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21 근현대미술기획《황혜홀혜 恍兮惚兮》
한국근현대미술과 조선서화, 민화, 새로움, 현대성, 전시구성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에서 19세기말 조선미술계의 시대적 요구는 봉건성 극복이나 근대성 획득 보다는 민족 자주성 확립이 최고의 미적 가치였다. 이 같은 시대적 요청은 많은 화가들로 하여금 조선의 고유미술, 즉, 전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밖으로는 외세의 침략과 안으로는 계급모순이 거세지면서 전통 사상에 대한 충분한 반성이나 새로운 미술에 대한 견고한 해석 없이 ‘근대화는 곧 서구화’라는 급진적이고 단편적인 인식으로부터 서구 중심의 근대예술 체계를 받아들이게 되었고 전통으로부터의 내적 동인 없이 외부의 정치 사회적 조건에 맞물려 ‘서화’에서 서구의 ‘미술’로 재편되는 현상을 맞이하게 되었다. 3‧1 운동 이후 조선 미술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면서 서구미술을 주체적으로 소화하고자 하는 노력도 있어왔지만 또 한 번의 아픈 역사, 6‧25 전쟁은 이러한 과정을 무너뜨리고 말았다. 물밀 듯 밀려들어오는 서양의 미술은 국제화,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민족성, 민족주의에 대한 각성을 오히려 국수주의로 내몰았고, 서양미술이론의 잣대로 한국미술을 해석하고 재단하는 일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이는 우리가 스스로 500년 조선의 미학을 담은 ‘서화(書畫)’의 역사를 배제하고 있다는 것조차 깨닫지 못한 체 비교적 길게 이어져 오늘에 이르렀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이러한 고유미술의 전통, 특히 조선 서화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한국 근현대미술의 역사로 온전히 쓰여 지지 못한 우리의 예술과 사상을 공유하고 그것이 당대의 삶과 어떻게 호흡하고 있는지 동시대미술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찾아 들어가고자 한다. 아울러 전통과 현대의 관계성을 새롭게 발굴하고 한국근현대미술사의 의미망을 확장해 나가고자 한다.
경남도립미술관은 지난해 1900년대 변혁기 우리 예술의 횡단면을 조선의 서화를 중심으로 조망했던 『자화상Ⅱ – 나를 보다』전에 이어 올해는 서화의 역사에서 새로운 물결이라 할 수 있는 조선 ‘민화(民畵)’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의 지평을 새롭게 열어보고자 『황혜홀혜』전을 개최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민화(民畵)’라는 명칭은 민중에 의해 그려지고 민중을 위한 그림이라는 의미로 일본의 미학자이자 민예운동가인 야나기 무네요시의 주장에 따라 명명되어 지금까지 통용되고 있다. 물론 현재 민화는 서민화를 포함, 궁중장식화, 화원그림까지 두루 포괄하는 개념을 담고 있지만, 작가를 정확히 알 수 없고, 전문적인 화공의 그림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구의 대상에서 배제되어 미술사적 위치를 공고히 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문자가 그림이 되고, 산이 바다를 품고, 봉황이 뒤돌아 날개 짓하며, 서가의 책과 기물이 춤을 추는 민화를 마주하게 되면 우리는 조선미술의 신비로운 예술 세계를 낯설지만 익숙하게(현대미술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게)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민화는 인간과 자연의 조화, 출세와 부귀, 자손번성, 영웅담, 무병장수, 현실과 꿈 등 우리의 삶과 죽음을 사유하는 근원적인 욕망을 아우르고 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를 거치며 급변하는 시대에 의지할 곳 없는 민중이 세속적 욕망에 매달리며 인생의 궁극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소망을 담아낸 것이라 할 수 있는 민화는, 외세의 침략과 개항, 계급모순으로 혼란스러웠던 조선 말기에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삶의 가치를 사유하게 한 조선인들의 시대적 욕망, 달리 말해 대안적 세계, 새로운 세계, 즉, 유토피아를 시각화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유토피아, 예술에 있어 본질적인 질문이라 할 수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주제 의식은 새로운 형식을 창출하는 구조로 이어지며, 민화가 민중의 그림이라는 단순한 의미를 넘어 매우 개성 있고 해학적이며 불가사의한 조형성이 배어있다는 것에 주목하게 한다. 민화는 다시점을 통해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며 대상을 해체 전복 시키는화면을 구성하고 있으며, 수많은 도상으로 저마다의 의미를 가지며 사회상을 담아내는 시대성까지 드러낸다. 아울러 민화의 작가는 그림을 배운 화공이 아니었기에 사회적으로 규정된 어떤 원칙이나 법칙을 따르기보다 스스로 해결책을 찾는 작자의 자유의지가 그 익명성을 담보로 더욱 자유롭고 실험적인 조형성을 구축한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술작품의 근원, 예술작품의 조건이 무엇인가를 따지기 이 전에 작자미상의 산수도, 책가도, 문자도, 화조도 등으로 일컬어지는 그림 그 자체로서의 가치, 즉 회화성에 대해 강조 할 수 있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록 사대부의 고급문화를 모방하고자 했고, 그들의 사의적(寫意的)그림을 차용하였으나 문인화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개방성과 익명성을 통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 받는다.
