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부산 등대] 21. 칠암등대
칠암은 가히 등대 포구라 할 만하다.
형상도 모양도 제각각인 등대가 여럿이다.
한눈에도 눈길을 끄는 야구등대를 비롯해 갈매기등대 붕장어등대가 나란히 서 있다.
등대가 선 뒤로는 칠암으로
사람도 몰리고 고기도 몰린다니 참 잘된 일이지 싶다.
칠암에서는
등대에 가려
바다가 바로 보이지 않는다
칠암 바다는
등대에 가린 바다
사람들은
바다를 온전히 보지 못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가야 할 곳으로 간다
하루에도 몇 번
나에게서 떠나려는 마음
칠암에서는
등대에 가려
마음을 떠나보내지 못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거나
가야 할 곳으로 간다
- 동길산 시 '칠암등대'
등대는 무던하다.
말 갖고 싸우는 일이 없다. 말 갖고 상처받는 일이 없다.
등대는 등대마다 등대의 언어가 있어 그 언어로 끊임없이 말을 주고받는다.
끊임없이 교신한다.
그러다 보면 어긋나고 뒤틀리기도 하련만 엉키고 꼬이기도 하련만
등대는 무던해서 다 받아들인다.
무던해서 찌르지도 않고 찔리지도 않는다.
칠암등대는 등대 중에서도 무던한 등대.
한둘이 아니고 여럿인 칠암등대는 등대마다 제 색깔이 있고 제 버릇이 있다.
색깔을 내세우고 버릇을 내세워 언성 높일 만도 한데 칠암등대는 무던해서
시비 붙는 일이 없다.
핏대 세울 만도 한데 달아오르는 일이 없다.
다른 등대가 말을 하면 끄덕끄덕, 등대가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등불이 깜박깜박 들어온다.
칠암등대는 셋.
야구등대 붕장어등대 갈매기등대다.
셋이지만 칠암에서 보이는 등대는 이보다 많다.
왼편 끄트머리에 문중등대가 보이고 오른편에 신평등대가 보인다.
그래서 칠암에서 보이는 등대는 다섯. 셋도 아니고 넷도 아니고 무려 다섯이다.
차에서 내려 바다를 좀 보려고 하면 이 등대가 시야를 가리고 이 등대를 피하면
저 등대가 가리는 곳이 칠암이다.
칠암등대 셋은 조형등대.
등대 고유의 기능에다 지역 특성을 살린 디자인 개념이 들어간 등대다.
조형등대는 전국적으로 스물둘이 있다.
부산에만 열둘인가 열셋 절반이 넘고 그 가운데 셋이 칠암에 있다.
부산이 등대의 도시로 불리는 이유고 칠암이 등대의 포구로 불리는 이유다.
조형등대는 홍보대사.
지역을 알리고 지역을 찾게 해서 지역 경제에 윤기를 불어넣는다.
"야구등대 생기고 나서 계속 만선이랍니다."
부산관광공사 최부림 차장은 야구등대 민간인 명예등대장이다.
등대 출입문 열쇠를 소지해 언제든 출입이 가능하다.
가끔 들어가서는 청소를 하기도 하고 머리를 식히기도 하는 눈치.
등대는 일반인 출입이 엄금된 곳.
그에게 잘 보이면 등대에 들어갈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다.
명예등대장답게 등대 자랑을 늘어놓는다.
야구등대가 생기면서 그 기운이 하늘을 찌르고 바다를 찔러 고기가 잘 잡힌다고 한다.
계속 만선이라고 한다.
부산관광공사 전신은 부산컨벤션뷰로.
뷰로와 부산해양항만청이 등대 자원화 협약을 맺은 게 2010년.
부산은 야구도시이니 칠암에 야구등대를 세우자는 안을 뷰로에서 등대 관리부처인 항만청에 내었고
등대가 세워지면서 명예등대장으로 최 차장이 임명된다.
야구등대가 알려지자 한적한 어촌에 관광버스가 주말이면 다섯 대나 찾아오고
식당이며 건어물 좌판은 호황을 누린다.
식당과 좌판이 잘 되니 배도 흥이 나서 고기가 잘 잡히는 모양.
계속 만선인 모양.
야구등대는 흰색. 정식 명칭은 칠암항 남방파제등대다.
조형등대답게 외양에 개성이 철철 넘친다.
야구글러브와 공과 배트를 한데 모은 형상이다.
