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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경 북

영양 감천마을과 오일도 생가 (2023.01.01.)

 

 

 

 

 

 

 

 

 

경북 영양 감천마을

 

 

경북 영양의 감천마을은

일제강점기 애국지사이자 항일 시인인

일도 오희병(1901∼1946) 선생의 영양 문학테마공원과 시비공원

그리고 생가가 있는 곳이다

 

감천마을 건너 반변천은 영양 일월산에서 발원하여

일월면사무소에서 시인 조지훈 생가 주실마을에서 흘러온 물을 같이 모아

영양읍을 통과한다

또한, 서석지의 물을 모아서 선바위를 거쳐 이문열의 두들마을 물까지 합쳐

청송을 거쳐 안동에 이르러고

청량산과 도산서원에서 내려오는 본 줄기와 합쳐서

낙동강을 이뤄 남으로 내려간다

 

감천마을은

맛있는 물이 샘솟고 감나무가 많아 감천이라 불리며

낙안 오 씨들이 400여 년을 살아온 집성촌이며 오일도 생가는 서정시인

오일도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일도는 아명이었는데, 후에 필명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오일도 생가는 조부인 오시동 선생이

조선 고종 1년(1864년)에 건립한 것으로, 정면 5칸 측면 6칸 규모의

ㅁ자형 건물인 본채와 5칸 규모의 솟을대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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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도 선생은 어려서 서당에서 한문을 배운 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와 일본의 릿교대학 철학부를 졸업하였다

오일도 선생은 일제시절에 활동했기 때문에

우리에게 널리 알려지지 않은 시인이지만 

1925년에 문예월간지인 조선문단에 "한가람 백사장"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고,

1935년 2월에는 시 전문지인 <시원>을 창간하여 5호까지 출간하면서

한국 현대시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노변(爐邊)의 애가(哀歌)」,「눈이여! 어서 내려다오」,

「창을 남쪽으로」,「누른 포도잎」,「벽서(壁書)」,「내 연인이여!」

 등이 있다

 

마을 중심에는 삼천지라 불리는

연꽃이 피는 넓은 연못이 있고 정자와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어

마을의 산책과 휴게시설로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연못 한켠에는 낙안 오씨 종가집 ‘감호헌'이 운치있게 자리잡고 있고

삼천지 둘레에는 연륜이 느껴지는 노송들이 줄지어 서 있다

 

마을 입구의 영양 문학테마공원은

문자의 장, 시간의 장, 문학의 장, 영감의 장, 예술의 장, 명상의 장, 

생동의 장 공간으로 나뉘어 있고

반변천 옆에는 '저녁놀' 시비가 놓여 있다

 

 

 

 

 

 

 

 

 

 

 

 

 

 

 

 

 

 

 

 

 

 

 

 

 

 

 

 

 

 

 

 

 

 

 

 

 

 

 

 

 

 

영양 오일도 생가

 

 

 영양읍 소재의 시인 오일도 선생의 생가로서

1991년 9월 6일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48호로 지정되었다

후손인 오증호 씨가 소유·관리하고 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의 암울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도

민족적 양심을 저버리지 않은 지사이자, 

항일시인인 일도(一島) 오희병 선생의 생가이다

 

口자형 뜰집으로, 그의 조부가 고종 원년(1864)에 건축하였다

건물은 정침과 대문채의 2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의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6칸의 홑처마 팔작집이다

전체 평면형은 ㅁ자형이며, 사랑채 전면 우측에 마루가 돌출되어 있다

 

솟을대문을 가진 전면 대문간채는

정면 5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이다

문간채는 대문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방과 부엌을 두고,

좌측에는 외양간과 마굿간을 꾸몄다

 

정면 3칸의 사랑채는

문간채를 중심으로 좌측에 글방이 있고 우측은 사랑채이다

사랑채는 전면의 중간문과 우측면 샛문간에 의해 구분하여 놓았는데,

이는 우리의 유교적인 남녀유별 사상에서 동선 분리를 

고려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안채는 안마당을 향하여 전면이 개방된 2칸의

안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으로 2통칸의 안방을 꾸미고

수직으로 부엌과 고방을 연결하여 놓았다

 

 

 

 

 

사랑채

 

 

 

 

 

 

 

 

 

 

 

사랑채에 '국운헌(菊雲軒)' 당호와 '한묵청록(翰墨淸綠)' 편액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선생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선조 오수눌 선생의 호 '국헌'에 구름 '운'자를 더해 '국운헌'이라 했다

'한묵청록'은 바른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했다 한다

 

 

 

 

 

 

 

 

 

 

 

 

안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