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매산 <철쭉과 억새 사이>
<철쭉과 억새 사이>는
황매산군립공원의 철쭉평원 입구에 새로 둥지를 튼 관광휴게소로서
등산객과 관광객들을 위한 지원시설이다.
해발 850m, 황매산 고지 평원에 자리잡은 이 편의시설은
식당, 커피숍, 지역특산품 판매점, 화장실 및 야외 휴게시설 등
일곱 개의 독립된 서비스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친환경 생태건축의 필요성을 인식한 지차체의 진취적인 노력의 결과로
기존의 식당과 매점 위주의 무미건조했던 상업시설을 철거하고
<철쭉과 억새 사이>는 탄생했다
<철쭉과 억새 사이>의 건물 배치는
전체적으로 반원형의 기하학적인 형태를 기본 틀로 삼고
중간 중간에 전망과 통로를 위한 개구부 공간들을 적절히 끼워 넣었다
관광객 서비스의 기능적인 공간과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을
반복적으로 배치하여 건물에 활기와 리듬을 불어넣고
인공 구조물이 자연에 동화될 수 있는 소통을 강조하여
건물과 자연 사이에 불편한 동거와 단절의 벽이 생기지 않도록
건축가는 배려하였다
<철쭉과 억새 사이>는
홍익대 건축학과 임영환 교수와 디림건축사사무소의 작품이다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해 기술과 반기술,
투박함과 세련됨, 지역성과 보편성과 같은 이중적이고 모순된 질문들을 통해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건축적 해답을 찾으려 노력'하는
중견 건축가 집단이다
설계자는 <철쭉과 억새 사이>에서
황매산의 자연환경 보호와 등산객과 관광객을 위한 편의시설을 확보하고
지역 주민의 안정적인 소득창출에도 기여할 수 있는
두 마리의 토끼를 잡아야만 하는 까다로운 설계조건을 고려하여
2019년 초에 설계를 완성하였다
그 해 4월에, 11억 원의 사업비로 첫 삽을 뜨서
연말에 준공을 보게 되었다
설 계 : 임영환+김선현(디림건축사사무소)
설계담당 : 김완기, 허지선, 최정호
대지위치 : 경상남도 합천군
용 도 : 관광휴게시설(휴게소)
대지면적 : 28,707㎡
건축면적 : 445.02㎡
연 면 적 : 445.02㎡
규 모 : 지상 1층
구 조 : 철근콘크리트구조
준 공 : 2019.12
시공 : (주)우영종합건설
황매평전
글 : 임영환
소백산맥의 고봉인 황매산은 경상남도 합천에 위치한 해발 1,113m 높이의 산이다.
정확하게는 합천군과 산청군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합천호의 물속에 비친 모습이 호수에 떠 있는 매화와 비슷하다고 해서 ‘수중매’라고도 불린다.
황매산 정상 부근의 700~900m 지대는 평평한 둔덕 위에 뭉툭한 봉우리를 얹어놓은 형상을 하고 있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산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생긴 모양이 이렇다 보니 한동안 목장으로 사용됐고,
젖소를 풀어 기르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수목마저 거의 사라졌다.
일대가 민둥산이 되어버렸지만 자연의 힘은 역시 강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키 큰 나무 하나 없는 산 위의 평야에 작은 관목과 억새가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언제부턴가 철쭉과 억새가 산 전체를 뒤덮는 모습을 만들어내었다.
인간의 때가 묻은 자연
루이스 칸은 “자연에는 자연의 기록이 있고, 사람에게는 사람의 기록이 있다”고 말했지만
여기 황매평전에는 자연과 인간의 기록이 섞여있다.
인간의 때가 묻은 자연인 것이다.
목장이 운영되는 동안 황폐해진 산의 식생은 다행히 자연의 섭리에 의해 서서히 재생됐지만,
우리는 이러한 황매평전의 기록에 인간의 때를 한 번 더 묻혀야 했다.
처음 황매산에 올랐을 때는 가을이었다.
억새군락이 산 전체를 덮고 있었는데,
서쪽으로 기울어진 햇빛을 뒤로 받은 억새밭이 작은 바람에도 마치 은빛 비늘처럼 일렁였다.