일각에서 민화를 이름 없는 장식화나 기능적 도구로 치부하며 변방으로 내몰아 둔 것도 사실이지만, 민화가 주목받지 못한 옛것이라고 했을 때 그것은 오히려 문화적 전통에 부정적으로 순응하는 혁신으로써 ‘새로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혁신은 문화 외적인 게 아니라 문화적 위계와 가치를 다루는 것이며, 숨겨져 있는 걸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보고 알고 있는 것의 가치를 전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section1 산山을 나는 바다, section2 수수壽壽 복복福福, section3 문자文字와 책冊의 향香과 기氣 를 통해 산수도, 화조도, 문자도, 책가도, 책거리 등의 민화 원작을 중심으로, 근현대 한국미술의 역사에서 그 가치의 논의가 다소 소극적이었던 조선 ‘민화’ 의 내적인 면모를 미술과 시대사회적 관점에서 두루 살펴보고자 한다. 이에 앞서 인트로섹션 두 개의 태양에서는 이미 알고 있는 민화라고 하는 옛것을 통해 우리가 모던이라 부르던 시대에 그토록 찾아내고자 했던 ‘새로운 것’의 당대적 비전, 시간성의 복잡한 엮임, 현재‧과거‧미래 사이의, 단편화와 연속성 사이의, 예견과 지체 사이의, 운동과 부동 사이의 복잡한 관계집합을 통해 현대성(modernity)의 의미를 확장시켜 보고자 한다.
전시구성
인트로섹션 : 두 개의 태양太陽
Section1: 산山을 나는 바다
Section2 : 수수壽壽 복복福福
Section3 : 문자文字와 책冊의 향香과 기氣
참여작가
김기창, 김성호, 김종학, 김지평, 류성실, 박생광, 백은배, 손동현, 안상수, 양아치, 오수환, 원성원, 이승희, 이우환, 이진경, 장욱진, 전정우, 전혁림, 전혜림, 조인호,
최하늘, 홍지윤, 황석봉
대표작품 캡션
[김지평] 기암열전(奇巖列傳), 2019, 혼합매체 92⨉690cm
[김지평] 기운생동(氣韻生動), 2017, 단채널 비디오, 6min 8sec
[원성원] IT 전문가의 물풀 네트워크, 2017, C-프린트, 178⨉297cm
[원성원] 천으로 덮은 풍경, 2017, 종이에 혼합매체, 59⨉77cm
[전혜림] 이어진 산수#2 (캡쳐, 패치, 픽쳐), 2021, 혼합매체, 가변설치
[전혜림] 이어진 산수#2 (캡쳐, 패치, 픽쳐), 2021, 혼합매체, 388.3⨉390.2cm
[양아치], 뼈와 살이 타는 밤, 2014, C-프린트, 디아섹, 150_100cm
[전혜림] 이어진 산수#2 (캡쳐, 패치, 픽쳐), 2021, 혼합매체, 116.7⨉72.9cm
[양아치], 바다 소금 극장, 2014, 단채널 비디오, 10min 10sec
[양아치], 뼈와 살이 타는 밤, 2014, C-프린트, 디아섹, 140⨉93.3cm
[양아치], 신용, 2018-2021, 혼합매체, 가변설치
작가 미상, 구운몽도, 20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병풍, 65.3⨉35.5⨉(8)cm
[류성실], 대왕트래블 칭쳰 투어 - 김첨지 리바이벌 2019, 2019, 단채널 비디오, 25min
[최하늘] 일필휘지 조각_계획 풍경: 도시, 2021, 혼합매체, 가변설치
작가 미상, 관동팔경, 19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병풍, 56⨉31.5⨉(8)cm
[조인호], 고군산군도전도古群山群島全圖, 2020, 순지에 수묵, 190⨉780cm
작가 미상, 금강산도, 19세기 중반, 종이에 먹; 병풍, 85⨉34⨉(10)cm
작가 미상, 무이구곡도, 19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병풍, 93.5⨉44⨉(10)cm
[전정우], 수수壽壽 복복福福, 2021, 종이에 먹, 41⨉34.5cm (each)
[이진경], 목숨 수 – 제주문자도 시리즈, 2021, 패널, 종이에 채색
작가 미상, 제주문자도, 20세기 초반, 종이에 채색; 병풍, 92⨉36⨉(6)cm
[안상수], 문자도 홀려라.A., B., 2021, 패널, 캔버스에 유채, 260⨉194cm
작가 미상, 충효문자도, 19세기 중반, 종이에 채색, 54⨉34.5⨉(8)cm
[황석봉], 먹물낙지의 꿈, 2021, 종이에 먹, 가변설치
작가 미상, 책거리, 19세기 후반, 종이에 채색; 병풍, 97⨉43⨉(12)cm
작가 미상, 반닫이 설치, 19세기 중반, 고가구, 가변설치
2021 경남근현대작가조명전 《여산 양달석 黎山 梁達錫》
“동화를 쓰는 기분으로 그림을 그린다. 마치 아픈 매를 맞으면서도 웃어야 하고 찢어질 듯한 역경에서도 마음만은 행복하게 즐겨야 하는 모순처럼...”
