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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남 . 부 산

창녕 망우당 (2021.10.02.)

 

 

 

 

 

 

 

 

 

천강홍의장군(天降紅衣將軍) 곽재우(郭再祐)

 

                                                          

본관은 현풍(玄風). 자는 계수(季綏), 호는 망우당(忘憂堂).

홍의장군(紅衣將軍)으로 잘 알려져 있다.

아버지는 황해도관찰사 월()이며, 조식(趙植)의 외손녀 사위이자 문인이다.

대제학을 지낸 김우옹(金宇顒)과는 동문이자 동서지간이다

 

1552828일 경남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에서

황해도 감사를 지낸 아버지 곽 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세간리는 장군의 외가이다.

장군의 나이 세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고,

아버지께서 새로 장가를 들었는데 그 새어머니가 바로

퇴계 선생의 사촌 처제이다.

 

그리고 8세에 글 공부를 시작하여

목사를 지낸 외할아버지인 강응두와 친구사이인 남명 조식 선생으로부터 공부를 했으며,

16세 되던 해에 상산김씨와 결혼을 하니

이분은 당대의 거유(巨儒)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의

외손녀가 되는 분이었다.

슬하에 53녀를 두었으나 아들들이 모두 백두서생으로 벼슬을 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또 아버지의 뜻이었다고 한다

 

1585(선조 18) 정시문과에 2등으로 뽑혔으나,

글의 내용이 왕의 미움을 사서 합격이 취소되었다.

그렇게 해서 낚시로 소일하며 지내다가 1592413일 일본군이 부산으로 쳐들어오고

관군이 물러나는 등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장군이 태어났던 의령군 유곡면 세간리 마을 앞에 있는 느티나무에 북을 매달아 치면서

의병을 일으켰는데 이 때가 1592422일이요

우리나라 첫 의병인 것이다.

 

그리하여 그해 5월에 낙동강과 남강이 합류하는 지점인

의령군 지정면 성산리 거름강(岐江) 전투에서 첫 승리를 거둔데 이어

6월에는 의령의 관문인 정암진에서 대승을 거두게 된다.

정암진 전투는 장군의 의병활동에 있어서 가장 두드러진 전공을 세운 싸움이며,

그 의미 또한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왜군을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참으로 신출귀몰한 장군의 뛰어난 전술과 전략을 바탕으로

강변의 깊고 얕음의 지형을 이용한 게릴라전을 비롯해

여러 장군들에게 붉은 옷을 입게 하여 누가 곽재우 장군인지 헷갈리게 하였으며,

그리고 50에서 80미터 정도 되는 조총의 사정거리를 파악하여 130미터 정도 날아가는 활을 이용하여

적을 무찔렀던 것이다.

 

159210월에 임진왜란 3대첩의 하나인 진주대첩에서 승리를 거두게 하였고,

1597년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이 때는 창녕 화왕산성에서 왜군을 물리치는 등

많은 승리를 거두었으나 한 번도 패하지 않았다.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159241세의 나이로 첫 벼슬에 나간 이후

161665세에 이르기까지 24년간 29회에 걸쳐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그 중 15회는 관직에 나갔고, 14회는 나가지 않았는데

임지에 가기전에 사직하였거나 나갔다하더라도 바로 사직하고 귀향한 것을 빼면

실제 관직에 앉아있던 기간은 얼마되지 않았다.

 

장군은 1617410일 낙동강변에 있던 망우정에서

마침내 파란만장한 생애를 접고 향년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현재 19781222일에 준공한 충익사에서

곽재우 장군과 17장령 및 수많은 의병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의령군에서는 매년 4월에 의병제전을 열고 첫 의병을 일으킨 422일 아침에

충익사 사당에서 추모제향을 올리고 있다.

(글출처 : 뉴스인물 | inmul@newsinmul.com)

 

 

 

 

 

 

 

 

 

 

 

 

창녕 망우당 곽재우 유허비

 (昌寧 忘憂堂 郭再祐 遺墟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소 재 지 : 경남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 931번지

 

 

유허비는 옛 선현의 자취를 살피어 후세에 전하고

그를 기리고자 세워두는 것으로, 

이 비는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인 곽재우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곽재우(15521617)는 호가 망우당이며

선조 18(1585) 34세의 나이에 별시에 뽑혔으나

지은 글이 왕의 뜻에 거슬린다 하여 무효가 되자

, 일찌감치 과거에 나갈 뜻을 포기하였다. 