그 장관을 보니 사람들이 왜 이곳을 은빛 억새밭이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었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고 산을 내려오는데,
억새를 보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때부터 “자연의 기록에 사람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는 건축 방식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철쭉과 억새 사이
철쭉과 억새 사이는 황매산군립공원의 관광휴게소로
봄에는 철쭉, 가을에는 억새밭이 펼쳐지는 해발 850m 등산로 길목에서 대문 역할을 한다.
대지는 황매평전과 작은 계곡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기 때문에
마치 계곡이 자연스럽게 인간과 자연의 세계를 분리해놓은 듯 보인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면 건물은 정확하게 반원의 형태다.
계곡을 등지고 산을 배경으로 건물이 서 있지만 그 높이가 낮아 황매평전의 산세를 거스르지 않는다.
또한 키 큰 나무가 없어 햇빛을 피할 곳조차 마땅치 않은 고도의 평야에서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그늘과 휴식 공간이 된다.
반원 모양으로 펼쳐진 건물은 군데군데 비워져 있어 그 사이로 봄에는 철쭉이, 가을에는 억새가 들어온다.
‘철쭉과 억새 사이’는 건물의 틈으로 철쭉과 억새가 언뜻언뜻 보이는 모습을 상상해서 지은 이름이지만
한편으로는 철쭉 보러 봄나들이 갈까, 억새 보러 가을여행 갈까 고민하는
우리의 마음을 은유하기도 한다.
재료의 감각
건물은 콘크리트 뼈대에 철과 유리만 입힌 상태로 완성됐다.
감싼 것이 아니라 말 그대로 입혔기 때문에, 콘크리트 구조가 철과 유리 사이에서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위아래로 살짝 맞댄 철판 사이로 지붕 슬래브의 콘크리트 면이 보이고,
중간에 박힌 기둥과 거기에서 이어지는 콘크리트 바닥 구조는 등산객을 위한 벤치 역할을 한다.
사계절이 변화함에 따라 콘크리트와 철은 점점 자연과 동화되면서 색이 바뀌고, 비바람에 녹슬고 얼룩진다.
외장재로 사용된 내후성강판은 세월이 흐르면서 서서히 부식되는 재료다.
처음 설치될 때는 단색의 검정이지만 표면이 부식되면서 밝은 오렌지색으로 변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거치면서 거기에 붉은 색깔이 조금씩 강해지다가 결국에는 검붉은 암적색으로 정착하는 것이다.
편의상 단순한 색깔로 설명했지만 실제 보이는 것은 더욱 변화무쌍하다.
비바람에 노출되는 정도에 따라 같은 면이라도 부식의 속도가 달라지고,
사람의 손길이 닿는 곳과 아닌 곳의 모양새가 또 다르다.
날이 흐린지 맑은지, 해와 달이 비추는 각도에 따라서도 차이가 있다.
이른 새벽, 이슬이 맺힌 강판은 단단하고 강인해 보이지만 해질 무렵 노을 빛을 받으면
주변까지 함께 붉게 물들이면서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런 점에서 내후성강판은 황매산의 다채로운 날씨와 계절을 표현하는 데 제격인 재료라 생각했다.
봄의 철쭉과는 비슷해서 보기 좋고, 여름의 청록색과는 보색으로 조화롭다.
가을의 누런 억새밭은 거칠고 강한 철판의 물성을 순화시키고,
겨울철 건물은 눈 덮인 새 하얀 세상의 한 점 아이콘이다.
황매산은 전체적으로 볼 때 석산은 아니지만 비교적 바위가 많은 편이다.
그래서 등산로 바닥에는 흙과 함께 조각난 돌이 많았다.
나는 건물의 주변에 작은 돌을 채웠고, 철판을 얇게 접어 건물과 주차장의 경계를 만든 다음
그 안쪽에 회색 조약돌을 깔았다.
걷기에는 다소 불편하지만 바닥의 느낌과 소리가 산행을 할 때의 감각과 유사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마치 등산로와 같은 공간으로 인식할 거라 생각했다.
건축재료가 가진 물성이 가장 돋보일 때는 눈으로 보는 감각이 아니라
손과 발로 느끼는 촉각과 귀로 기억하는 청각을 제공할 때라고 본다.
페터 춤토르의 테르메 발스는 나의 이러한 사고에 확신을 주었다.
맨발과 맨손으로 느꼈던 편마암 바닥과 벽의 촉감이 그곳의 기억을 내 몸에 각인시켰다.
