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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는 이야기 ■/매화 기행

매화-2023-007. 다자이후텐만구 신사의 매화들 (2023.02.18.)

 

 

 

 

 

 

 

 

 

규슈의 서북쪽에 있는 후쿠오카(福岡県)는

지리적으로 왼쪽 사가현(佐賀県)· 나가사키 현(長崎県)과 함께 오래 전부터

한반도와 중국대륙 등 외국의 문물을 받아들여 일찍부터

크게 발전한 지역이다.

 

아무튼 후쿠오카 현은 36,782km²에 인구 약1,300만 명(2016년)이고,

현청 소재지는 후쿠오카 시인데, 후쿠오카 시는 시내를 남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나카가와(那珂川)를 중심으로 바닷가인 동쪽은 상업지역인 하카다시,

서쪽은 후쿠오카 시로 각각 별개의 도시로 발전해오다가 메이지 유신 이후인 1889년

후쿠오카 시로 통합되었다.

 

현재 510만 명(2017년)이 살고 있는 후쿠오카 시는

‘규슈의 수도’라고도 말하기도 하지만,

규슈 지방의 역사와 유적을 보존하고 있는 곳은 7세기 후반부터 규슈 전역을 통치하던

다자이후(太宰府)시이다.

 

후쿠오카에서 다자이후까지는 자동차로 약40분 거리이고,

대중교통은 하카다역 버스터미널 11번 정류장에서 다자이후 행 직행버스를 타면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또, 니시테츠 후쿠오카 텐진역(西鉄福岡)에서 다자이후행 열차를 타거나

하카다역 앞 A정류장에서 톈진까지 가는 버스를 탄 뒤 톈진의 니시테츠후쿠오카역에서

니시테츠다자이후(西鉄太宰府線)행 사철을 갈아타면 30분 정도 걸린다.

 

 

 

 

 

 

 

 

 

 

 

 

 

 

 

 

 

역 앞 네거리에서 우회전하면 텐만구 신사로 가는 골목이다.

이곳에서 신사까지 약200m쯤 되는 골목 양쪽에는 일본 어느 신사나 사찰 가는 길처럼

잘 다듬은 돌로 포장한 골목이고,

길 양쪽에는 기념품가게와 카페, 맛집이 즐비하다.

이곳에서는 매화꽃 모양의 떡(うめかえの もち)’이 특히 인기인데,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진다고 한다.

 

골목의 끝부분에 이르면 도리이(鳥尾)가 잇달아 세워져 있어서

신사 입구에 도달했음을 알게 하는데,

도리이는 신과 인간을 이어주는 전령사라고 믿는 일본의 신앙으로서

우리의 삼한시대에 전통신앙이던 솟대와 같은 기능을 한다.

 

삼한시대에 질병과 재앙이 없기를 기원하는 염원에서

주로 마을 입구에 솟대를 세웠는데,

점점 신앙심이 커지면서 성스러운 곳에도 세우게 되었다.

이런 지역을 소도(蘇塗)라고 하며, 범죄자들이 소도로 피신하면

붙잡지 못할 정도로 성역이었다고 하는 기록이 중국의 사서인 후한서(後漢書)·

진수의 삼국지 위지 조선전 · 진서(晉書)· 두우의 통전(通典) 등에

많이 기록되어 있다.

 

 

 

 

 

 

 

 

 

 

 

 

 

 

스가와라노가 죽은 지 16년 뒤인 919년에 세워진

텐만구 신사는 입장료가 없다.

그러나 일본 국보 등을 전시하고 있는 호모쓰덴(寶物館)과

본전 뒤에 스가와라노의 일생을 하카타 인형으로 전시하고 있는

스가와라노 기념관을 입장하려면, 각각 300엔, 200엔의

입장료를 내야 한다.

 

도리이가 잇달아 있는 마지막 지점에

큼지막한 황소가 앉아있는 고신규(御神牛)조각상이 있는데,

고신규는 스가와라노가 죽은 후 그의 시체를 옮기던 소가 이곳에서 꼼짝하지 않고 멈추자

그곳에 신사를 지었다고 하는 전설을 갖고 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신사 입구에 세워진 신으로 받드는 고신규와

본전 앞에 있는 고신규만을 보고 돌아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텐만구 신사 안에는 모두 11개의 고신규가 있다.

 

그러고 보면 스가와라노의 시체를 옮기다가 주저앉았다는 황소의 위치가

어느 곳인지 약간 애매하지만, 아마도 본전 앞 우측에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고신규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그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속설이 있어서

황소의 머리는 참배객들의 손길로 반질반질하게 빛이 난다.

 

고신규 동상 앞에서 왼쪽길이 신사로 가는 길인데,

연못 심우지(心宇池) 위에 놓은 다리는 붉은 색을 칠했는데,

평면이 아니라 아리랑 고개처럼 완만한 경사를 세 번 굽어져 지나도록

설계된 것이 매우 낭만적이다.

이 다리를 다이코바시(太鼓橋)라고 하며,

다리 위에서 돌아보는 연못과 신사, 도리이 풍경이 매우 아름답다.

