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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건축 갤러리 ■/서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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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 낙선재 - 3 (2006.12.) 낙선재(樂善齋)는 창덕궁(昌德宮)과 창경궁(昌慶宮)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맨 좌측에 낙선재(樂善齋)가 크게 자리 잡고 그 우측으로 석복헌(錫福軒)과 수강재(壽康齋)가 연이어져 있으며, 이들 뒤편에는 화초·석물·꽃담 굴뚝 등으로 가꾸어진 아름다운 화계와 그 위의 꽃담 너머로는 상..
창덕궁 비원 - 3 (2006.06.) 일제가 일본 왕궁에도 금원이 있으므로 비원으로 고친 종로구 와룡동의 돈화문 안 창덕궁 비원은 1904년 7월 일제에 의하여 처음으로 사용된 이름이다. 비원의 본래 이름은 금원. 창덕궁의 후원으로서 북원 또는 후원이라고도 불렀으나 비원이라는 이름은 그 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비..
창덕궁 연경당 - 3 (2006.06.) 조선의 주택 그 중에서도 가장 매력적인 것은 사랑채의 효용과 그 평면의 묘에 있다. 이 연경당이야말로 서재 풍으로 된 가장 전형적인 큰 사랑채 하나의 부분으로서는 절묘한 작품이라고 해야겠다. 동쪽 뜰 기슭으로 선향재라는 나지막한 서고를 거느렸고, 또 이 선향재의 뒤 언덕 위에..
창덕궁 - 3 (2006.06.) 사적 제122호. 1405년(태종 5)에 이궁(離宮)으로 조성되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7년(선조 40)부터 다시 짓기 시작하여 1610년(광해군 2)에 완공되었다. 그러나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때 인정전(仁政殿)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불타 1647년에 다시 짓기 시작했다. 그후에도 크고 작..
창덕궁 낙선재. 연경당 -2 (2006.04.) 낙선재라는 이름은 영조 때부터 기록에 등장하나 1756(영조 32)년과 1788(정조 12)년에 발생한 화재로 타버려서 『동궐도』에는 보이지 않는다. 현재의 낙선재는 1847(헌종 13)년에 헌종이 후궁 경빈 김씨를 맞이하면서 왕실의 사생활 공간으로 사용하려고 세운 것이다. 1884년 갑신정변 직후에..
창덕궁 -2 (2006.04.) 창덕궁은 1405년 (3대 태종 5년)에 정궁인 경복궁의 이궁으로 지은 궁궐이다. 1412년 정문인 돈화문이 세워지면서 궁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는데 1459년 세조가 궁궐의 규모를 넓혀 15만여평에 이르렀다. 창덕궁은 광해군 이후 고종까지 13대에 걸쳐 약 270년간 정사를 본 궁으로 정궁인 ..
성북구 최순우 옛집(2006.05) 193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튼 ‘ㅁ’자 평면의 전형적인 경기지방 한옥양식 주택이다. 혜곡(兮谷) 최순우가 1976년부터 1984년까지 거주한 주택으로, 안채는 전시공간으로, 동편 행랑채는 사무공간으로, 서편 행랑채는 회의실과 방문객의 휴게공간 등 서비스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
성북구 한규설대감가(2005.03) 조선 후기 한성판윤을 지낸 한규설(1848∼1930)의 저택이다. 원래 장교동에 있던 것을 국민대학교에서 사들여 교내로 옮겨 지었으며, 1890년 이전에 지은 건물로 추정된다. 원래의 모습대로 옮겨 지으면서 솟을대문 좌우의 행랑채와 중문간행랑채, 사잇담 등을 복원하였다. 사랑채와 안채·별채·사당·..