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풍경으로》
전시 기간
2022-07-15 ~ 2022-10-02
전시 장소
경남도립미술관 1전시실
《풍경을, 풍경으로》는 강요배, 권순관, 김경호, 김주리, 정소영과 같이 시대의 초상을 치열하게 탐색하는 5인의 작가가 담아낸 풍경을 선보입니다. 그들의 풍경으로, 전시는 현현하는 자연을 새롭게 인식하고 그 이면에 감춰진 서사를 들춰내어 생태적·사회적 공동체의 윤리 회복을 위한 사유를 제안합니다. 더불어 파묻힌 목소리가 외치는 불변의 진리로 위태로운 우리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찾고자 합니다.
우리는 서슴없이 ‘아름다운’이라는 말로 풍경의 가치를 재현하며 각자의 시선과 방식으로, 그것이 예술이든지 일상이든지 간에 기록하고 예찬합니다. 때로는 그 근원을 놓치는지도 모른 채 ‘아름다운’이라는 각자의 언어로 눈앞의 풍경에 피상적으로 접근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함축한 무수한 의미를 지워버립니다. 사실 (자연)풍경이 아름다운 이유는 생명의 기원을 품은 미스터리한 존재로서, 거기에는 관념적 표현을 넘어서는 내밀한 의미가 서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존재의 깊이와 두께를 알아챌 때 비로소 자연을 비롯한 다양한 생명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진정, 자연을 온전히 바라보고 있는지 스스로 의문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땅을 땅으로, 산을 산으로, 바다를 바다로 온전히 바라보기가 가능한지 의구심이 듭니다. 이 의문은 자연이 언제나 아름다워야 하는 대상, 건강(휴식)을 위한 도구와 장소, 소유(정복)해야 하는 땅(영토), 자본의 논리를 위한 공간 등으로 오롯이 인간을 위한 것으로 소비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연을 바라보는 이러한 태도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연결됩니다. 그리하여 전시는 풍경에서 드러나는 유연함과 거대한 침묵 속에서, 자연 그대로를 마주하는 자리를 제안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여기 현재하는 자연을 느끼며, 온전히 바라보기를 통해, 인간 중심의 시선을 내려놓기를 청합니다. 이는 자연 속에 존재했던 모든 것은 우리와 함께 공존해왔고, 공존해야 할 우리의 모습이기에 가능합니다.
또한, 전시는 풍경에 대한 다른 응시입니다. 환경파괴와 자원고갈, 반인륜적 전쟁과 같은 전 지구적 차원의 문제는 사회 혼란과 분열로 우리 삶의 근간을 흔들고 있습니다. 인간은 권력을 향한 끝없는 욕망으로 세계를 대상화하는 가운데 자신을 단절시키고 고립시키며, 소외와 상처로, 절망과 죽음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인류학적 관점에서 인간사의 변천을 가장 가까이에서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것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입니다. 그러므로 산과 바다, 대지의 면면은 인간 삶의 굴곡과 욕망을 새긴 풍경입니다. 전시는 시각적으로 다가온 풍경 뒤에 새겨진 또 다른 풍경으로 타자화된 존재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입니다. 참여 작가 5인은 세월을 응축한 풍경 너머에 웅크린 존재를 드러내고, 잊힌 개인의 기억을 소환합니다. 그리고 가려진 고향의 역사적 사건을 풍경으로 기록해냅니다. 《풍경을, 풍경으로》는 존재와 사건 그리고 장소를 통해, 상처 입은 삶과 생명 앞에서 나타나는 인간 삶의 보편적 조건에 주목합니다.
전시에 참여한 강요배, 권순관, 김경호, 김주리, 정소영은 시·공간을 뛰어넘은 모든 존재가 걸어오는 말을 《풍경을, 풍경으로》라는 시적 풍경들로 화답합니다. 이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오롯이 자연을 감각합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공동의 기억을 더듬어 감각된 정서를 시각화합니다. 그 여정은 풍경을 통해, 풍경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 자신이 존재하는 세상과의 근원적인 만남을 시도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는 세계 내 존재로서 자신과 타자는 더 이상 분리될 수 없음을 인식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전시를 마주한 순간이, 억겁의 세월 속에 축적된 수많은 탄생과 삶 그리고 죽음을 상상하며, 우리네 삶에 무한한 가능성의 열림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이러한 경험은 온몸으로 사유하며, 저마다의 풍경을 만들어낸 작가들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듯 전시는 풍경으로 자신과 세상과의 연결점을 찾고, 풍경이 품고 있는 풍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합니다.
