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 남쪽 대덕면 장산리에 양옆 야트막한 산 능선이 병풍처럼 둘리어진 곳에
‘노루골’이란 마을이 있다.
이곳은 창평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오리 길에 매봉에 안겨
고즈넉한 곳에 20여 호가 사는 동네이다.
마을 어귀에 다다르면 숲쟁이가 보인다.
백호등에 기댄 미암이 후학들을 가르치던 연계정(漣溪亭) 뒷산이 노루뫼이다.
이곳은 조선중기 대사헌과 이조참판을 지낸 미암 유희춘의 정자인
연계정과 사당이 있다.
연계정(漣溪亭)은...
‘慕賢館’(모현관)이라는 글씨는 남종 문인화의 대가인 의재 허백련이 썼고
화순에서 화강암을 소달구지로 실어 왔고, 광주의 유명 석공들이 와서 돌을 다듬었다 한다.
옆에 있는 정자가 연계정(漣溪亭)이다.
유희춘(1513∼1577)은 호남 3걸이라 일컬었던 당대의 시인 유성춘의 아우이고,
아내인 송덕봉은 여류 문인으로 이름이 높았다.
자는 인중 仁仲, 호는 미암(眉巖)이며, 시호는 문절(文節)로 전라도 해남에서 태어났다.
최산두ㆍ김안국의 문인으로 1538년에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대사성ㆍ부제학ㆍ전라 관찰사ㆍ대사간, 이조 판서를 지냈다.
그는 경사와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선조의 스승이기도 하였으나
양재역 벽서 사건에 연루되어 함경도 종성에서 19년의 유배 생활을 하는 등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다.
시문의 재주가 뛰어났고, 국문시가에도 관심을 가졌으니,
그의 작품 헌근가는 조선 시대 연군시조로서 백미이다.
유희춘의 공은 무엇보다도 미암일기를 저술하여 남긴 일이다.
모현관은
정자에서 내려다보니 고려 때 평간채씨가 심었다는 느티나무, 팽나무, 버드나무,소나무 등
990여평과 서당골에서 내려오는 맑은 시냇물이 고여 모인 연방죽과 어우러져
미니 무릉도원을 보물제 260호로 지정된 미암일기가 보관된 모현관이 섬처럼 떠 있다.
모현관은 1959년 지어졌다. 당시 미암의 사당에 보관돼 있던 미암일기를
제대로 보존하기 위해 전남도와 선산 유씨 문중이 돈을 모았다.
1567년 10월부터 1577년까지 11년간에 걸친 당시의 정치ㆍ사회ㆍ교육ㆍ문화의 실상과
선생의 개인적 사생활을 진솔하게 기록한 친필 일기로 현재 담양군 대덕면 장산리의 모현관에
보존되어 있다.
담양 향토문화회에서는 1992년부터 1996년까지 5년에 걸쳐 이를 번역하여 5권으로 출간하였다.
많은 저술을 남긴 미암 유희춘은 담양의 의암서원, 무장의 충현사,
종성의 종산서원 등에 제향되어 있다
미암은 ‘타임캡슐’인 미암일기를 남겼다. 그는 기록벽이 있었는지
조선 선조 즉위 첫해부터 11년 동안 일상생활을 꼼꼼히 기록한 일기인데,
당시의 정치·경제·사회상을 얼마나 꼼꼼하게 기록했던지
훗날 사관이 선조실록을 쓰는데 이를 기초로 했을 정도다.
연계정 앞에는 연잎이 멋지게 떠있는 운치있는 연못이 있고,
그 연못 가운데 섬에는 후손들이 미암일기를 보관하기 위해
1959년 석조로 지은 독특한 양식의 모현관이 들어서 있다.
(글출처 : 한국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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