좁고 높은 공간에서 증폭된 온천탕의 물소리가 아직도 내 뇌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
황매산의 절경 또한 이곳에서 느끼는 발의 감촉과 작은 돌이 부딪치며 냈던 소리와 함께
기억되기를 바란다.
[ ‘철쭉과 억새 사이‘ 감상 소회 ]
‘선비의 꽃’ 매화의 기품을 품은 황매산(黃梅山)은
산청과 합천의 경계를 사이 좋게 나누고 있는 군립공원으로
소백산과 지리산의 바래봉과 함께 ‘우리나라 철쭉 3대 명산’으로 꼽힌다
작은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만물의 형태를 갖춘 모산재의 기암괴석과
북서쪽 능선의 정상을 휘돌아 산 아래 황매평전 목장지대로 이어진
철쭉군락지와 억새군락지는
전국 최대의 규모를 자랑하는 소중한 관광자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황매산은 넓은 황매평원을 배경으로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단적비연수’,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 ‘바람의 나라’ 등
시대사극 촬영장소 등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고,
근래에는 축제 행사를 위한 주차장들이 곳곳에 확충되었고
오토캠핑장도 새롭게 조성되었다
반면에 문화 및 관광 인프라는 제대로 갖추어진 것이 없어서,
황매산을 찾는 이용객들이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문제점을 평소에 안고 있었다
이번에 품격 있는 관광휴게소
‘철쭉과 억새 사이‘가 황매산에 등장함으로써
이용객의 편의증진과 관광 인프라 시설 구축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휴게소를 신축하면서 건물 본연의 기능은 살리되,
꼭 필요한 것만 추가하여 결코 자연에 부담과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자연에 순응하고 화합하려는
설계자의 순수한 열정과 노력도 돋보인다
건물의 외장재료는
현대적 감성을 대표하는 아이콘이라고 할 수 있는
노출콘크리트와 유리 그리고 붉은 내후성강판 등 개성이 강한 3가지의 소재를 섞어서
황매산의 색깔에 어울리는 비슷한 색을 찾기위해
건축가는 끊임없이 노력하였고
우리에게 익숙치 않는 내후성강판에 대한 연구와 시공 디테일도
세련되고 깔끔했다고 말하고 싶다
특히 봄 철쭉의 연분홍빛과 가을 억새의 은빛 물결 등으로 대표되는
황매산 사계절의 빛깔과 분위기에 신축 건물이 자연스럽게 흡수되고 녹아서
마침내 건물이 자연의 일부가 될 수 있기를
건축가는 희망했다
굳이 ’옥의 티‘를 찾으라면 화장실을 이야기할 수 있다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몰리면 특히, 여자화장실은
대기 줄이 항상 건물 바깥까지 늘어서야 하는 문제점이 발생하고 있다
건물 좌우로 아주 콤팩트한 화장실이 2군데 있지만
휴게소 이용객 외의 모든 관광객의 수용을 설계에서 고려하기는 불가능했을 것이고,
추가로 화장실은 확충하는 것은
환경보호를 생각하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깨닫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근처에 있지만 레벨 차이로 인지가 쉽지 않은 제1주차장의 기존 화장실로
이용객들을 분산시켜 유도하는 배려가 필요해 보인다
그 하나의 방안으로 휴게소와 기존 화장실을 연결하는 열린
유도용 회랑 정도를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사랑하면 보인다!'라는 말이 있다
<억새를 보기 위해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길목에서
건축이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보였다.
그때부터 “자연의 기록에 사람의 흔적을 최대한 남기지 않는
건축 방식은 무엇일까?”라는 고민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작가(임영환)의 글’에 잘 드러나 있는 설계자의 숱한 고뇌들!
자연을 대하는 설계자의 자세, 자연에 대한 무한한 존중과 애정,
그리고 ‘자연과 공존하는 건물’에 대한 설계자의 연구와 노력은
우리들에게 많은 울림과 숙제를 남겨주고 있다
건물을 관리하는 지역 주민이나 건물을 이용하는 관광객들이
설계자의 충정과 희망을 일부분이라도 이해하고 자연보호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철쭉과 억새 사이‘는 친환경 관광휴게소를 대표하는
명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제, 임시 상업시설의 확충을 최대한 자제하고
우리 모두가 '황매산사랑'에 동참하고 국가의 공원으로 가꾸어 나가는
건물의 이미지와 철쭉을 닮은 붉은 열정이
우리들에게 요구되는 과제라고 본다
2021. 05.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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