여기 《풍경을, 풍경으로》의 장소가 더 나은 삶을 위한 하나의 새로운 출발점이길 희망합니다. 전시를 통해, 풍경의 얼굴을 마주할 수 있기를, 침묵 가득한 심연으로 뛰어들 수 있기를, 그 밑바닥에서 우리 안에 꿈틀대는 생의 근원을 만나길 바랍니다.
《도큐멘타 경남 II – 형평의 저울》
전시 기간
2022-07-15 ~ 2022-10-02
전시 장소
경남도립미술관 2·3전시실 및 특별전시실
“공평(公平)은 사회의 근본이요 애정은 인류의 본량(本良)이다. 연(然)함으로 아등(我等)은 계급을 타파 하며 모욕적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야 우리도 참사람이 되기를 기(期)함이 본사의 주지이다...”
-형평사주지(衡平社主旨) 중, 1923년
여는 글
일 백 년 전입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 대안동 진주청년회관에서 80여 명의 백정들과 지역 활동가들이 모여 ‘형평사(衡平社)’를 창립합니다. 형평사는 저울(衡)처럼 평등한(平) 사회를 만들자는 단체(社)를 뜻합니다.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제도적으로는 모든 사람이 평등한 세상이 열렸지만 실질적으로는 여전히 불평등한 세상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백정은 가장 천하디 천한 신분이라 노동자와 농민들에게도 차별과 혐오를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그래서 형평사는 주지(主旨)를 통해 백정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없애고 공평(公平)과 애정을 사회와 사람의 바탕이라 선언합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상식에 가까운 말입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이야기가 당시에는 상당한 문제와 분란을 일으켰습니다.
다름 아닌 반형평 사건의 발발입니다. 형평사가 창립된 지 불과 한 달 만에 진주에서는 형평운동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가 열립니다. 어느 주민과 형평사원 사이의 사소한 충돌로 시작되었다고 알려져 있지만, 백정에 대한 비백정들의 뼈 속 깊은 차별의식이 발현된 구조적인 문제였습니다. 쇠고기 불매운동은 물론 형평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은 모두 백정으로 취급해 공격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물론 시간이 지날수록 형평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 반형평사건은 점차 사그라들었습니다.
형평사는 전국적인 조직망을 갖춘 거대 단체로 발전하게 되면서 백정의 실질적인 차별은 조금씩 사라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이후에도 백정과 그 출신 가족들은 이른바 불가촉천민이라는 사회적 인식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현대문학》에 연재된 황순원의 소설 <일월>에도 주인공인 인철이 백정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습니다. 진주에서 형평의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백정의 후손임을 밝히는 사람들이 없어 과거 형평운동의 미시 역사를 연구하기가 무척이나 어렵다고 합니다.
형평운동을 들여다보면 2022년 지금 여기 우리 삶을 생각하게 됩니다. 이제 백정은 고깃집 브랜드로 사용될 정도로 자연스러운 말이 되었지만, 또 다른 차별과 혐오가 우리 사회를 여전히 짓누르고 있습니다. 소수자와 약자에 대한 차별입니다. 특히 요즘은 장애인 이동권이 쟁점화 되면서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던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 문제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지난 100년 우리 사회가 품고 있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형평운동과 관련된 1차 사료와 형평운동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는 진주의 ‘형평운동기념사업회’ 활동 자료를 아카이브 형태로 만날 수 있습니다. 더불어 형평운동과 관련된 기존 예술 활동을 문학과 삽화 그리고 영화를 중심으로 소개합니다. 마지막으로 수개월에 걸쳐 형평운동을 같이 고민하며 자신들의 조형언어로 이를 재구성한 권은비, 서평주, 최수환 작가의 신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디 이 전시를 관람하는 모든 분들이 ‘형평’의 정신을 가슴 한 편에 품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셨으면 좋겠습니다.
