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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영양 서석지 ( 2014. 02.09.)

 

 

 

 

....... 서석지는 조선 광해군 때 석문石門 정영방 선생이 만든 조선시대 민가의 대표적인 연못이다.

석문 선생의 자字는 경보慶輔이며 동래 정씨이다. 예천군 용궁에서 출생하여 우복 정경세 선생의

문하에서 수업하여 퇴계 이황, 서애 유성룡, 우복 정경세로 이어지는 퇴계학파 삼전三傳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성균관 진사로 벼슬을 시작하였으나 광해군 이후 세상이 어지러워지자 낙향하여

자양산 남쪽 기슭인 이곳 입암면 연당마을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는데, 선생이 일생에 세 번이나

벼슬에 나아갈 기회가 더 있었으나 그때마다 사양하고 이곳 자신의 이상향, 서석지에서

후학들을 가리키며 세월을 보냈다 한다.

 

 저서로는 암서만록巖棲漫錄 1권과 석문유고 두 권이 초고로 있던 것을 정리하여  

현재 '석문선생문집'이라는 이름으로 4권이 전한다. 석문 선생은 특히 시에 일가를 이루어,

석계 이시명, 이환 등과 교류한 시를 비롯하여 470여수가 전하고 있다.

그리고  서재 겸 강학처로 건립한 정자인 경정을 노래한  경정잡영敬亭雜詠이 전해져 오고 있다.

 

 서석지瑞石池는 ‘상서로운 돌들의 연못’이라는 의미를 가진 조그마한 연못이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세연정과는 규모면에서 상대가 되지 않고 이름만 듣고 처음 찾아 온 

사람은 실망감마저 느낄 수 있는 그저 평범한 연못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고 평범한 연못을

석문 선생은 유교적 이상과 생활철학으로 가득 채워서 유교적 이상향으로 펼쳐 놓았다.

 풍수적 이유로 앞산의 화기를 막기 위해 판 연못에서 우연히 나온 평범한 돌들에게서

기발한 영감을 얻고, 각자 돌마다 이름을 붙이고 유교의 철학과 이상을 접목하여

무심한 돌에게 의미와 생명을 불어 넣어 작은 우주를 완성하였다.

이 조그맣고 평범해 보이는 서석지가 조선시대의 3대 민간정원으로 대접받는

이유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