이곳이 텐만구 신사의 포토 존이다

 

 



 

 

 

 

 

 

 

 

 

 

다리를 건너면 정면에 본전 입구임을 알리는

돌로 만든 큼지막한 도리이가 우뚝 서있고, 주변은 온통 수백 년을 살아왔음직한

고목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그 도리이를 지나면 왼편에는

신사마다 참배하기 전에 손을 깨끗하게 씻는 히사쿠(久キュ)가 있고,

도리이 오른쪽에는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좌천되어 온 스가와라노를 찾아

‘날아왔다’고 하는 커다란 매화나무 도비우메(飛梅)가 있다.

 

다자이후의 경내에는 약6,000그루의 홍백, 매화가 있어서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마치 매화 밭에 온 착각을 느끼게 하며,

그밖에도 약 40종 3만 포기의 창포 등 계절마다 다양한 꽃을 즐길 수 있다.

신사에서는 본전 오른쪽의 매화나무 ‘도비우메’가 가장 인기이다.

 

텐만구의 도비우메는 일본 전 지역에서 가장 먼저 매화가 피는 것으로도 유명하고,

또 매년 2~3월이면 6천여 그루의 매화꽃이 필 무렵이면

전국 각지에서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마치 우리네 순천 선암사 매화와 구례 화엄사의 흑매(黑梅)를

보러가는 사람들처럼.....

 

 

 

 

 

 

 

 

 

 

 

 

 

 

 

 

 

 

도리이가 우리네 사찰의 일주문격이라고 한다면,

도리이를 지나 붉은 칠을 한 2층 누문은 신사 본전으로 들어가는 사찰의 금강문쯤 된다.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전은 그 안쪽에 자리 잡고 있는 본전(本殿)인데,

텐만구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의 기술로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본전은 1591년 세워졌으며, 일본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었다.

 

본전 오른쪽에는

위패를 모신 여섯 개의 자그마한 목조 비각이 세워져 있는 것이 고즈넉하다.

본전 담장 왼편으로 고목이 있는 바깥 건물은 신사의 사무소와

향전(香殿) 건물이 상당히 길게 지어졌다.

 

신사 오른쪽 약간 높은 위치에 국보 등을 전시하고 있는 보물전이 있고,

연못을 건너기 전에 오른쪽 길로 질펀한 음식점들이 밀집한 공간을 지나면

규슈국립박물관으로 통하는 에스컬레이터 입구가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는 관청 유적지가 아니라

스가와라노를 모신 신사로서 하나의 관광지이자,

매년 입시철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합격을 기원하거나 취업을 바라는 참배자들이

모여들어 참배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글 출처 : 디트NEWS24 - 정승열 netcolor2@naver.com)

 

 

 

 

 

 

 

 

 

 

 

 

 

 

 

 

 

 

 

 

 

 

 

 

 

 

황후의 매화

 

 

 

 

 

 

본전의 앞마당에 두 그루 매화나무(홍매화, 백매화)가

서로 마주 보며 서 있다.

우측의 백매화가 잘 알려진 전설의 `토비우메(飛梅)'이다.

 

간코(管公; 스가와라노 미치자네의 별칭)가 떠난 후,

주인을 그리워하던 본가의 매화나무가 다자이후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 한다.

누군가는 본가에 남겨져 외롭게 죽은 부인의 혼령이 찾아와 그리움을 새긴 나무라 하지만,

아마도 스가와라가 죽은 후 그를 추앙하던 사람이 이곳에 심은 매화나무일 것이다.

이후 토비우메는 이들의 신목(神木)이 되어 10대를 이어오면서,

본전의 앞뜰에 연연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다자이후 텐만구 경내에는

200여 종, 6000여 그루의 매화나무가 심어져 있는데

이곳의 매화는 다른 지역보다 먼저 피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중에서도 토비우메가 제일 먼저 망울이 맺고 꽃이 핀다고 한다.

 

매년 2∼3월에는 텐만구 경내 전체에 매화가 만발해

멀리서 보면 뽀얀 안개가 낮게 드리운 것처럼 장관을 이룬다.

토비우메의 전설은 스가와라의 사후에 만들어진 것이지만,

천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에도 매화라는 상징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숭앙(崇仰)하는 아름다운 이야기다.

 

 

 

 

 

 

 

 

 

 

날아온 매화

 

 

 

 

 

 

도비우메(날아온 매화, 飛梅)

 

 

 

東風吹かば 匂ひをこせよ 梅の花 

 

主なしとて 春な忘れそ

 

동풍이 불거든 향기를 보내다오, 매화꽃이여.

 

주인이 없다 해도 봄을 잊지 말지니

 

 

3월 초순의 비오는 날 오후,

일본 규슈 후쿠오카 교외에 있는 다자이후 텐만궁(太宰府 天満宮)을 찾았다.

본전 앞 우측에 있는 비매(飛梅 도비우메)를 보았다.

