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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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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선비촌 및 소수박물관 (2023. 02.) 영주 선비촌 한국 유교 문화 발상지인 영주 순흥 소수서원 곁의 선비촌은 선현들의 학문 탐구의 장소 및 전통 생활공간을 재현하여, 우리 고유의 사상과 생활상의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설립되었다 우리 민족의 생활 철학이 담긴 선비정신을 거양하고,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재조명하여, 윤리 도덕의 붕괴와 인간성 상실의 사회적 병폐 현상을 해소시켜 보고자 충효의 현장으로 재현하게 된 것이다 순흥면 청구리에 있는 5만6000㎡(1만7000평) 규모의 선비촌은 관 주도로 2004년에 설립한 한옥마을이다. 죽계천 옆으로 사극에서만 보던 고래 등 같은 기와집과 단정한 초가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재미있는 건 선비촌 가옥은 모두 영주에 실존하는 집을 재현했다는 점이다. 각 집 앞엔 해당 가옥에 대한 설명과 주..
영주 순흥 봉도각 (2023. 02.) 드로잉트래블⓫ 순흥 봉도각 - 목여 김만용 화백과 함께하는 화첩 나들이 《순흥 봉도각逢島閣》 영주시 순흥면 읍내리에 위치 한 봉도각逢島閣은 옛 순흥도호부 청사 인 조양각朝陽閣 뒤뜰에 조성 된 연못 공원으로 순흥 고을의 흥망성쇠와 함께 해 온 대표적 명소로서 아름드리 버드나무와 천년 노송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은 영조 30년 순흥부사 조덕상趙德常이 승운루勝雲樓 라는 누각을 짓고 그 서편에 논을 파서 사각형의 연못을 조성 하였는데, 이는 땅의 모양이 네모남을 의미하며 그 옆에 둥근 모양의 연못을 나란히 조성한 것은 하늘의 모양이 둥금을 의미하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를 근거로 조성하였다고 한다. 연못의 가운데에는 흙과 돌로 둥근 모양의 섬을 쌓은 후 정자를 세우고 그 이름을 봉도각逢島閣이라 ..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영주 소수서원 (2023. 02.) 영주 소수서원 (榮州 紹修書院)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로 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린 사액서원이자 사학(私學)기관이다. 조선 중종 37년(1542)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제사하기 위해 사당을 세웠다가, 중종 38년(1543)에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하였다. 명종 5년(1550)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중종 39년(1544)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제사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지냈다. 서원의 건물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인 서원의 배치가 완성되기 이전인 초기의 서원이기 때문인 듯하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강당인 명륜당이 있고 학생들이 머물며 공부하는 일신재와 ..
대구 남평문씨 세거지 인흥마을 수봉정사 (2023.01.29.) 남해고속도로에서 구마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구 입구의 화원IC에서 빠져나와 비슬산에서 흘러내리는 천내천을 따라 3 KM 정도 천천히 거슬러 올라가니 황량한 겨울 들판 너머로 인흥마을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달성군 화원읍 본리 인흥마을은, 목화씨를 우리나라에 전한 문익점 선생의 후손들인 남평 문씨 일족이 모여 사는 곳이다 원래 '인흥사'라는 절이 있었던 폐사지에, 뒷산을 등지고 마을이 자리를 잡았고, 조선 후기의 전통한옥 9채와 문중 정자 2채가 잘 보존되어 있다. 약 180년 전 쯤에 마을이 조성된 인흥마을은 우리나라의 자연발생적인 전통마을에서는 찾아보기 쉽지 않은 마을 배치상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처음 이곳에 마을을 조성할 때, 이곳의 대표적인 마을 공공건물인 수봉정사(수백당) 터를 중심축으로 삼아서..
문경 주암정 (2023.01.01.) 문경 주암정(舟巖亭) 문경 주암정은 산북면 서중리 웅창마을의 동남쪽을 흐르는 강변에 세워진 정자이다 주암정(舟巖亭)의 ‘주암(舟巖)’은, ‘배 바위’라는 뜻으로 배의 형상을 한 바위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아주 소박한 규모의 정면 3칸, 측면 1칸 반 정도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로 방을 들였고 마루에는 분합문을 달았다 전면과 좌우로 반 칸 정도의 툇마루를 둘렀고 배치는‘주암(舟巖)’이 놓인 방향에 따라 북서향의 건물이 되었다 문경 주암정은 조선시대 유학자였던 주암 채익하 선생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정자이다. 옛날에는 금천 이라는 강이 배 모양의 주암정 바로 앞을 지나고 있어 마치 흐르는 강물 위에 떠 있는 모양의 정자였으나, 큰 홍수로 인해 물길이 멀어지고 정자 앞..
영양 감천마을과 오일도 생가 (2023.01.01.) 경북 영양 감천마을 경북 영양의 감천마을은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이자 항일 시인인 일도 오희병(1901∼1946) 선생의 영양 문학테마공원과 시비공원 그리고 생가가 있는 곳이다 감천마을 건너 반변천은 영양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일월면사무소에서 시인 조지훈 생가 주실마을에서 흘러온 물을 같이 모아 영양읍을 통과한다 또한, 서석지의 물을 모아서 선바위를 거쳐 이문열의 두들마을 물까지 합쳐 청송을 거쳐 안동에 이르러고 청량산과 도산서원에서 내려오는 본 줄기와 합쳐서 낙동강을 이뤄 남으로 내려간다 감천마을은 맛있는 물이 샘솟고 감나무가 많아 감천이라 불리며 낙안 오 씨들이 400여 년을 살아온 집성촌이며 오일도 생가는 서정시인 오일도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일도는 아명이었는데, 후에 필명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
군북 어계고택 및 채미정 (2022.11.20.) 함안 어계고택 (咸安 漁溪古宅)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조선 전기의 문신 어계 조려(1420∼1489)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조려 선생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단종을 위해 벼슬을 버리고 영월에서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룬 뒤 왕의 얼을 동학사에 모셨다. 그 후 어계 선생은 이곳에서 낚시로 여생을 보냈으며 지금은 후손들의 재실로 사용하고 있다. 대문채·재실·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문채는 3칸으로 가운데 문을 높여 세운 솟을대문을 두었고 양쪽은 방으로 만들었다. 재실은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一자형 평면으로 부엌이 없이 가운데 2칸을 대청으로 하고, 양쪽은 툇마루를 둔 방을 1칸씩 만든 후 주변에는 담을 둘렀다. 사당은 3칸 一자형 평면에..
달성 도동서원 - 6 (2022. 11.)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유교건축 도동서원 도동서원(道東書院)은 한훤당(寒暄堂) 김굉필(金宏弼, 1454∼1504)의 도학과 덕행을 숭앙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현재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도동리 35에 있다. 현풍에서 구지면사무소를 지나 낙동강을 오른편에 끼고 약 4㎞쯤 가면 닿는 곳이다. 도동서원은 원래 1568년(선조 1)에 현풍 비슬산 기슭 쌍계동에 건립되었으나, 1597년 정유재란으로 소실되자 1605년 (선조 38) 지금의 자리에 '보로동서원'으로 이름을 바꾸어 중건되었고, 1607년에 '도동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이황은 김굉필을 두고 '동방도학지종(東方道學之宗)'이라고 칭송했는데, '도동(道東)'으로 사액한 것도 공자의 도가 동쪽으로 왔다[東來]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동서원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