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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달성 도동서원- 3 (2014.11. )

 

 

 

 

 

 

 

 

 

 

 

 

 

 

 

 

        달성 도동서원 (達城 道東書院)

 

 

 

종 목

사적 제488

 

소 재 지

대구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번지

 

시 대

조선시대

 

 

 

도동서원은 1605(선조38) 지방 유림에서 한훤당 김굉필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으로

조선중기 전학후묘(前學後廟)의 전형적 배치형식과 강당과 사당의 공포양식 및 담장 구성수법 등에서

건축적 특성을 보여주고 있다.

 

강당· 사당과 이에 딸린 담장은 보물 제35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전면에 위치한 신도비, 은행나무 등을

포함한 서원 전역을 국가지정문화재(사적)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있다.

 

(도동서원 달성 도동서원)으로 명칭변경 되었습니다. (2011.07.28 고시)

  (이하 글출처 : 문화재청)

 

 

 

 

 

 

 

 

 

 

 

 

 

 

 

 

 

 

 

 

 

 

 

 

 

 

 

 

 

 

 

 

 

 

 

 

 

 

 

 

 

 

 

 

 

 

 

 

 

 

 

 

 

 

 

 

 

 

 

 

 

 

도동 서원의 담장은 서원의 전체 영역 중에서 기능에 따라 구분되는 각각의 건물군들을 분리시키고 또 연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각 건물군들의 앞 뒤에는 직선의 수평 담장이 배치되고 좌우측면으로 돌아가는 담장은 지형의 높고 낮음에 따라

자연스럽게 높낮이를 주어 배치하였다.

 

담장의 구조는 자연석 석축이나 큰돌을 모아 정렬시킨 지대석 위에 아래에는 막돌을 쌓고 윗 부분에는 암기와를

고르게 놓고 진흙층을 쌓는 방법으로 한켜씩 교대로 쌓아 올리고 맨 위에 한식 기와 잇기로 마무리하였다.

즉 담장의 아래 부분은 높이 60에서 100가량까지 재래식 담장 같은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윗 부분에는 암키와만 벽면에서 약간 돌출시켜 5단 가량 노출하여 배열하였다. 또한 그 사이에는 매 층마다

진흙으로 메꾸고 군데군데 숫키와를 배치하여 마무리하였는데, 축조 방법과 무늬, 장식 등이 토속적이고 아름답다.

 

 

 

 

 

 

 

 

 

 

 

 

 

 

 

 

 

 

 

 

 

 

 

 

 

 

 

 

 

 

 

 

 

 

 

 

 

 

 

 

 

 

 

 

 

 

 

 

 

 

서원이란 훌륭한 사람들에게 제사지내고 유학을 공부하던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교육기관을 말한다.

도동서원은 문경공 김굉필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조선 선조 원년(1568) 처음 세워 쌍계서원이라 불렀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져 선조 37(1604) 지금 있는 자리에 사당을 다시 지었고 선조 40(1607)

임금님이 직접 도동서원이라고 쓴 현판을 하사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8(1871)의 서원철폐령의 대상에서 제외된 47개 서원가운데 하나이다.

 

행사와 교육의 중심 건물인 강당은 앞면 5·옆면 2칸 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짠 구조는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있다.

좌우 끝 칸은 온돌방으로 꾸몄고 그 앞면엔 각각 작은 툇마루를 두었다. 가운데 3칸은 넓은 대청마루로 양쪽 툇마루와

통하도록 해 놓았다.

 

제사지내는 공간의 중심 건물인 사당은 앞면 3·옆면 3칸 규모로 김굉필 선생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지붕과 공포를 쌓은 양식은 강당과 마찬가지로 맞배지붕이다. 앞면 3칸에는 각각 2짝씩 널문을 달았다.

강당을 둘러싼 담장은 기와를 이용해 쌓은 맞담으로 구성하여 매우 아름답다.

 

간결하고 검소하게 지은 전통 깊은 조선 중기 서원 건축물로 잘 보존해야 할 문화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