형평을 보다 - 2전시실
2전시실은 ‘형평운동의 역사’와 그 정신을 이어 활동하고 있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 그리고 백정의 아픈 삶을 ‘예술’로 담아낸 문학, 삽화, 영화 등을 소개하는 아카이브형 전시 공간이다.
첫 번째 섹션은 100년 전 형평운동의 시작을 다루고 있다. 1923년 4월 25일 진주청년회관에서 형평사가 창립하면서 선포된 ‘형평사주지문’과 ‘조선형평사 선언 강령 규약’의 내용을 확인할 수 있으며, 형평사 전국대회 포스터(6회, 7회, 8회) 이미지를 볼 수 있다. 형평사에서는 자체적으로 잡지를 만들기도 했는데 1929년 창간된 『정진(正進)』의 내용도 디지털 파일로 확인 가능하다. 그 외 당시 진주 도심의 분위기를 알 수 있는 사진과 백정 사진 그리고 석남 송석하 선생이 현지조사하며 촬영한 하회탈놀이 중 ‘백정마당’ 사진도 같이 전시된다.
두 번째 섹션은 현재 진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형평운동기념사업회’의 활동 내역을 정리한 아카이브 방이다. 형평운동기념사업회는 일반적인 기념사업회와는 달리 형평의 정신을 지금 우리 삶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2003년부터 장애인 인권운동을 시작해 진주지역 초등학교 편의시설 실태조사를 하고 장애인식 개선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했다. 진주시는 전국 최초로 무장애 도시를 선언했는데 여기에도 기념사업회의 도움이 컸다. 그 외 기존 형평운동 관련 자료 연구와 형평운동 안내 책자 발간, 그리고 형평실천을 위한 UCC 공모전과 형평역사캠프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마지막으로 백정을 주제로 한 문학 및 삽화, 그리고 영화 관련 자료를 소개한다. 백정을 다루는 가장 오래된 소설로는 1925년 《개벽》에 실린 홍사용의 <봉화가 켜질 때〉와 1927년에 《조선지광》에 발표된 조명희의 〈낙동강〉이 꼽힌다. 원본은 아니지만 두 소설의 첫 발행 잡지의 영인본을 만날 수 있다. 영화로도 제작되어 화제가 되었던 이성구 감독의 영화 〈일월〉(1967)은 1962년부터 《현대문학》에 연재된 황순원의 장편소설 <일월>을 원본으로 하고 있다. 이 섹션에서는 당시 《현대문학》 잡지 원본과 이성구 감독의 <일월>을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전시의 또 하나의 볼거리는 1989년부터 1992년까지 1,020회에 걸쳐 연재된 정동주의 <일어서는 혼>에 실린 주정이 작가의 삽화 판화 원본이다. 약 10점 정도의 판화가 전시되며 그 장면을 통해 당시 백정들의 삶은 물론 식민지 조선의 시대상을 이해할 수 있다.
형평을 생각하다 - 3전시실
3전시실에는 2전시실과는 달리 ‘형평’을 주제로 한 기획전으로 권은비, 서평주, 최수환 작가의 신작을 만나볼 수 있다. 짧은 전시 준비 기간에 작가들에게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작업을 선보여달라는 요청은 사실 매우 무례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명의 작가는 ‘형평’이라는 주제가 흥미롭다며 새로운 작업을 준비해보겠다고 참여를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다같이 형평운동의 발상지인 진주를 답사했다. 형평사 창립대회가 열린 진주청년회관 자리를 시작으로 형평사 창립 축하식이 열렸다는 진주좌(구 진주극장)와 진주교회 등을 둘러봤다. 마침 시간이 허락해 형평운동의 아버리라 불리는 강상호 선생의 묘소도 가볼 수 있었다. 현장을 둘러본 우리는 왠지 과거 백정의 상황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 형평운동에 대한 기억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일까. 권은비, 서평주, 최수환의 신작은 모두 과거 백정의 아픔을 현재의 어떤 아픔과 연결하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100년 전과 지금 우리는 엄청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지만 소외, 차별, 혐오는 끈질기게 우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권은비
권은비의 영상 설치 작업 〈182219222022〉는 형평사가 창립된 1923년의 1년 전인 1922년을 기준으로 100년 단위의 역사 속 여성의 서사를 재역사화(rehistorisierung)하고 있다, 달리 말해 300년에 걸친 변혁(혁명)의 역사 속에서 기록되지 못한(존재하지 못한) 존재로서 여성을 주목한다. 엄청난 시간의 괴리가 무색하게도 이 존재들은 서로 엮이고 있다.