- 양달석 회고록(1975) 중에서
정치와 권력, 역사와 예술은 어떠한 관계 속에 있는가? 다양한 시대의 소음들은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의 삶에 작용 되어 왔는가? 이러한 질문들은 우리의 삶과 역사를 되짚어 보게 한다. 한국의 근현대사는 치열하고 기이한 상황 아래에서, 이따금 우리의 울분을 깨워낸다. 그 안의 예술은 더욱이 그렇게 존재해 왔다.
여산 양달석은 1908년에 태어나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을 경험하며 살았다.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전쟁, 분단국가와 강력한 이데올로기의 정권까지. 죽고 사는 것, 먹고 사는 것이 우선시 되었던 우리의 20세기는 그렇게 시대적 모순과 억압된 체제 아래서 모든 이의 삶을 처절하고 힘겹게 버텨내도록 만들었다.
전업화가, 그리고 일곱 식구의 가장으로서 살아온 여산의 삶은 어땠을까? 21세기 최첨단의 자본주의 속에 살아가는 우리가 그 모든 감정들을 이해할 수 있을까?
‘여산(黎山)’은 양달석 화백의 호다. ‘새벽녘의 희뿌옇고 어스름한 산’이라는 작가 자신의 설명은 그의 생과 시대적 배경, 또한 작품 속에 그토록 담고자 했던 가치들을 통해 다시금 그 의미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소와 목동, 낙원과 동심의 세계, 동화와 민요 화가,, 여산을 대표했던 이러한 단어들은 그의 작품 속 조형미와 일치한다. 그러나, 보다 깊숙이 그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여산의 새로운 면모들을 느껴볼 수 있다.
실제 1950년대 이전 여산의 작품들은 한 예술가의 비폭력적 저항 의식이 느껴진다. 회색빛의 어둡고 애잔한 분위기가 감도는 농촌 풍경, 힘겹게 살아내고 있음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인 서민들의 생활상, 혹은 오히려 그러한 서민들의 삶에서 새로운 세상의 희망을 담아내고자 했던 농민들의 강인한 모습까지. 이렇듯 여산이 표현한 한국 사회의 단면과 새로운 희망들은 암울한 시대 속 한 예술가의 강한 사회적 의식이 담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여산의 사회적 의식들은 소와 목동을 즐겨 그리던 1950년대 후반 이후 작품들에서 쉬이 찾아보기 힘들다. 혹은 그렇게 알려져 있다. 이 시기 작품에서 주로 찾아볼 수 있는 아이들과 자연, 목가적인 농촌 풍경들은 흔히 새로운 낙원, 동심의 세상으로 해석되어 진다. 그렇다면, 그러한 낙원은 암울한 시대를 넘어서고자 했던 새 세상으로의 희망과는 무관한 것일까?
여산의 유족과 화우의 증언, 작가 자신의 회고록과 기고문들은 그러한 의문을 풀어 주었다. 더불어 소와 목동을 즐겨 그리던 시기 역시, 안타까운 사회상에 대한 비판적 의식이 느껴지는 작품들을 함께 작업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다양한 그의 작품에서 무엇을 보아야 하는가?
푸른 색감이 감도는 생활 풍경, 강한 에너지를 지닌 농민들의 모습, 어두운 시대 속 힘들었던 서민들의 모습, 고통 없는 낙원 속에서 뛰노는 소와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은유했던 또 다른 의미들까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다양한 그의 화풍과 숨겨진 은유들은 안타까운 사회 현실에 대한 작가의 시선, 이를 넘어서고자 하는 사회적 바람과 이를 진정으로 표현해 내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짐작케 한다.
결국 작가는 어두운 밤을 걷어 내고 찾아온 새벽녘의 희뿌연 내일의 희망처럼, 암울한 시대를 넘어선 새로운 세상에로의 예찬을 끊임없이 표현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여산 양달석의 삶과 예술을 통해, 사회를 향해 외치는 그의 강한 메시지를 느껴보고, 시대의 억압과 권력, 그 아래의 예술과 예술가의 삶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보길 바란다.
작품캡션
1. 낙원, 1963, 종이에 수채, 42×64cm, 개인 소장
2. 자갈치, 연도미상, 종이에 수채, 36×52cm, 개인 소장
3. 소녀, 연도미상, 합판에 유채, 67×55cm, 부산시립미술관 소장, 신옥진 기증
4. 망향, 1950년대, 종이에 콩테, 20×28cm, 개인 소장
5. 무제, 1953년, 캔버스에 유채, 50×65cm, 경남도립미술관 소장
6. 잠시, 1957년, 캔버스에 유채, 112×156.5cm, 동의대학교 석당기념관 소장
7. 최후의 기도, 1950년대초, 캔버스에 유채, 111.5×87cm, 개인 소장
(이상 글출처 :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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