‘飛梅’라고 적힌 표시판이 있고,

안내문에는 "천신(天神) 스가와라 미치자네(菅原道真)가

교토의 집 정원 앞에 있는 매화와 작별하면서 와카(花歌)를 읊었다.

그런데 주인을 못 잊어하던 매화가 교토에서 다자이후로 날아와

하룻밤 사이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다"고 적혀 있다.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학문의 신’이 된 실존인물이다.

그는 845년에 학자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신동(神童)이라 불렸다.

할아버지 기요토모는 뛰어난 유학자였고,

아버지 고레요시도 대학 문장과(文章科)의 수장인 고위 관료였다.

일설에 의하면 스가와라 가문은

백제에서 건너간 왕인 박사의 후손이라고 하고,

혹은 왕인의 문인이라고 한다.

 

스가와라는 열한 살 무렵 집 뜰에 핀 매화를 보고

한시를 지을 정도로 총명했다.

 

 

달이 하얗게 비추니 마치 눈 내린 듯하고(月燿如晴雪)

 

매화꽃은 빛나는 별 같구나. (梅花似照星)

 

금빛 거울(달)이 하늘에서 비추고 (可憐金鏡轉)

 

정원에 핀 옥구슬(매화)이 온 뜰을 향기로 채우는구나. (庭上玉房馨)

 

 

 

 

 

 

 

 

 

 

 

 

 

 

 

 

 

스가와라는 18세 때 과거에 합격한 후 능력을 인정받아 승승장구 했다.

891년에 다이고 천황은 그를 우대신(우의정)으로 임명했다.

스가와라의 딸이 천황의 황후가 되고 스가와라가 세력을 확대하자,

귀족출신 세도가인 좌대신 후지와라 토키히라(藤原時平)는 음모를 꾸며

901년에 스가와라를 규슈 다자이후 권수(権帥)로 좌천시켰다.

이를 ‘쇼타이의 변’이라 한다.

 

사실상 유배살이 한 스가와라는 술로 실의의 세월을 보냈다.

끼니마저 거르자 한 노파가 ‘매화가지에 꽂은 찹쌀떡(우메가에모찌 梅ケ枝餠)’을 건넸다.

스가와라 미치자네는 이 떡을 맛있게 먹으면서 노파에게 시 한 수씩을 건넸다.

 

스가와라는 다자이후로 좌천된 지 2년 만인 903년에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의 관 위에는 매화 한가지와 찹쌀떡만이 얹어졌다.

유해를 소달구지에 싣고 장지로 향하던 중 황소가 갑자기 멈췄다.

이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별수 없이 스가와라의 시신은 이곳에 묻혔다.

천만궁 입구에는 청동 황소가 있는데 황소 얼굴과 코는 유난히 반질반질하다.

이 부분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단다.

 

 

 

 

 

 

 

 

 

 

 

 

 

 

 

한편, 스가와라가 죽은 후 교토 조정은 액운이 잇따랐다.

정적(政敵) 후지와라가 909년에 급서(急逝)한 것을 시작으로,

다이고 천황의 세자인 야스아키라 친왕이 923년에 서거했고,

천황의 세손 요시요리도 925년에 죽었다.

5년 뒤인 930년에 황궁 청량전(清涼殿)에서 조정 회의 중에 갑가지 벼락이 떨어졌다.

이리하여 조정 대신들이 다치거나 죽었고, 다이고 천황도 충격을 받아

3개월 만에 붕어했다.

 

조정은 이것을 스가와라 미치자네의 저주로 여겨

스가와라의 원령을 '뇌신(雷神)' 으로 추앙했다.

그리하여 교토와 다지이후에 덴만구(天満宮)를 지었다.

세월이 흘러 재해가 사그라들자 스가와라는 ‘벼락 신’에서 ‘학문의 신’으로 변신했다.

우메가에모찌 노파도 신으로 추앙받았는데 대명신(大明神)이 되어

근처의 정묘원(淨妙院) 절에 모서져 있다.

 

본전 앞에는 비우메와 마주보고 홍매화(紅梅花)가 피어있다.

‘황후의 매화’이다.

이 두 그루 매화가 신목(神木)이 되어 이곳에 6천 그루의 매화가 있단다.

특히 뒤뜰에 많다.

 

 

텐만궁은 시험 합격을 기원하기 위해 연간 800만 명의 참배객이 모인다.

신궁 주변에는 합격을 기원하는 메모장들이 주렁주렁하다.

심지어 한글로 적힌 기원문도 있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반드시 ‘우메가에모찌’를 먹는다.

이 떡을 먹으면 병마를 물리치고 정신이 맑아져서 공부가 잘 된단다.

필자도 먹었는데 바싹 구운 맛이 담백하다.

 

관광지에 사람이 몰리는 것은 볼거리 · 먹거리도 중요하지만

스토리도 한 몫을 한다.

전라도 관광에도 도비우메 · 우메가에모찌 · 황소 같은 스토리를 입히자.

그래야 관광이 활성화된다.

(글 출처 : 시민의소리 - 김세곤 호남역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