가로 세운 배트 뭉툭한 윗부분에 등불이 들어온다.
녹등이 4초에 한 번 깜박인다.
'바다와 야구를 사랑하는 시민의 뜨거운 열정을 담아' 세웠다는 안내문이
직사광선을 받아 뜨겁다.
외양도 그렇고 내부도 개성이 넘친다.
등대 내부에 최동원 투수 사진과 그가 세운 기록이 전시돼 있다.
부산 경원고 국어선생 김요아킴 시인의 시
'칠암바다엔 야구장이 있다' 시화 패널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게 흠이라면 흠.
등대 가는 방파제 길목에 매년 12월 배달해 드린다는 편지함이 앙증맞다.
칠암 갈 때는 엽서 한 장 챙겨 가면 좋을 듯.
마디 하나 토씨 하나에 어긋나고 뒤틀린 그대에게 해명이랄지 사과랄지
속에 있는 말 속 시원히 털어놓으면 좋을 듯.
야구등대에서 문중등대 방향으로 바라보면 등대 셋이 줄줄이 보인다.
바로 앞 일자방파제 붉은색은 갈매기등대.
갈매기와 떠오르는 해를 조형한 등대다.
한국에선 아마 가장 최근에 세운 등대이지 싶다.
정식 명칭은 칠암항 북방파제 남단등대. 홍등을 4초에 한 번 깜박인다.
같은 방파제 노란색 등대 정식 명칭은 칠암항 북방파제 북단등대.
일본말로 아나고인 붕장어가 칠암에서 판을 쳐 붕장어등대로도 불린다.
월전 장어등대처럼 붕장어 배배 꼬인 몸통을 조형한 등대다.
노란색 등불을 4초에 한 번 깜박인다. 갈매기등대와 생일이 같다.
붕장어등대 너머론 문중마을 문중등대. 흰색이며 녹등을 6초에 두 번 깜박인다.
"가지메기도 되고 납새미도 되지요."
야구등대로 가는 노천은 납새미 말리는 노천.
사람 다니는 길까지 차지한 납새미는 하나같이 두툼해 침을 꿀꺽 삼키게 한다.
납새미 너는 아낙에게 무슨 고기냐고 묻자 '가지메기'란다.
초보 낚시꾼이긴 하지만 가지메기는 농어 새끼로 알던 터에 따지듯 재차 묻자
가지메기와 납새미는 같은 거라고 둘러댄다.
두툼한 참납새미 20마리가 3만 원! 명태 말린 '코다리'도, 미역귀 달린 '귀다리'도
칠암등대 덕을 톡톡히 보는 중이다.
칠암은 왜 칠암일까.
일곱 바위가 있다고 해서 칠암이고 옻칠한 듯 윤기나는 바위가 있다고 해서 칠암이다.
야구등대 건립 안내문에 '이곳 거칠바위에 밝은 등불을 밝힌다'는 구절이 보인다.
거칠바위가 곧 칠암일 듯.
가는 길. 37번 180번 시내버스를 타면 된다.
노선은 늘 하는 말이지만 인터넷 참조. 기장시장에서 3번 9번 마을버스가 다닌다.
갈매기등대
칠암 노천광장 정면에 보이는 등대는 셋.
셋 가운데 가운데 등대가 갈매기등대다.
막 떠오른 붉은 해를 배경으로 갈매기가 날개를 쫙 펴고 날아가는 조형등대다.
2012년 11월 15일 오후 3시 준공식을 가져 부산에선 나이가 가장 어린 등대다.
"부산시민이 얼마나 야구를 사랑하는지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준공식에 이어 곧바로 야구등대 최동원 선수 미니기념관 테이프 커팅 행사가 있었다.
기념관에는 최 선수 사진들과 이력, 전적이 전시돼 있다.
등대 관계자와 양상문 손아섭 등 야구계 인사, 칠암 주민이 참석해 열기가 뜨거웠다.
동석한 최 선수 어머니 김정자 여사는 부산시민의 뜨거운 야구 사랑에 감사해 하며 눈시울을 붉혔단다.
눈시울이 막 떠오른 붉은 해 같았으리라.
갈매기는 부산의 상징이자 부산 야구의 상징.
갈매기등대 준공식과 기념관 커팅 행사는 '야구 명예의 전당' 유치를 기원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마침내 지난 4월 9일 한국야구위원회(KBO) 이사회에서 부산 유치가 사실상 확정됐다.
