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시
경상북도 북부에 있는 시. 인구 약 17만 명.
슬로건은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영주, 의성, 영양, 청송, 예천, 봉화를 위시한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행정, 교육, 교통,
서비스업 중심지이다. 때때로 문경, 상주, 군위, 영덕이 북부권에 포함되기도 한다.
전국 시(특별시, 광역시 포함) 가운데 가장 면적이 넓다. 면적 1,521제곱킬로미터로
서울의 2.5배. 시군구로 따지면 강원도 홍천군, 인제군 다음이다.
2013년 현재는 포항, 구미 등 경북 내 다른 도시들에 밀려 위상이 많이 떨어졌다.
하지만 경상북도청 이전이 안동·예천으로 확정되어 2014년 경상북도청 이전이 완료되면
경북 지역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된 경북 북부 지역은 물론 그 중심지 역할을 하는 안동도
발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통 문화가 그 어떤 도시들 보다도 번성했던 곳인만큼 오늘날에도 전통 문화의
향수와 영향이 많이 남아 있다.
오늘날까지 명문 양반가들의 종가가 많이 위치해 있는 곳이기도 하다.
유교문화, 불교문화, 민속문화 모두 번성했던 도시이며 이런 도시 특성에 맞춰
도시 슬로건도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더러 타 지역의 영문 슬로건과 비교해서 이 슬로건을 촌스럽게 여기는 안동사람들도 있으며,
영문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2010년도에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고 국가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 지방자치단체들도
한글 브랜드를 다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
북쪽에 영주시와 봉화군, 서쪽에 예천군, 남쪽에 의성군, 동쪽에 영양군과 청송군이 있다.
(글 자료: 엔하위키 미러 )
천등산 봉정사 명옥대(鳴玉臺)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선생은 이수령(李壽苓), 권민의(權敏義), 강한(姜翰)과
함께 봉정사에서 3개월 정도 독서를 했다. 이때 절 입구 계곡인 이곳에 와서 함께 놀았다.
그 후 50년 뒤인 1566년 퇴계는 병을 핑계로 관직을 사양하고 다시 이곳에 머물렀다.
이때 절구 두 수의 시(詩)를 남기고, 낙수대(落水臺)라 하던 이름을 명옥대라 고쳐 불렀다.
1664년 퇴계의 자취가 남아 있는 이곳을 김시침(金時忱)이 앞장서서 정사(精舍)를
지을 것을 발의하였고, 실제의 주관은 봉정사의 승려 보명(普明)이 맡았다.
이 일을 널리 알리고 협조를 호소한 통문이 남아 있다.
「봉정사명옥대창건시통문(鳳停寺鳴玉臺刱建時通文)」이 그것이다.
건물은 3년 뒤인 1667년에 완공되었고 상량문은 김광원(金光源)이 썼으며,
김규(金煃)는 계곡 위를 건너 동쪽으로 가는 수각(水閣)을 세우기를 도모하였다.
당시에 세워진 건물의 이름은 퇴계의 시에 나오는 ‘창암’이라는 두 글자를 따
창암정사(蒼巖精舍)라 하였다.
1667년 처음 창암정사로 세워 질 때의 형태는 방 1칸, 누각 2칸의 3칸 건물이었다고 한다.
또 이 건물 뒤에 3칸의 승사(僧舍)를 지어 승려들이 상주하며 창암정사를 관리했다는
기록이 보이나 지금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현재의 건물은 자연석의 초석 위에 원형 기둥을 세운 정면 2칸, 측면 2칸에 사면으로
계자난간을 둘렀고 사면을 모두 개방하여 주변의 경관을 두루 볼 수 있게 한 것은
당시의 건물과는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현재의 건물도 1920년 고쳐지었다고 한다.
내진주(內陳柱)와 기둥 위에 남아 있는 흔적을 보면, 방이었던 뒤쪽 2칸을 지금의 형태로
바꾼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안내판에는 1665년으로 되어 있으나 기록상으로는
1664년에 발의해서 시작했고, 완성은 1667년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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