러던 중 임진왜란이 일어나 관군이 크게 패하자

의령 등지에서 의병을 일으켜 관군을 대신하여 적과 싸웠다. 

그 공으로 유곡찰방에 임명된 후 여러 관직을 거쳤으나

곧 벼슬을 버리고 현풍으로 돌아갔다. 

 

정유재란 때에는 밀양, 영산, 창녕, 현풍의 네 고을에서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을 지키며 적의 접근을 막아내기도 하였다가, 

계모 허씨가 사망하자 성을 나와 장례를 마친 뒤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나라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았다. 

광해군 2(1610) 왕의 간청으로 다시 서울로 올라가 일을 맡아보았으나

곧 병을 이유로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광해군 9(1617)에 생을 마치었다. 

그 후 충익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망우정 뒷편에 서 있는 비는

의병을 일으켰던 공의 뜻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이 고을의 유림들이 세워놓은 것으로,

 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구조에

비 윗변의 양끝을 비스듬히 다듬은 모습이다.

(글 출처 : 문화재청)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경남 창녕 우강리 망우정

 

 

이곳은 곽재우 장군이 말년을 보낸 곳이다.

임진왜란 중이던 1594, 장군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에 임명된다.

그러나 왜적의 재침을 대비하기 위한 도산성 수축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사직서를 올리고 조정의 허락을 기다리지 않은 채 군영을 떠난다.

사헌부에서는 이를 문제삼아 독만(瀆慢)이란 죄명으로 탄핵했고,

결국 장군은 전라도 영암으로 귀양을 가게 된다.

2년간의 귀양살이를 마치고 현풍의 비슬산에 들어가 잠시 은둔하던 장군은

1602년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영산현 남쪽의 창암진, 지금의 창녕군 도천면 우강(友江)마을이다.

장군은 이 작은 집을 짓고 망우정(忘憂亭) 편액을 걸고 강과 벗하며 지냈다.

망우당(忘憂堂)이란 자호도 이때부터 생긴 것이라 한다.

 

망우, ‘근심을 잊고 살겠다는 뜻이다.

이순신 장군의 투옥, 절친했던 의병장 김덕령의 무고한 옥사(獄死) 등 비분의 진창에서

몸과 마음을 모두 끄집어내 절벽에 숨겨 지은 새집 같은 여기로 왔다.

이곳에서 망우당은 진정 망우할 수 있었을까.

임금의 부름이 있었다(有召命)’라는 시에서 장군은

몸을 편안히 하려니 군신의 의를 저버릴까 두렵고,

세상을 구하려니 날개가 난 신선이 되기 어렵다라고 했다.

툇마루에 앉으면 한 뼘 하늘이 전부이지만,

서면 강이 바다로 가는 세상이 우련히 넓다.

 

 

어진 이에게 물려주다, 여현정

 

곽재우 장군이 이곳에 거하는 동안 수차례 거듭된 나라의 부름이 있었다.

때로는 나아갔고, 때로는 나가지 않았다.

마지막 몇 년은 이곳에서 패랭이를 지어 팔며 곡기를 끊고 솔잎만 취하였다고도 한다.

그리고 1617410, 장군은 망우정에서 돌아가셨다.

그때 갑자기 회오리가 일어 집을 덮치고, 천둥과 벼락이 크게 치고 비가 쏟아 졌으며,

붉은 기운이 하늘을 덮었다고 전한다.

장군이 신선이 되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처마 밑에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망우정여현정(與賢亭)’이다.

망우정 글씨는 곽재우 장군의 친필이라 한다.

장군은 귀천을 앞두고 망우정을 외손되는 벽진이씨 이도순(李道純)에게 물려주었다.

그후 망우정은 여현정이 되었다. 현판의 글씨가 한미한 눈에는 비슷해 보인다.

 

여현정은 곽재우 장군의 벗이었던 조선 중기의 학자 간송당 조임도가

이도순에게 제안한 이름이다.

곽재우가 어진 이에게 물려준 정자라는 의미인데,

마루에 걸려있는 여현정기(與賢亭記)’에 이에 대한 장군의 말이 기록되어 있다.

요임금은 (자식이 아닌) 순에게 천하를 넘겼고

나는 이 강사를 현자인 이군에게 물려주니,

이를 요순에 견주면 넓은 하늘을 좁은 못이랑 비교함과 같으나

마음속 깊은 뜻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자네가 자연을 벗하고 학문을 좋아해 능히 지킬 수 있기에

정사를 내 것으로 삼지 않고 이렇게 준다네.’

(글출처 : 영남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