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활의 고향의 맛] 남한강의 봄 - 1
“봄비는 오고 지랄이야/ 꽃은 또 피고 지랄이야/
이 환한 봄날이 못 견디겠다고/ 환장하겠다고/
(중략) 이승을 건넌 꽃들이 바람에 나풀거린다/
꽃길을 걸으며 웅얼거려 본다/ 뭐야, 꽃비는 오고 지랄이야.”
(박남준의 시 ‘봄날은 갔네’ 중에서)
단풍을 잃고 삭풍에 떨던 앙상 가지들이 꽃물을 퍼올리고 있다.
계곡의 얼음장 밑에 물방울 소리가 들릴 때부터 연두색 기운을
띠던 나뭇가지들이 일제히 기지개를 켜며 일어선다.
철 늦은 눈보라에 상고대를 피우던 꽃샘추위쯤이야 안중에도 없다.
늦게 피는 가지 위의 눈꽃은, 꽃눈을 재촉하는 가수 뒤에서 노래하는
허밍코러스들의 하모니에 불과하다.
새벽잠이 없는 매화는 눈 속에서 꽃이 피고 산수유는 노랑
물감통을 들고 나와 박자를 맞추느라 부산을 떤다.
원래 이 동네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리면 저 동네에서도 징과 북이
가만있질 못하고 맞장구를 친다. 산천도 마찬가지다.
개나리가 병아리 혓바닥 같은 노란 꽃잎을 쏘옥 밀어내면
진달래가 어깨춤을 추며 튀어나온다. 바야흐로 난장판이다.
늦잠에서 깨어난 벚꽃은 개나리가 꽃잎을 거둘 무렵
‘날 좀 보소’ 하고 꽃대궐을 만들어 거리에 서서 열병식을 거행한다.
나는 아무래도 봄을 타는 남자인 모양이다. 봄소식이 들리기만 하면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한다. 금오도 비렁길과 나로도 봉래산을
종주하면서 모가지 댕강 잘린 동백꽃을 원 없이 보았어도
또 매화향이 맡고 싶어 안달이 난다. 일찍 피기로 소문난 통도사
영각 앞 홍매를 보러 갈거나, 화엄사 각황전과 원통전 사이에
서 있는 흑매를 보러 갈거나 하고 벼르다가 봄을 놓치고 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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