'구도' 부산의 뜨거운 야구 열기에 KBO마저 뜨거워진 것.
갈매기등대에서 5분 거리인 기장군 일광면 일대에 야구 공원이 들어서고
야구장이 들어서고 명예의 전당이 들어선다.
시가 건축비를 부담하고 기장군은 부대시설 조성비용을 충당할 예정이다.
기장 신평리 곰솔
수령이 100년인 신평리의 당산목인 곰솔은
기장군 일광면 신평리 55-3에 있다.
신평리 남씨할배 당산이라고도 한다
곰솔은 일근이지(一根二枝)로
흉고 둘레 각각 260cm, 205cm, 수고(樹高)는 14m,
나무 둘레는 0.8m이다.
신평리 곰솔은 칠암항구 입구, 큰길가에 있다
[시가 있는 부산 등대] 14. 월내등대
월내등대는
손잡이 긴 술잔
잔을 채우려고
파도소리 찰랑찰랑 따르고
물새소리 찰랑찰랑 따른다
손잡이 긴 술잔은
입술자국이 육감적이다
새가 입술 댄 자국
별이 입술 댄 자국
입술자국에
또 입술 댄 자국
달빛 은은한 조명 아래
손가락 끼워서 마시는
손잡이 긴 술잔
월내등대
- 동길산 시 '월내등대'
세상에 거저 있는 것은 없다.
모든 존재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풀 하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거기 있고 돌멩이 하나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거기 있다.
풀과 돌멩이가 같이 있거나 따로 있는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같이 있거나 따로 있다.
풀도 돌멩이도 어느 하루도 거저 있은 날은 없다.
어느 하루도 풀 아닌 날이 없고 돌멩이 아닌 날이 없다.
모든 존재가 그렇다.
있을 만한 이유가 있어 있다. 등대도 그렇다.
허구한 날 자리 차지나 하는 것 같아도 등대가 그 자리 있는 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 그 자리에 있다.
거저 있는 것 같아도 어느 하루도 거저 있은 날이 없다.
어느 하루도 등대 아닌 날이 없다.
등대여! 거저 있는 것 같아도 거저 있지 않음이여!
어느 하루도 등대 아닌 날이 없음이여!
사랑도 그렇다.
모든 사랑은 존재 이유가 있다.
그러기에 사랑을 비교할 수 없고 세상의 잣대로 잴 수 없다.
높고 낮은 사랑으로 잴 수 없으며 크고 작은 사랑으로 잴 수 없다.
사랑은 마음의 바다에 자리 잡은 등대.
등대가 어느 하루도 등대 아닌 날이 없듯 사랑 역시 어느 하루도 사랑 아닌 날이 없다.
어느 하루도 고귀하지 않은 날이 없다.
모든 사랑은 처음도 사랑이고 끝도 사랑이다.
마음의 바다는 눈에 보이는 바다보다 넓고 깊다.
마음 바다를 비추는 등대는 눈에 보이는 등대보다 높고 밝다.
등대가 비추는 바다를 바라보는 홀수 또는 짝수 사람.
바다를 비추는 등대를 바라보는 홀수 또는 짝수 사람.
눈에 보이는 것보다 넓고 깊은 사람이고 눈에 보이는 것보다
높고 밝은 사람이다.
월내(月內)는 달을 안에 품은 포구.
달 비친 수면이 잔잔한 호수 같대서 월호(月湖)라고도 부른다.
호수에 잠긴 달, 허밍으로 노래 부르며 거닐기에 딱 좋은 곳이 월내다.
부산 동쪽 끝 길천포구와 연이은 포구다.
동쪽 끝이라서 일출이 월출 부럽잖게 인상적이다.
부산 동해바다는 일출과 월출을 함께 품는 바다.
해 뜨는 아침도 품고 달 뜨는 저녁도 품는 바다다. 처음도 품고 끝도 품는 바다다.
동해바다 월내등대 또한 해를 품고 달을 품은 등대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남자 같고 어떻게 보면 여자 같은 등대다.
등대는 둘. 다행이다.
등대가 하나라면 남자로도 보고 여자로도 봐야겠지만
둘이라서 하나는 남자 하나는 여자, 그러면 되니.
생김새도 입성도 하나는 남자 같고 하나는 여자 같다.
