이중성에 반응한 거다. 소비와 판매의 세계와 업무의 세계다. 하부 층은 백화점, 럭셔리한 소비의 세계에 반응한 반면 상부 층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로스의 건물에서 상부는 일상성의 영역, 거주공간이다. 반면 하부는 불특정 다수, 보행자들의 영역이며 오래된 성당과 왕궁이 있는, 건물 앞 미하엘 광장에 반응하는 집산적 기억의 영역이다. 뭔가 묘하게 비슷하지 않은가.

 

건축사가 프렘프톤(Kenneth Frampton: 1930 ~ )은 로스의 ‘장식과 범죄’가 1892년도에 발표된 설리번의 ‘건축에 있어서 장식이라는 것’(Ornament in Architecture)에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한다.

 

 강태웅 단국대학교 건축학과 조교수 .
 

출처 - 서양근대건축사 산책(6) - 장식과 범죄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 대한건축사협회 건축사신문 (ancnews.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