3개의 영상은 각각 1822년, 1922년, 2022년의 허구적-재역사화된 여성의 이야기를 보여주는데, 모두 ‘하나의 사건을 가지고, 하나의 장소에서, 하루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100년의 시간적 단절을 가뿐히 극복하고 전시 공간에서 이들은 한 데 섞인다. 세 명의 여성 이야기는 하나의 공간에서 만나고 충돌하고 주고받는다. 그렇게 대화는 어긋나면서도 이어진다. 이 과정을 통해 권은비는 구조적 차별이 어떻게 여성의 몸에 체화되는지 살펴보면서, 솔직한 욕망의 주체로서의 여성이 ‘정치화된 몸’에서 ‘저항하는 몸’으로 발화할 수 있을지 실험한다.
서평주
서평주의 〈기울어진, 저울_선/대치/형평〉은 형평운동이 일어난 1923년 이후 지난 100년 동안 우리 사회의 혐오와 차별은 어떠한지에 대해 의문을 던지는 작업이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을 통해 백정에 대한 제도적 차별은 없어졌지만, 오랫동안 이어져온 백정에 대한 실제적인 차별은 여전했다. 백정들은 항상 비천한 존재인 것처럼 행동해야했고, 나이에 상관없이 비백정들(농민, 노동자, 상인, 양반 등)에게 머리를 조아려야했다. 교육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교회 예배조차 마음대로 하지 못했던 그들은 당당한 태도로 말하는 것 자체로 돌팔매를 맞곤 했다.
2022년 대한민국은 어떠한가. 비장애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안전하고 평범한 대중교통 이용이 장애인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하는 행위인 게 지금 우리나라 실정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동권을 얻기 위해 서울 지하철 문을 가로 막고 이동권을 보장해달라고 외치지만 돌아오는 건 “불편하게 하지 말고 출근시간을 피해 달라.” “불법이니 그만해라.” “그만해 XX야.”와 같은 불평과 욕설이다. 서평주의 영상 작업은 이렇듯 달라지지 않은 현실을 둘러싼 말들, ‘을’과 ‘을’끼리의 충돌 등을 수어와 자막을 이용해 드러내고 있다. 질문이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지금 우리는 누구를 혐오하고 차별하고 있는가.
최수환
최수환의 〈백 번의 봄〉은 형평운동이 발생했던 1920년대 백정들의 삶을 좀 더 직접적으로 조망한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것은 백정들의 형평운동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했던 당시 노동자와 농민들의 ‘반(反)형평 사건’이다. 노동자와 농민들은 불가촉천민으로 취급받던 백정이 자신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는 것에 대해 극도의 혐오감을 표출했다. 당시 조선일보는 1923년부터 1935년까지 12년 간 발생한 반형평 사건을 7,828건, 이 운동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17명으로 기록하고 있다.(조선일보, 1935년 4월 26일자)
최수환은 이러한 복잡한 이야기를 명료하게 드러내가 위해 일종의 인형극 설치 작업을 진행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는 기계식 인형들인 ‘오토마타(automata)’를 사용해 다양한 장면들을 연출한다. 종교의 차별, 교육의 차별, 죽음에 대한 차별 장면들과 사회전반에서 여전히 차별받는 백정들의 삶을 보여준다. 작품은 직접 손잡이를 돌려야만 작동한다. 역설적이게도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직접 차별과 혐오, 그리고 폭력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이상 글 출처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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