월내포구 오른편 방파제 흰 등대가 다부진 아저씨 몸매라면
왼편 붉은 등대는 허리 잘록한 아가씨 몸매다.
'월내어항 남방파제등대'. 흰 등대 명칭이다.
명칭을 새긴 명판은 출입문 상단에 부착돼 있다.
붉은 등대는 '월내어항 북방파제등대'다.
녹등과 홍등을 5초에 한 번 깜박인다.
남자 등대는 나이가 좀 많고 여자 등대는 좀 적다. 남자는 2000년 11월 30일생이다.
여자는 여덟 살 적은 2008년 11월 20일생.
나이 차는 나지만 맞먹는 눈치다.
그럴 수밖에. 말을 나눌 상대가 달리 있지 않으니.
있기는 있다. 길천등대다.
월내 붉은 등대보다 호리호리하고 앳돼 보인다. 멀리 떨어진 게 흠이다.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이 낫다.
붉은 등대 나무벤치는 전망대 격이다.
벤치 등받이에 기대앉아 보는 바다는 눈에 보이는 바다보다 넓고 깊은 마음의 바다.
해가 빠진 바다고 달이 빠진 바다다.
저 바다에 빠지면 누구라도 해가 되고 누구라도 달이 된다.
저 바다에 빠지면 아무리 대단한 것도 대단하게 보이지 않고
아무리 하찮은 것도 하찮게 보이지 않는다.
바다에 빠져 허우적대는 둥근 해와 둥근 달과 둥근 마음이 고소해 죽겠다는 듯 월내등대는
녹등을 깜박깜박 촐싹대고 홍등을 깜박깜박 촐싹댄다.
"달 밝은 밤, 바다와 나를 위하여 건배!"
박이훈 시인은 밀양 무안사람.
고등학교 다니느라 부산 왔으니 부산사람 된 지는 30년이 넘는다.
시인답게 감성이 남다르다.
흰 등대 방파제에서 붉은 등대 벤치를 가리키며 달빛 좋은 밤 저기 앉아
술잔을 높이 들고 싶단다.
달밤은 진한 술이 좋으리.
진한 술 찰랑이는 손잡이 긴 술잔이 좋으리.
그러고 보면 붉은 등대는 손잡이 긴 술잔으로 보인다.
진한 술 찰랑이는 육감적인 술잔!
파도는 성질이 급하다. 불같다.
파도는 하나라서 어떤 파도는 남자 같고 어떤 파도는 여자 같다.
불같은 파도는 남자.
남자 파도가 수평선에서 곧장 달려와선 방파제를 때리며 방파제 안쪽을 넘본다.
방파제가 놓이지 않은 월천교는 사색이다.
호시탐탐 넘보는 파도 등쌀에 연신 옷깃을 여민다.
파도야 넘보건 말건 방파제 안쪽은 한 치 흐트러짐이 없다.
잔잔하다.
바깥세상에 일제히 등 돌리고 육지를 향한 갈매기들 표정도
마음이 평온해진 듯 잔잔하다.
평온.
성질 급한 파도를 내보는 수평선도 멀리서 보면 잔잔하다.
평온을 얻은 듯 한 치 흔들림이 없다.
거리를 두고 멀리서 보면 불같던 마음도 누그러지게 마련이다.
잔잔해지게 마련이다.
거꾸로 뒤집으면 마음이 불같다는 건 그만큼 가깝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깝기 때문에 불같고 가깝기 때문에 때로는 괴롭다.
특히 사랑이 그렇다.
가깝기에 사랑하기에 사랑의 고통이 있다.
환희도 고통도 모두가 사랑의 다른 이름.
처음도 사랑이고 끝도 사랑인 모든 사랑에게 건배!
가는 길.
길천등대 가는 길과 같다.
37번, 180번 시내버스가 다니고 3번, 9번 마을버스가 다닌다.
기차를 타고 월내역에서 내려도 된다.
기차는 부전역에서 오는 것, 부전역으로 가는 것 통틀어 하루 21번 선다.
역 광장엔 작품사진 '깜'이 몇 있다.
은하수다방과 역전다방 간판이 고전적이다.
성황당을 에워싼 오래된 나무도 작품이다.
개찰구 철로 변엔 하얀 목련이 광안대교 불꽃보다 더 불같은
꽃을 펑펑 쏘아 댄다.
(이상 글 출처 : 부산일보 - 동길산/시인 dgs11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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